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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속 진성(토성의 옛말) 신령 거울 통해 ‘왕건 한반도 통일’ 예언

입력 2023. 08. 14   17:11
업데이트 2023. 08. 1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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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통신 - 토성은 태조 왕건의 별

고려 상징 행성…100개 이상 위성
엔셀라두스, 얼음덩어리 덮여 빛 반사
전설 속 신령의 거울 이야기와 비슷
카시니 탐사선, 물 솟는 모습 관찰
타이탄에선 석유·도시가스 넘칠 수도

 


태양계 행성들에 대한 한국의 전설 중에 가장 멋진 것을 꼽아 보라면 나는 바로 토성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 전설은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기록에 따르면 그 전설 속의 사건은 서기 918년 후삼국시대에 지금의 강원도 철원 땅에서 벌어졌던 일이라고 한다.

후삼국시대는 신라가 쇠약해지면서 한반도 방방곡곡이 각 지역 실력자들이 지배하는 곳으로 쪼개져 있었던 시기다. 그중에 궁예는 철원을 수도로 삼고 인근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철원의 시장통에 이상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한 손에는 도자기 사발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거울을 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그 거울을 팔았는데, 거울을 팔고 나서도 그 값을 자기가 가지지 않고 시장통의 거지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어디론가로 사라졌다고 한다.

거울을 산 사람은 이게 보통 거울이 아닌 것 같다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자세히 보니 거울 한쪽에는 이상한 말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궁예에게 그 거울을 바쳤다. 거울에 적혀 있는 말은 수수께끼 같은 암호로 돼 있었다.

궁예는 송함홍, 백탁, 허원이라는 세 학자에게 거울에 새겨진 말의 뜻을 풀이해 보라고 시켰다. 세 사람은 마치 모험 영화나 게임에서 고대 유적의 비밀을 푸는 주인공처럼 그 알 수 없는 문장의 뜻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세 학자는 해독에 성공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문제였다. 거울에 새겨진 말 중에는 “두 마리 용이 나타나는데, 용 한 마리는 파란 나무에 있고 용 한 마리는 검은 금에 있다”고 적힌 내용이 있었다. 세 학자는 그 뜻을 풀이하기로, 파란 나무는 항상 푸른 나무인 소나무를 의미하므로, 한자 송(松)을 뜻하고, 검은 금이란 바로 가마솥 같은 무쇠, 즉 철(鐵)을 의미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 말의 뜻이 송악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왕건이 철원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궁예의 라이벌 영웅이 된다는 예언이라고 해석했다.

이때 왕건은 궁예의 부하였다. 그러므로 왕건이 궁예의 라이벌이 된다는 말은 왕건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세 학자는 이런 말을 궁예에게 곧이곧대로 말하면 궁예가 크게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암호 해독 결과를 있는 그대로 보고하지 않고 적당히 꾸며서 둘러댔다고 한다. 얼마 후, 실제로 왕건은 반란을 일으켜 궁예를 공격했고 결국 왕건이 궁예를 무너뜨리고 나중에는 후삼국을 통일해 고려의 태조 임금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이 이야기가 토성과 연결되는 점은 이야기에 딸린 곁가지 사연이다. 궁예는 한편으로 애초에 거울을 팔았던 사람을 추적해 보라고 부하들에게 시켰다. 그랬더니 추적대는 수사 끝에 발삽사라는 절에 닿게 됐다. 발삽사에 가보니 마침 거울 판 사람과 똑같이 생긴 인형 모양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 인형이 진성(鎭星)의 신령을 표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때 진성은 토성의 옛말이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는 토성의 신령이 철원에 내려와 거울을 주면서 왕건이 영웅이 되고 한반도를 통일할 것이라고 미리 알려줬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토성은 태조 왕건을 도와준 수호신 행성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금성에 제사를 지냈고, 신라의 김유신이 화성의 기운을 받아 태어났다는 전설과 견주어 본다면 토성은 고려를 상징하는 행성이라는 말도 해 볼 수 있겠다.

