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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셜 1781년 천왕성 발견 수천 년 ‘행성은 5개’ 믿음 깨

입력 2023. 08. 29   16:44
업데이트 2023. 08. 2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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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통신 - 천왕성은 예언자들의 천적

지구에서 거의 30억 ㎞ 떨어져

무게 지구의 15배…누운 채 옆으로 돌아
내부 여러 기체 얼어 붙은 덩어리 추정
셰익스피어 작품 속 인물로 위성 이름

‘행성은 다섯 개’라는 믿음을 깨트리는 데 이바지한 천왕성. 다른 행성과 달리 누운 채 옆으로 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행성은 다섯 개’라는 믿음을 깨트리는 데 이바지한 천왕성. 다른 행성과 달리 누운 채 옆으로 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대 중국 사람들은 음양오행설이라고 하여, 자연의 모든 것들이 다섯 가지 기운의 어울림으로 인해 생겨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세상의 기본이 되는 다섯 가지 기운이란 화·수·목·금·토, 즉 불·물·나무·쇠·흙의 기운을 말한다. 중국인들은 그야말로 별의별 자연 현상을 이 다섯 가지 기운의 어울림으로 설명하려 했다. 예를 들어 봄은 나무의 기운이고, 여름은 불의 기운이며, 서쪽 방향은 쇠의 기운이고 북쪽 방향은 물의 기운에 해당한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만들어 냈다.

이런 생각은 이미 고대 한국에도 전해져 인기를 끌었다. 음양오행설을 한국판으로 발전시켜 다양한 이야기들이 덧붙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나라의 발전과 쇠퇴를 음양오행과 관련 짓는 생각도 크게 유행했다. 신라 임금은 김(金)씨였고 경주를 신라 시대에 흔히 금성(金城)이라고 불렀기에, 옛 사람들은 신라라는 나라가 금, 곧 쇠의 기운에 해당하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음양오행설의 순서에 따르면 쇠의 기운 다음에는 물의 기운이 이어진다는데, 그렇다면 신라의 뒤를 이은 나라는 물의 기운을 가진 나라 아닐까? 실제로 후삼국시대 한반도 중부지방을 차지했던 궁예는 나라의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라고 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온 나라 사람들이 이 말을 자주 쓰도록 유도한 적이 있다. 수덕만세는 “물의 기운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뜻이다. 궁예는 음양오행에 따라 신라 다음으로 자신이 물의 기운으로 한반도를 차지하기를 꿈꾸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런 생각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혹당했던 것일까? 그 이유 중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밤하늘 행성의 숫자가 마침 음양오행과 같이 다섯 개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하늘을 보면 보통 별들보다 밝고 움직임이 특이한 것들이 하필 딱 다섯 개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 행성의 이름을 음양오행에 맞추어 각각 물·쇠·불·나무·흙의 기운을 가진 별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라고 이름 붙였다. 다섯 가지 기운이 온 우주를 지배하고 모든 사람과 나라의 운명까지 결정한다는 이야기와 행성이 다섯 개라는 점은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주었다.

이런 생각이 중국이나 한반도에서만 유행했던 것도 아니었다. 유럽에서도 행성이 하필 다섯 개밖에 없는 것이 무엇인가와 맞아떨어져서 신비로운 우주의 근본 원리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인기가 있었다. 예를 들어 뛰어난 과학자이자 수학자로 행성의 움직임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낸 17세기의 요하네스 케플러 같은 사람조차도 행성이 다섯 개인 이유가 5라는 숫자에 관한 세상의 신비로운 원리와 연결된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는 정다면체 모양을 만들어 보면 다섯 가지밖에 만들 수 없다는 사실과 행성이 다섯 개라는 사실이 관련이 깊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런 신비로운 믿음의 밑바탕은 엉뚱하게도 독일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던 한 오르간 연주자 때문에 1781년 산산이 깨어지고 만다. 바로 윌리엄 허셜인데, 그는 본래 여동생 캐롤라인 허셜과 함께 음악가로 생활하던 사람이었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허셜의 발견은 K팝 가수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취미 삼아 연구하다 과학과 우주에 대한 근본 원리 하나를 뒤집은 이야기라고 말할 만한 사건이었다.

