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미술 기행 - 아이들의 즐거움
아이들의 놀이
술래잡기·공놀이·굴렁쇠 굴리기…
250여 명 아이들 75가지 이상 놀이 담아
인물·마을 풍경 등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비눗방울
돌집 창문턱 기대 비눗방울 부는 소년
몸보다 작고 허름한 옷, 서민층 자녀 암시
서민에 귀했던 비누…아이 마음 사로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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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중·고등학교의 여름 방학이 끝났다. 한 번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누구나 공부가 제일 싫었던 기억이 있다. 학교·집·학원 온종일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부에 지칠 법하다. 특히 활동량이 많은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더욱 공부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유난히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이 공부하지 않고 놀고만 있으면 왠지 죄를 짓는 느낌이 들어 책상 앞에라도 있게 만든다. 지루한 공부에 지쳐 있는 만큼 즐거운 것은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이다. 놀이터에서 뛰어놀면 책상 앞에 있을 때보다 시간이 두 배는 빨리 가는 느낌이다. 그만큼 즐거웠다는 것이다.
이번에 살펴볼 그림은 즐겁게 노는 어린이들을 그린 작품인 피터르 브뤼헐의 ‘아이들의 놀이’이다. 마을 광장을 가득 채운 아이들이 저마다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화면 아래 왼쪽 두 명의 여자아이가 돌을 가지고 놀고 있고 그 옆에는 팽이를 돌리거나 굴렁쇠를 굴리고 있는 아이도 있다. 오른쪽에는 말타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굴렁쇠를 굴리는 소년 위로 두 명의 소년이 통을 굴리고 있다. 통은 비어 있는 와인통이다. 와인은 유럽 에서 음료처럼 마셨다. 물에 많이 녹아 있는 석회성분 때문에 자유롭게 물을 마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 속 아이들은 술래잡기, 공놀이, 팔랑개비 돌리기, 시소 놀이, 물놀이 등 다양한 놀이에 빠져 있다.
화면 왼쪽에는 이층집 창틀에 기대어 밖을 보고 있는 아이가 있다. 또 담의 작은 창문에 서서 광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도 있다. 창틀에 기대어 있는 아이는 아픈 아이를 나타내는데 밖을 보고 있는 시선에서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래 작은 창문에서 바깥 아이들을 바라보는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된 아이를 의미한다.
오른쪽 중간에는 여러 명의 아이가 한 아이의 머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집단괴롭힘인데 그 옆에 아이의 팔다리를 잡은 여러 명의 소년도 마찬가지다. 이는 잔혹한 아이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화면 중간, 입구에 지붕이 있는 건물은 여인숙이다. 아이가 줄을 당기면서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있다. 맥주를 만들기 위해 물이 필요한 것인데 당시 여인숙에는 투숙객들에게 고가의 술인 맥주를 팔기 위해 우물이 있었다.
그 뒤에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집들은 그림 속 장소가 번화한 도시라는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많은 아이들이 마을 광장에서 놀고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작품에서 여자아이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썼으며 남자아이들은 바지에 짧은 상의를 입고 있다. 여자아이들은 어머니들의 복장이고 남자아이들의 옷은 성인 남자들 보통의 옷차림이다. 당시 그림에서 아이들의 존재는 거의 무시됐고, 어린 시절은 성인의 예비 단계로 여겼다. 아이들을 작은 성인처럼 여기는 문화였다. 따라서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얼굴이나 체격 등 아이다운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나마 빨간색·파란색의 옷 색상은 혼란스러운 화면을 정돈하는 역할을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250명 정도다. 아이들은 특별한 장난감이 없이 팽이, 굴렁쇠, 돼지 방광으로 만든 공, 모자, 통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로 장난감을 만들어 놀고 있다. 당시 너무 많은 아이가 태어나고 죽어 부모조차 아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장난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터르 브뤼헐(1528~1569)은 이 작품에서 75가지 이상의 놀이를 보여주면서 다양한 어린아이들의 움직임을 통해 어른들에게 인생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방식을 통해 다양한 인물들과 마을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로봇·바비인형 등 아이들의 장난감은 무한대로 발전했지만, 고전적인 비눗방울 놀이는 여전히 인기가 많다. 방울방울 퍼져 나가다 사라지는 비눗방울이 아이들에게 신비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작품은 비눗방울로 놀고 있는 아이를 그린 샤르댕의 ‘비눗방울’이다.
소년이 돌집 창문턱에 윗몸을 기대고 앉아 긴 대롱으로 비눗방울을 불고 있다. 그 옆에서는 깃털 모자를 쓴 어린아이가 대롱 끝에 매달려 있는 비눗방울을 바라보고 있다.
소년이 입고 있는 옷을 살펴보면 짧은 소매와 채우지 못한 단추가 눈에 띈다. 어깨 솔기도 터져 있다. 소년의 몸보다 작고 허름한 옷은 그가 서민층 자녀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마에 튀어나온 핏줄과 한껏 붉어진 뺨은 소년이 집중해서 비눗방울을 불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창문턱을 잡은 손과 그 위에 기대어 대롱을 잡은 오른손은 흔들림 없이 비눗방울을 불고 싶다는 마음을 보여준다.
창문턱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는 어린 소년은 동생이다. 비눗방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자신도 불어보고 싶다는 열망과 호기심을 나타낸다. 18세기 프랑스에서 비누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비싼 물건이라 서민 계층은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서민에게는 귀했던 비누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물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왼쪽 담벼락에는 인동초 덩굴이 벽을 타고 올라갔다. 인동초는 소년이 기대고 있는 지점이 건물 1층이며 계절은 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장 시메몽 샤르댕(1699~1779)의 이 작품에서 소년이 기대고 있는 갈색조의 단단한 벽돌은 흰색의 투명한 비눗방울과 대조를 이루며 비눗방울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소년이 입김을 불어 넣어 한껏 부풀어 오른 비눗방울이 터질 듯 위태로운 모습은 죽음을 암시하며 갑작스럽게 닥쳐올 인간의 운명을 의미한다.
최고의 장난감은 값비싼 장난감이 아니라 비눗방울처럼 몸으로 놀 수 있는 장난감이다. 눈과 머리와 몸이 함께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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