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파란만장 커피사

887mL 특대용량이 대세… 커진 만큼 품질 따져야

입력 2023. 08. 22   16:43
업데이트 2023. 08. 2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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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커피사 - 커피 한 잔의 용량

중세 아랍·유럽 30㎖를 한 잔으로 마셔
세계대전 이후 계량 단위 온스 사용
일회용 컵 등장으로 용량 표준화
업체 간 경쟁에 잔 크기 빠르게 커져
양 늘어난 만큼 건강 등에 신경 써야



‘커피 한 잔’이라고 하면, 용량이 얼마나 되는 것일까?

달걀만 한 에스프레소 잔에서부터 생맥주 잔보다 큰 950mL짜리 대용량 테이크아웃용 컵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가장 작은 커피 잔과 가장 큰 커피 컵의 용량 차이가 900mL 이상 벌어진다. 이쯤 되면 커피 한 잔의 용량은 표준 또는 기준이 없다고 봐도 좋겠다.

소비자들로서는 ‘커피 한 잔’이라는 용어가 쓰이는 상황에 따라 그 양을 추정해야 한다. 커피의 경우, 한 잔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하루에 섭취할 수 있는 카페인의 양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커피 한 잔의 용량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는 것이 유익하다. 그 시작은 커피 한 방울의 양에서 시작된다.


미터법과 데미타스

1790년경 프랑스의 제안을 토대로 만들어져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미터법(Metric system)은 우리나라도 1960년대부터 채택했다. 현재 거의 모든 나라가 사용하고 있다.

미터법에 따라 살펴보면, ‘한 방울(Drop)’의 양은 0.05mL이다. 100방울이 모여 5mL가 되면, 이는 ‘찻숟가락(Tea spoon)’ 하나의 용량에 해당된다. 이보다 큰 단위인 ‘큰숟가락(Table spoon)’의 양은 찻숟가락으로 3개의 분량인 15mL이다. 큰숟가락 13개 정도에 담기는 분량을 ‘한 컵(One cup)’으로 정했다. 이때 이 컵은 일반적으로 ‘계량컵’이라고 부르고 ‘1C’라고 표기한다.

하지만 커피 문화에서는 ‘한 잔’ 또는 ‘한 컵’의 분량이 무슨 커피냐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굳어졌다. 먼 옛날 에티오피아 세리머니에서 사용된 손잡이가 없는 시니(Cini)에는 30mL가량의 커피가 담겼다. 12~13세기부터 관습이 이어지고 있어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된 아랍커피에서도 30mL 정도를 담는 핀잔(Finjan)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시간이 흘러 16세기 오스만투르크가 즐긴 제즈베 커피도 비슷한 크기의 작은 잔에 따라 마셨다. 농도가 진해 많은 양을 한 번에 마시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적은 양을 담는 잔이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통은 20세기 들어 탄생한 강한 맛의 에스프레소에도 이어져 30mL 가량을 담아내는 ‘데미타스(Demitasse)’ 잔을 등장하게 했다. 프랑스어로 ‘데미’는 ‘절반’을, ‘타스’는 ‘한 잔’을 뜻한다. 데미타스에는 에스프레소를 잔의 절반쯤인 30mL만 담지만, 잔의 총용량은 60mL인 것으로 통용된다.

이 잔에 ‘반 잔’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프랑스와 영국이 전통적으로 한 잔의 용량을 120mL 정도로 봤기 때문이다. 커피보다 앞서 문화를 형성한 차의 경우 한 잔에 120mL 정도를 따라 손님에게 낸다. 데미타스를 ‘샷 글라스(Shot glass)’라고도 부르는데, 에스프레소 1샷이 30mL를 의미하게 된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온스와 일회용 컵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이 커피 문화를 이끌게 되자, 커피 한 잔의 용량을 따지는데 ‘온스(ounce)’를 주로 사용하게 됐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어 차처럼 연한 아메리카노를 제조할 때, 마시는 사람의 취향에 맞춰 농도를 조절하는 데 있어 ‘온스’는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단위였다.

예를 들어, 에스프레소 한 잔의 용량이 1온스(약 30mL)이므로 이를 기본 단위로 해서 물을 섞는 비율을 4배로 하는 식이었다. 이 경우에 1온스 에스프레소에 물 4온스를 부어 5온스 용량의 아메리카노 한잔이 만들어진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전후 복구 산업의 붐과 함께 노동 현장을 중심으로 커피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커피는 특히 젊은 직장인들의 일상이 됐다. 1970년대에 들어서 스타벅스의 출현과 함께 미국에서는 일회용 컵에 커피를 담아 마시는 테이크아웃 문화가 급속하게 퍼졌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에는 커피전문점에 따라 잔의 모양과 용량이 다양했다. 하지만 일회용 컵이 사용되면서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의 용량은 표준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의 일회용 컵 역사와 관련이 있다.

