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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 중력 이론으로 계산 고리 구성 물질 맞혀

입력 2023. 08. 22   17:13
업데이트 2023. 08. 2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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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통신 - 토성의 고리와 조선의 안경

우주선 보내 관찰한 결과 사실로 밝혀져
수십㎝ 에서 수m 크기 얼음덩어리들
갈릴레이 첫 발견 커다란 귀 모양 묘사
목성·천왕성·해왕성도 가느다란 고리

미국과 유럽의 우주탐사선 카시니·호이겐스호가 찍은 토성의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미국과 유럽의 우주탐사선 카시니·호이겐스호가 찍은 토성의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사진=위키미디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사진=위키미디어

 


토성은 우주를 다루는 온갖 사진이나 영상에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나는 토성 주위를 두르고 있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고리가 있다는 것도 토성 사진이 자주 소개되는 이유라고 본다. 예로부터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별의 신비로운 힘에 관한 온갖 전설과 신화를 만들거나, 신령과 요정들이 별로 변신하고 온갖 소동을 벌이는 이야기를 꾸며낸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대단히 많았다. 그렇지만 토성이 고리를 두른 모양일 거라는 상상을 한 사람은 망원경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는 나타나지 못했다. 토성의 고리는 맨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망원경으로 살펴 봐야만 보이기 때문이다.

망원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체를 확대하거나 축소해서 볼 수 있는 렌즈를 만들어 적절히 연결해야 한다. 아마도 처음에는 눈이 나쁜 사람들을 돕고자 안경을 만들기 위해 렌즈를 자주 만들었을 것이다. 렌즈 기술은 유럽에서 먼저 발달했다. 유럽 사람들이 16세기 신항로 개척 시대에 전 세계를 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조선에도 진작부터 전해졌다. 조선의 선비 김성일은 실제로 16세기에 안경을 구해서 썼다고 하며 그 안경의 일부라고 하는 유물이 지금도 남아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은 외국에서 안경을 수입할 뿐 아니라 조선 기술로 직접 안경을 만드는 수준에도 도달했다. 단, 유리를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은 조선에서 별로 발달하지 못했으므로 아쉬운 대로 산에서 수정을 캐서 그것을 가공해 렌즈를 만들곤 했다. 조선 후기에는 경주 남석 안경이라고 불리는, 경주 지역에서 나는 수정을 재료로 만든 안경이 좋기로 유명했다. 마침 지금도 경상북도 남부 지역과 대구에 안경 업체들이 많은 편이라 묘하게 맞아 드는 느낌이 있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수정으로 안경을 만들면 자연히 색안경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수정이 항상 완전히 투명하고 깨끗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살짝 색깔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서다. 검은색 수정을 갈아서 안경을 만들면 아예 까만 선글라스 같은 안경을 만들 수도 있다.

『승정원일기』 1735년 음력 9월 1일 기록을 보면, 실제로 태양을 정확하게 관찰하기 위해 궁중의 관리가 오석(烏石) 안경이라고 하는 까만 색안경을 쓰고 해를 보았다는 내용도 남아 있다. 그러고 보면 궁전 안에서 조선의 임금과 신하들이 오손도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장면이 펼쳐진다고 해도 아주 이상한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면 혹시 조선에서도 안경 기술이 계속 발달해서 더 좋은 렌즈가 개발되고 그러다 보면 망원경을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아가 조선의 망원경을 이용해서 밤하늘을 관찰하고 조선 선비들도 토성에 고리가 있다는 것을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1745년 『조선왕조실록』 음력 5월 12일 기록을 보면 영조 임금이 ‘규일영(窺日影)’이라고 하는 장치를 부수어 버렸다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규일영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이름으로 보아 아마도 태양을 관찰하는 기구였을 것 같다. 도대체 영조 임금은 왜 그 기구를 부수었을까?

영조 임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규일영은 그전에는 함부로 엿볼 수 없었던 태양을 자세히 엿보고 따져 보는 장치다. 다시 말해 감히 함부로 볼 수 없었던 태양이라는 위대하고 높은 것을 함부로 쳐다 보고 따져 보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것은 너무 오만하고 불경스럽고 예의에 어긋나므로 나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조 임금이 규일경을 부순 것은 바로 신하들에게 감히 높은 대상을 함부로 쳐다보고 따질 생각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즉 임금 스스로도 태양을 관찰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관찰 도구조차 없애버릴 정도니, 신하로서 함부로 임금의 생활을 관찰하거나 임금의 행동을 따질 생각은 하지 말라고 겁을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의미다. 그 모든 것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행동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하늘의 물체를 관찰하는 도구조차 그것이 정치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따져 가며 착한 도구인지 나쁜 도구인지 정했던 셈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궁전 바깥에서도 새로운 도구를 개발해 하늘을 관찰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연구를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 하늘의 별이나 달을 보는 장치를 만들다가도 나쁜 사람으로 몰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부에서 나서서 한 가지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임금님 편이냐, 임금님에게 맞서는 편이냐라고 정하는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다양한 과학 기술이 발전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렌즈 너머로만 볼 수 있는 토성의 고리는 조선의 과학으로는 도저히 도달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과학의 시대를 상징하는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토성의 고리가 발견된 후, 유럽 학자들은 한동안은 도대체 저렇게 이상하게 생긴 고리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까하는 의문에 매달렸다. 토성은 지구에서 짧게 잡아도 12억㎞ 이상 떨어져 있으므로 현대에도 우주선을 보내기 힘들다. 우주선을 보낼 기술도 없었던 옛사람들이 12억㎞ 떨어진 곳에서 그 물체의 재질이 뭔지를 알아낸다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여기 깔끔한 답을 낸 첫번째 인물로 꼽히는 사람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과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다. 맥스웰은 사실 19세기 중반에 전기와 자력 이론을 정리한 사람으로 지금도 과학 교과서에 대단히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초창기에 과학계에 이름을 떨쳤던 일은 전기 문제가 아니라 토성 고리 문제의 풀이였다. 그는 직접 토성을 살펴 보지 않고도, 중력 이론으로 종이에 계산해서 토성의 고리를 추측하는 방법으로 해답을 제안했다.

맥스웰은 토성의 고리가 받는 힘을 계산해 고리가 딱딱한 한 덩어리라면 힘을 견디지 못해 그 모양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봤다. 동시에 물이나 연기 같은 물렁한 물질이더라도 그 모양을 명확히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맥스웰은 토성의 고리가 아주 많은 숫자의 작은 얼음이나 돌덩어리 같은 물체들이 둥글게 모여 있는 형태이며, 그것을 멀리서 보니까 고리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현대에 와서 우주선을 보내 토성을 관찰한 결과 맥스웰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다. 토성의 고리는 대략 수십㎝ 에서 수m 정도 크기의 얼음덩어리들이 떼지어 떠다니는 것이다.

돌아보면 유럽에서 처음 토성의 고리를 발견한 사람 중 한 명으로 취급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조차도 토성의 고리를 정확히 알아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갈릴레이는 토성에 고리가 있다고 하지 않고 꼭 토성 옆에 커다란 귀가 달린 것 같은 모양이 보인다는 식으로 묘사했다.

지금은 얼핏 우주를 배경으로 한 만화를 본 한국의 어린이들조차도 토성의 고리 모양이 대략 어떤지는 안다. 게다가 과학자들은 토성의 고리처럼 크지 않을 뿐이지 목성, 천왕성, 해왕성 역시 희미하고 가느다란 고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이런 것을 보면 과학의 발전은 역시 즐겁고 재미난 일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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