『삼국사기』에는 거울을 팔았던 신비로운 사람의 모습도 묘사돼 있다. 이에 따르면 그 사람은 생김새가 크고 건장하고 귀밑 털과 머리카락이 모두 희고 옷과 모자는 예스러워 보였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신라 말, 고려 초 사람들이 생각한 토성 신령의 모습이다.

실제 토성은 머리카락이 흰 사람 모습은 전혀 아니다. 그 성분을 살펴봐도 토성은 목성과 비슷하게 기체가 주성분으로 돼 있는 연기 덩어리 같은 행성이다. 전설과 통하는 점이 있다면 토성이 크고 건장하다는 점 정도다. 토성의 무게는 지구 무게의 거의 100배에 가까울 정도이므로 커다란 행성인 것은 맞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토성 주위를 도는 위성의 숫자도 많다. 지구에는 오직 달이 있어서 지구 주위를 돌 뿐이지만, 토성에는 100개 이상의 아주 많은 위성이 그 주변을 돌고 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지구의 달보다도 더 크다.

한 가지 공교로운 것은 그 토성 주위를 도는 위성 중에 엔셀라두스라는 곳이 얼음덩어리로 뒤덮여 있다는 점이다. 얼음으로 뒤덮인 곳은 목성 주변에도 많이 있으니 그 자체로 아주 희귀한 것은 아니다. 엔셀라두스의 돋보이는 특징은 그 얼음이 아주 깨끗하고 밝은색이라는 것이다. 태양계의 여러 행성 주변에 있는 위성 중에 엔셀라두스 만큼 빛을 잘 반사하는 것은 드물다. 지구 주위에 있는 달이나 화성의 위성들은 그냥 시커먼 돌덩어리일 뿐이다. 그런데 토성은 이렇게 빛을 반사하는 얼음덩어리 위성을 갖고 있다. 마치 전설 속, 토성의 신령이 거울을 갖고 있었던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더 재미난 것은 2005년 지구에서 보낸 카시니 탐사선이 엔셀라두스에서 물이 튀어 나오는 모습을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 말은 마치 온천이나 화산 주변에서 갑자기 물이 솟아오르듯이 엔셀라두스의 얼음이 녹아서 튀어나오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엔셀라두스의 얼음판 중에서도 녹아서 어느 정도 따뜻한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바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럭저럭 생물이 살기 좋을 만큼 따뜻한 물웅덩이가 있는 곳도 있을지 모른다.

혹시 엔셀라두스의 온천에 외계인이 살고 있다가 918년, 한반도의 철원에 찾아가서 자신을 토성의 신령이라고 하고는 왕건에 대한 예언을 하고 떠난 것일까? 그런 이야기는 공상과학(SF) 영화 속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구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어서 춥기만 해 보이는 토성에도 다양하게 연구해 볼 만한 재미난 지역이 있다는 이야기 정도는 충분히 해 볼 수 있겠다.

토성에는 타이탄이라고 하는 위성도 있다. 달보다도 더 커다란 위성인데 이곳에는 탄화수소 성분이 많다. 우리가 가스레인지나 보일러에 사용하는 LNG나 휘발유와 비슷한 성분이 많다는 뜻이다. 타이탄이 있는 토성 인근은 태양에서 멀어 너무 춥기 때문에 가스레인지에 들어가는 물질이 이곳에서는 기체로 날아다니지 않고 액체로 흘러 다닌다. 그리고 그런 물질들이 활발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타이탄에는 석유나 도시가스 성분의 강물이 흐르고 있고 그 비슷한 성분의 소나기가 내릴지도 모른다. 지구와는 굉장히 다른 세상이지만 지구 못지않게 생동감 넘치는 세상이다.

그 밖에도 토성 주위를 도는 위성 중에는 반쪽은 흰색이고 반쪽은 검은색인 아주 특이한 모양의 이아페투스라는 곳도 있다. 엔켈라두스에 더해서 디오네·레아 등의 위성도 얼음이 많아서 물이 풍부한 곳이라고 한다. 토성에 대한 과학 탐사가 앞으로 진행될수록, 후삼국시대 거울에 적혀 있는 암호 이상으로 풀어 볼 만한 수수께끼는 많이 등장할 것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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