일회용 컵의 역사는 사실 매우 뿌리 깊다. 기원전 1500년경 유럽 최초로 문명을 일군 것으로 평가받는 그리스 크레타섬의 미노스 사람들이 처음 일회용 컵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손잡이가 없는 원뿔 모양의 토기 컵 수천 개가 발견됐는데 대형 파티나 향연·축제에서 와인을 마시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영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이들 토기 컵은 4온스가량을 편하게 담을 수 있는 크기이다.

근·현대사에서 일회용 컵은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 본격화한 금주운동(temperance movement)에서 부활했다. 금주운동가들이 마차에 물을 싣고 도시 전역의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맥주나 위스키 대신 몸에 좋은 물을 마시라는 운동을 펼쳤다. 이때 대중이 물을 담아 마시도록 공용 컵을 사용했는데, 점차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공용 컵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졌다.

이에 따라 보스톤의 변호사이자 발명가였던 로렌스 엘런이 1907년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작은 봉투 형태의 종이컵을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공중보건에 대한 인식이 퍼지자 1페니에 5온스의 물을 컵에 따라 판매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등 미국에서 일회용 문화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가속도를 붙게 한 것이 1918년 스페인 독감의 대유행이었다. 당시 미국인 3명 중 1명이 독감에 걸렸고, 50만 명이 사망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회용 종이컵은 대중의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1950년대 커피의 유행과 함께 뜨거운 커피가 밖으로 넘치지 않도록 종이컵에 사용하는 뚜껑이 등장했고, 1960년대를 거치면서 손에 쥘 때 뜨거움이 덜 할 수 있도록 스티로폼 재질의 일회용 컵이 개발돼 20여 년간 인기를 누렸다.

사실 미국에서 처음으로 테이크아웃 커피를 판매한 곳은 1964년 뉴욕 롱아일랜드의 편의점 체인인 세븐 일레븐이었다. 1971년 이후 스타벅스가 커피 문화를 선도하면서 카푸치노, 카페라테 등 다양한 형태의 음료를 제공하면서 거품도 담을 수 있도록 일회용컵의 뚜껑이 볼록하게 나온 반구 형태도 등장했다.


테이크아웃 커피 표준 용량은? 

1980년대에 들어서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자 스티로폼 재질의 컵은 다시 종이로 바뀌기 시작했다. 스타벅스가 1987년 일회용 종이컵을 다시 채택하면서 표준으로 내세운 용량이 12온스(355mL)였다. 이 여파로 국내에 진출한 많은 커피전문점 브랜드가 아메리카노 한 잔의 기준을 12온스로 삼았는데, 당시 차나 커피 한 잔을 4온스 정도로 즐기던 한국인으로서는 혼자 마시기에 과다한 느낌을 주었다. 이에 따라 8온스 용량의 테이크아웃 커피가 국내에서는 표준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한동안 뚜렷했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 잔의 분량도 빠르게 늘어났다. 미국이 커피 문화를 주도하는 바람에 용량은 온스를 단위로 해서 증가했다. 1980년대 중반 커피전문점들 간 경쟁은 한 잔에 16온스(473mL)인 대용량 테이크아웃 컵의 등장을 부추겼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벤티(Venti)가 나타났다. 이는 ‘20’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커피 한 잔의 용량이 20온스(약 591mL)에 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들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트렌타(Trenta) 사이즈가 시판됐다. 트렌타는 ‘30’을 의미하므로, 커피 한 잔에 30온스(약 887mL)인 특대용량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용량 경쟁은 국내 주요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즉 ‘하나의 시대 흐름’이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비자들은 커피 한 잔의 품질을 따지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양이 늘어난 만큼 카페인 섭취가 과다해지는 것은 아닌지, 양만 늘리느라고 품질은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또 양을 채우기 위해 커피를 더 진하게 볶아 건강에 해로운 물질을 더 많이 생기도록 한 것은 아닌지 등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소비자들로서는 커피를 즐기는 데 이래저래 신경 쓸 것이 더 많아지고 있다.

필자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은 충북대 미생물학과, 고려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 영어영문과 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커피인문학』 등을 저술했다.
필자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은 충북대 미생물학과, 고려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 영어영문과 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커피인문학』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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