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시작은 외모 콤플렉스 끝은 모성 탈 쓴 광기

입력 2023. 08. 22   15:35
업데이트 2023. 08. 2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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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 넷플릭스 ‘마스크걸’ 

낮엔 존재감 없는 회사원
밤엔 BJ 마스크걸 돌변

뒤틀린 외모 지상주의와
광기 어린 모성의 충돌

동명 인기 웹툰 원작
7부작 총 410분 러닝타임
긴장과 몰입 선사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이한별
이한별

 

나나
나나

 

고현정
고현정

 

염혜란
염혜란



할리우드 배우 짐 캐리를 스타로 만든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영화 ‘마스크’(1994)다. ‘마스크’는 소심한 은행원 스탠리 입키스(짐 캐리)가 우연히 얻은 마스크로 180도 달라진 성격과 함께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악당도 물리치고 짝사랑하던 티나(캐머런 디아즈)의 마음까지 얻게 되는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스토리다.

지난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에도 마스크가 등장한다. 물론 짐 캐리의 ‘마스크’와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고, 가공할 능력을 부여받는 형태의 판타지 장르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유사한 점이 있다면 ‘마스크걸’ 주인공 역시 마스크를 쓰면 평소 성격과 180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극심한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김모미(이한별)가 마스크를 쓰는 것은 인터넷방송 BJ로서 카메라 앞에 설 때뿐이다. 평소와 달리 자신감이 넘치고 리듬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격한 호응을 던지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쉼 없이 들려줄 수 있는 순간도 오직 이때다.

김모미는 어릴 적 사람들 앞에서 수준급 장기자랑을 선보일 만큼 에너지 넘치고 쾌활했다. 이런 김모미를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눅 들게 만든 건 그다지 특출 나지 않은 ‘외모’가 원인이었다(일단 작품 속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게끔 그려진다). 김모미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가 자신의 못생긴 외모 탓이라고 되뇌면서 자학한다. 어른이 되고 회사원이 된 김모미는 직장에서도 별다른 존재감 없이 지냈지만, 퇴근한 후에는 인터넷방송 BJ ‘마스크걸’로 변신해 돌변했다. 또 다른 인물 주오남(안재홍)도 김모미와 마찬가지로 외모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 무언가 단단히 뒤틀렸고, 소심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일관했다. 주오남의 ‘마스크’는 가상의 인터넷 공간 자체였고, ID로 얼굴이 가려진 그곳에서 날것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며 행복해했다.

비슷한 성장기를 거친 김모미와 주오남을 통해 현대사회의 ‘외모 지상주의’에 일침을 가할 것 같던 교과서적 이야기는 어느 순간 시청자의 예상 궤도를 완전히 벗어나 갑작스럽게 휘몰아친다. 혈흔이 흥건하게 화면을 가득 적시고, 서로 죽고 죽이는 잔혹한 장르로 숨 가쁘게 나아간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마스크걸’은 굉장히 파격적인 스토리와 고어하고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수시로 맞물리며 보는 이들에게 긴장과 몰입을 한껏 선사한다. 이는 사전정보 없이 보던 일부가 1~2회 만에 시청을 중단한 이유이기도 하다.

스토리와 화면만이 ‘마스크걸’을 독특하게 만든 요소는 아니다. 일단 주인공 ‘김모미’ 캐릭터를 3인 1역으로 소화했다는 사실은 섭외 당시부터 큰 이슈였다. 성형 전 김모미를 소화하는 이는 대중에게 아직 생소한 신인 배우 이한별이다. 성형 후 달라진 외모를 갖게 된 김모미 역은 나나, 이후 시간이 흐른 뒤 교도소 안의 김모미를 연기하는 이는 배우 고현정이다. 원작의 각색과 연출을 도맡은 이는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김용훈 감독. 김 감독은 이러한 3인 1역의 캐스팅에 대해 “작품을 하면서 내린 결정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자평하기도 했다.

7부작으로 구성된 ‘마스크걸’은 각 에피소드 타이틀을 등장인물 이름으로 구성했으며, 각자가 주인공이자 화자가 돼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 ‘아가씨’ ‘암살’ ‘박쥐’의 류성희 미술감독은 인물의 성격과 상황에 맞는 공간을 디자인하고 ‘보건교사 안은영’ ‘유령’ ‘범죄도시’의 주성림 촬영감독은 색, 조명, 카메라의 움직임, 렌즈, 화면 질감 등을 통해 에피소드별로 다른 느낌을 완성했다. 화면이 흑백으로 전환되거나 파격적인 스릴러에서 갑작스럽게 10대 성장물로 변모하는 듯한 모든 과정이 이러한 작업에 포함된다.

마무리는 2색(色)의 모성애가 맡았다. 아들 주오남을 향한 어긋난 집착에서 비롯된 광기 어린 복수심은 김경자(염혜란)를 통해, 얼굴도 모르는 딸 김미모(신예서)를 향한 격렬하고 저돌적인 모성애는 중년의 김모미(고현정)로 발현되고 분출된다. 그리고 신파까지 끼얹는다.

기구한 한 여성의 일생을 세밀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일본의 소설 원작 드라마와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요즘 시대상을 곳곳에 반영하고 ‘외모’와 ‘모성애’라는 요소를 곁들인 점은 차별화된다. 특히 김용훈 감독 특유의 멀티 플롯을 통해 여러 인물이 동시다발적 주인공으로 각개 활약하는 치밀한 전개는 ‘마스크걸’의 뚜렷한 강점이다. 고어물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거부감만 없다면 7부작 총 41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순삭’ 가능하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조금 느릿하더라도 밀도가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조금 느릿하더라도 밀도가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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