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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수많은 별 사이서 가장 빛나는 ‘왕별’

입력 2023. 08. 01   16:08
업데이트 2023. 08. 0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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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통신 - 목성은 임금님별 

시대·세월 나타내는 ‘세성’이라 불러
지구보다 300배 더 무거워 중력 강력
우주 물체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역할
지구에 돌덩이 떨어지는 것 예방

시대와 세월을 나타내는 행성이라고 생각해 세성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목성은 깊은 밤, 별처럼 보이는 물체 중에는 가장 밝고 굵게 빛난다.
시대와 세월을 나타내는 행성이라고 생각해 세성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목성은 깊은 밤, 별처럼 보이는 물체 중에는 가장 밝고 굵게 빛난다.

 


탑골공원에 가면 한쪽에 계단 모양으로 놓인 돌덩이가 몇 개 있다. 계단을 딛고 어디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계단에 무슨 특별한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얼핏 보면 도대체 공원 한편에 이런 게 왜 있나 싶은 이상한 돌덩이다. 도대체 이게 무엇일까? 그나마 요즘은 그 옆에 설명 푯말이 있어서 그 내용을 읽어 보면 사연이 설명돼 있다.

조선 후기에는 이 돌덩이가 종묘 인근에 있었다고 하는데 『조선왕조실록』 1758년 음력 5월 4일 기록을 보면, 영조가 이 돌덩이를 가리켜 도대체 이게 무엇인지 혹시 아느냐고 신하들에게 물어보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그 계단 모양 돌덩이의 정체에 대해 아는 신하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영조가 전설 하나를 신하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옛날 먼 선대 임금님 한 분이 어느 날 밤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 위해 평범한 사람으로 변장하고 서울 거리로 나섰다고 한다. 그런데 문득 길거리 한쪽에서 어느 할머니와 마주쳤다. 갑작스럽게 마주치자 임금님은 당황해 급히 버드나무 아래 쪽으로 숨었다.

그 할머니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별을 보더니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세성(歲星)이 적성(賊星)에 쫓겨 유성(柳星)에 들어간 형국이로구나.” 적성은 글자 그대로 옮기면 ‘도적의 별’이라는 뜻이고, 유성은 ‘버드나무의 별’이라는 의미다. 또한 세성은 ‘임금님’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니 밤하늘의 별 모양만 보고도 임금님이 피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 버드나무 아래로 간 모습이라는 사실을 할머니는 알아낸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처럼 밤하늘의 별을 보고 점을 쳐서 세상일을 알 수 있다고들 생각했다. 임금님은 할머니의 실력에 감탄해 할머니를 운관이라는 기관에 배속시켰다고 한다. 할머니를 천문학 담당 관청의 연구원으로 특별 채용한 셈이다. 그리고 그 할머니를 위해 해시계를 올려놓는 장소를 돌로 만들었다.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해시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밑의 돌 쌓아 둔 것 일부만 남아 있게 됐다. 영조는 지금 탑골공원에 남아 있는 돌덩이를 가리켜 해그림자를 보는 곳이란 뜻으로 ‘일영대’라고 불렀다. 요즘은 ‘앙부일구 대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 이 전설을 다시 살펴보면 조선시대 사람들 사이에 대단히 실력이 뛰어난 할머니 천문학 고수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그 흔적이 여전히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전설 속 할머니 천문학자가 임금님을 나타내는 별이라고 생각했던 세성은 목성의 옛말이다. 목성은 지구보다 한참 멀리서 느긋하게 태양을 돌고 있다. 지구에서 보면 목성은 아주 천천히 밤하늘을 이리저리 오가는 것처럼 보인다. 대략 12년이 지나면 얼추 목성이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된다. 고대 중국인들은 그래서 그 움직임이 12가지 띠와 맞아떨어진다고 봤다. 그리고 목성이 시대와 세월을 나타내는 행성이라고 생각해 세성이란 이름을 붙였다.

