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 쓰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쓰거나 만들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가 잘된 책이고, 만든 책 중 가장 잘된 것은 김동식 작가의 『회색 인간』이라는 소설집이다.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이후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덕분에 계속 작가라는 직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 일은 굳이 어디에 출근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그래서 2년 전 아이들이 바다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하기에 “그래, 아빠는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살 수 있으니 가면 되지” 하는 말과 함께 강원도 강릉으로 이주했다. 서울에서 19년을 살고, 원주에서 19년을 살고, 이제 강릉으로 왔다.
얼마 전 강릉에 작은 서점을 열었다. 강릉에서 사귄 친구들이 작업실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거기서 놀면 되겠다고 말했고, 그때 술에 취한 김에 “그래, 만들면 되지 뭐” 하고 답하고 말았다. 다음 날 그들은 내게 지역 교차로에서 알아본 몇 군데 매물을 내밀었다. “아니 왜 너희가 더 진심인 건데, 애초에 지금쯤 다 잊었어야지.” 그들은 내가 다른 지역에 강의를 간 사이 자신들이 집을 보러 왔으며 너는 돈만 넣으면 되겠다고 말했다. 사진으로 보니 무척 괜찮아 보였다. 4평 정도 되고 작은 화장실도 딸린 공간. 누군가가 카페를 1년쯤 하다가 코로나19로 인해 곧 나갔다고 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는 20만 원. 한 달에 20만 원이면 글을 쓰러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는 금액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작업실 공간을 계약했다.
작업실은 번화가에서 많이 떨어진 주택가에 있었다. 무척 조용해 글 쓰기엔 좋을 것처럼 보였다. 신축 건물이어서 도배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그 친구들이 도배지를 사서 찾아왔다. 그날 그들과 짜장면·탕수육 세트와 함께 술을 한잔 마시다 보니, 여기는 이제 작업실이 아니라 카페라든가 주점이 될 것처럼도 보였다. 누군가는 이 공간에서 커피를 팔아 보면 어떻겠냐고 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과자를 떼 올 테니 같이 팔고 수익을 나누자고도 했다. 그들의 말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말했다. “여기서는 서점을 해 보고 싶어.” 다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여기까지 누가 책을 사러 올 것이며 요즘 서점을 해서 먹고살겠냐고 나를 성토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90년대 초 집에서 나와 서울 성산동의 성미산 자락을 타고 내려가면 작은 골목이, 그리고 천안문고라는 작은 서점이 나타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30대 여성이 나를 반갑게 맞아 줬다. 그를 표현할 단어라고 하면 단아함이겠다. 서가를 돌아보고 있으면 그는 나를 바라보다가 찾는 책이 있는지 물었고 계산할 때면 자신도 그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웃어 보이곤 했다. 그는 항상 흰 장갑을 끼고 있었다. 울긋불긋한 목장갑이 아니라 정말로 하얀, 눈부신 장갑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책이라는 게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 알 수 있었다. 서점에 이르는 길도, 그 단아한 공간에 들어가는 일도, 그 사장님과의 짧은 대화도 그 시절의 낭만이었다.
“서점은, 낭만이 있잖아. 나 여기에 서점을 열어 볼래.”
그래, 오고 싶어서 강릉에 온 것처럼 어린 시절의 꿈이 있었다면 해 보면 되지 뭐. 잃을 것은 20만 원의 월세가 전부일 테니 서점을 열어 봐야지. 돼야 할 어떤 일들은 이렇게 시작되기도 한다. ‘당신의 강릉’이라는 작은 서점은 그렇게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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