특히 윌리엄 허셜은 성능이 뛰어난 망원경을 스스로 만들 줄 알았는데 그 실력이 전문가 수준이었다. 또 동생인 캐롤라인에게 별 관찰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는데, 막상 일을 같이 해 보니 동생도 오빠 못지않게 별 관찰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렇게 해서 윌리엄 허셜이 동생의 도움을 받아 밤하늘을 정밀 관찰한 결과 발견한 새로운 행성이 바로 천왕성이다.

흔히 천왕성은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아 망원경 기술이 발전한 뒤에야 발견되었다는 말이 많이 퍼져 있다. 그러나 천왕성은 희미해서 그렇지 맑은 날 눈 좋은 사람이 시골 마을에서 작심하고 보면 맨눈으로 봐도 보이는 행성이다. 워낙 빛이 약해 별 관심을 끌지 못해서 세밀히 분석된 적이 없었기에 예전에는 행성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별빛이 좀 작다고 대충 무시해버리는 바람에 수천 년간 사람들은 행성이 다섯 개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세상에는 다섯 가지 기운이 있다거나 숫자 5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그렇게들 빠져들었다는 이야기다.

밤하늘에서 보통 별보다 밝게 빛나고 특이하게 움직이는 다섯 개의 별은 음양오행설을 뒷받침하는 좋은 근거가 됐다. 사진은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옛 천문관측기인 혼천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밤하늘에서 보통 별보다 밝게 빛나고 특이하게 움직이는 다섯 개의 별은 음양오행설을 뒷받침하는 좋은 근거가 됐다. 사진은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옛 천문관측기인 혼천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워낙에 충격적인 발견이라, 상당히 긴 세월 동안 천왕성을 뭐라고 부를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합의를 보지 못했다. 유럽에서는 행성의 이름에 흔히 그리스·로마신화 속 신들의 이름을 붙이기 때문에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우라노스’라는 신의 이름을 새 행성에 붙이기로 했다. 한국에서 쓰는 천왕성이란 이름은 우라노스가 하늘의 신이라서 그 뜻을 번역한 말이다.

천왕성은 지구에서 거의 30억 ㎞나 떨어진 행성이다. 그래서 그곳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많지 않다. 그래도 다른 목성형 행성처럼 주성분이 기체에 크고 무거운 행성이며 태양에서 거리가 먼 아주 추운 행성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단, 그저 목성형 행성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무게가 지구의 15배 정도라서, 크다면 크지만 지구 무게의 100배 이상에 달하는 토성·목성보다는 한참 작다. 성분을 따져 봐도 내부에 여러 기체가 얼어 붙은 덩어리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목성·토성과는 다른 점이 있다.

그러고 보면, 그 도는 모습이 신기하다는 것도 천왕성의 특징이다.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 도는 것처럼 천왕성도 스스로 뱅뱅 도는데 지구·화성·목성·토성 등은 다들 비슷한 방향으로 서서 돌고 있지만 천왕성만은 해괴하게도 누운 채 옆으로 돌고 있다.

지구 주위를 달이 도는 것처럼 천왕성에도 작은 위성이 여럿 있어서 그 주변을 돈다. 과거 유럽 천문학자들은 행성 주변을 도는 위성의 이름에도 주로 그리스·로마신화 신들의 이름을 따서 붙이곤 했다.

예를 들어, 목성은 영어로 ‘주피터’라고 하는데, 주피터는 그리스신화의 제우스에 해당하므로 목성의 위성들은 제우스와 관련된 신화 속 인물 이름을 붙였다. 마찬가지로 토성은 영어로 ‘새턴’이라고 하는데, 새턴은 그리스신화의 거인, 크로노스에 해당하므로 토성의 위성에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인들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천왕성 주변을 도는 위성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셰익스피어가 남긴 문학 작품 속 등장인물 이름을 붙였다. 아마도 영국 과학자들이 과학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는 점과 천왕성을 발견한 허셜이 영국에서 활동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래서 『햄릿』에 등장하는 코델리아,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줄리엣 등등이 천왕성의 위성 이름이 되었다. 수천 년간 이어진, 행성이 다섯 개라는 생각을 깬 천왕성인 만큼 그 위성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도 틀을 깬 셈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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