정확히 따져 보면 목성의 움직임이 딱 12년과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실 목성과 띠 사이에 뚜렷한 관계는 없다. 오히려 목성이 임금님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던 조선의 전설이 단순하지만 잘 맞아떨어진다. 목성은 깊은 밤, 별처럼 보이는 물체 중에는 가장 밝고 굵게 빛나기 때문이다.

물론 금성이 목성보다 훨씬 밝게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금성은 주로 새벽이나 저녁에 잠깐씩 보이는 행성이다. 깊은 밤, 많은 별 사이에서 가장 밝은 왕별이라고 할 만한 것은 보통 목성이다.

목성이 이렇게나 밝은 이유는 행성 자체가 크기 때문이다. 목성의 무게는 지구의 300배보다 더 무겁다. 목성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행성의 무게를 모두 다 합쳐도 목성보다는 작다.

재미난 건 목성은 무겁긴 하지만 오히려 주성분은 가벼운 기체 종류다. 가벼운 기체이지만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이 뭉쳐 있어 전체 무게는 대단히 무거워진다. 그래서 행성 중 기체가 주성분인 커다란 행성을 흔히 ‘목성형 행성’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지구처럼 돌덩어리로 돼 있지만 크기는 작은 행성을 ‘지구형 행성’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분류하면 태양계에서 수성·금성·지구·화성은 지구형 행성이고,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은 목성형 행성이다.

목성은 무거운 만큼 그 무게로 다른 물체들을 당기는 힘인 중력도 무척 세다. 그래서 목성은 태양계를 도는 동안 우주를 떠다니는 비교적 자잘한 다른 물체들을 중력으로 이리저리 강하게 끌어당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산 만한 크기의 돌덩이들이 우주를 떠다니는 것을 소행성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많은 물체 중에는 목성이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그 움직임이 휘어지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일부 학자는 목성이 중력으로 이런 물체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그 물체들이 지구에 충돌하지 않게 된다고 추측한다. 그래서 목성을 ‘착한 목성’이라고 부른다. 착한 목성은 마치 우주의 돌덩이들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같은 역할을 한다. 즉, 착한 목성이 우주의 돌덩이들을 제거해 주는 덕택에 지구의 하늘에 갑자기 돌덩이들이 떨어지는 일이 예방된다.

실제로 1994년 슈메이커-레비9라는 혜성이 목성에 충돌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착한 목성 진공청소기가 1994년 혜성 하나를 제대로 빨아들인 셈이다. 그 폭발은 한국의 보현산천문대에서도 생생히 관찰됐다. 그때 몇몇 한국 학생 사이에서 혜성이 목성에 충돌할 때 목성에서 이상한 전파신호가 많이 관찰됐는데, 그것이 목성에 살던 어떤 종족이 마지막으로 보낸 구조신호일지도 모른다는 헛소문이 돌았던 게 기억난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로 ‘나쁜 목성’이라는 생각을 고려해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다. 목성이 거대한 덩치의 중력으로 자잘한 우주의 물체들을 이리저리 뒤흔들기 때문에 그 움직임이 꼬이고, 그 바람에 오히려 지구 쪽으로 무엇이든 더 많이 떨어지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영국 개방대 물리학 교수 출신인 스티븐 웹 같은 학자는 저서에서 나쁜 목성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그 덕분에 물을 가진 혜성이 지구에 많이 부딪혀 지구에 물이 더 풍부해질 수 있었고, 또 가끔 지구에 그런 재난이 닥쳐왔기 때문에 생물들이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빠르게 진화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소개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과연 목성이 착한 목성인지, 나쁜 목성인지 확실히 잘라 말할 시점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목성을 임금님에 비유한 조선시대 할머니 천문학자의 생각은 어느 쪽이든 맞다고 본다. 한 조직의 대표로 목성처럼 힘이 센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착한 목성이 돼 온 세상 사람들을 지켜 줄 수도 있고, 나쁜 목성이 돼 세상에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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