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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교리 해방선언…책장 덮고 앱 펼쳤다

입력 2023. 07. 05   16:36
업데이트 2023. 07. 0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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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없는 교리 문헌’ 시대 연 육군교육사 

두껍고 무거운 교리 문헌, 거리감
매년 발간하는 책자 421종
나무 2667그루·예산 4000만 원 필요

모든 문헌 전자책 형태 저장·열람
시간·비용 절약, 환경보호 1석3조
 

‘종이 없는 교리 문헌’ 정책으로 도입되는 모바일 교범 앱의 예시 화면.
‘종이 없는 교리 문헌’ 정책으로 도입되는 모바일 교범 앱의 예시 화면.


백과사전·전화번호부·우편번호부. 3가지의 공통점은 인쇄물이라는 점, 또 최근에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터넷 기반 디지털서비스로 다양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게 되면서 과거보다 이들의 쓰임새가 현저하게 줄었다. 육군에서도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문서 위주의 행정에서 벗어나 접근성·활용성을 높인 플랫폼을 도입하고 있다. 육군교육사령부의 ‘종이 없는 교리 문헌’ 정책도 그중 하나다. 배지열 기자/사진=부대 제공 


고대부터 현재까지 모든 군사강국은 전쟁의 결과를 기록하고 성찰하면서 혁신의 실마리를 찾아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어 왔다. 이 기록이 군사행동 원리와 지침을 담은 교리(敎理)다. 모든 구성원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지식의 본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겁고 두꺼운 교리 문헌 ‘외면’

그러나 최근에는 이 교리가 사용자와 멀어지고 있다. 디지털기기에 익숙한 장병, 특히 초급간부들에게 무겁고 두꺼운 교리 문헌은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다. 또 특정 장소에 보관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제로’ 수준이다. 게다가 매번 들고 다닐 수 없어 활용성이 낮고, 원하는 키워드를 한 번에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해 가독성마저 떨어진다.

도서 출판의 사회적 트렌드도 변하고 있다. 텍스트 위주 책자에서 전자책(e-book)과 오디오북,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콘텐츠 수요가 급증했다. 대부분의 책이 과거 작가의 글 위주로 만들어지던 때와 달리 이제는 북디자이너가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고려한 디자인과 삽화, 문구 등을 활용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에 육군 교육의 컨트롤타워인 교육사령부(교육사)가 ‘종이 없는 교리 문헌’ 정책을 추진 중이다. 박정환 육군참모총장도 ‘교리 문헌 활용성 증대 및 업무 경감을 통한 제대별(훈련) 여건 보장’을 지시한 바 있다. 정책의 골자는 책자 형태의 교리 문헌 발간을 최소화하고, 디지털 교리 문헌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모든 교리 문헌을 전자책 형태로 저장해 해당 체계에서만 열람하도록 하고, 책자형 교리 문헌은 부대별 필수 수량만 보유하게 한다는 것. 부대 간 대여·관리전환시스템도 도입하기로 했다.

‘웹 체계’에서 ‘앱 체계’로 전환

‘종이 없는 교리 문헌’ 정책의 캐치프레이즈는 ‘Any time, Any where’다. ‘모바일 교범 앱(App)’으로 필요할 때면 언제·어디서든 교리를 확인하고 교육훈련에 활용할 수 있다.

모바일 교범 앱은 기존 인터넷 웹(Web) 체계로 운용되던 모바일 교범 보기를 신규 개발한 앱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난해 7월 육군본부 지능정보기술단 모바일체계과에서 개발을 시작해 12월 완료했다. 지난 4월부터 3개월간 육군 전 부대를 대상으로 시험운용 기간을 거쳤다.

경제적 효과도 기대된다. 교육사에 따르면 현재 육군이 1년간 발간하는 421종의 종이 교리 문헌을 인쇄하는 데는 약 3150만 장의 종이가 쓰인다. 일반 A4용지 박스로는 1145박스, 나무로는 2667그루에 이르는 양이다. 예산으로 환산하면 매년 약 4000만 원 규모인데, 종이 사용을 줄이면서 예산까지 절감할 수 있는 셈이다.

환경을 지키는 데도 일조할 수 있다. 종이의 원재료인 펄프 1톤을 얻기 위해서는 수령 30년 이상의 나무 17그루가 필요하다. 펄프 1톤으로는 A4용지 73박스, 책 365권, 종이 20만750장을 만든다.

결론적으로 ‘종이 없는 교리 문헌’ 정책은 사회·경제적 비용을 절감하는 문서관리체계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디지털 데이터 확보와 체계적인 분석·활용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 전망이다.


[인터뷰] 김동호 육군교육사령부 교리발전부장
Any time, Any where…“내 손 안에 교리, 파이트 투나이트 확고히”

‘PDF 파일→스마트북→AI’ 3단계 전환

디지털 플랫폼 교리, 전투력 강화 도움

 

김동호(소장) 육군교육사령부 교리발전부장이 ‘종이 없는 교리 문헌’ 정책의 도입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양동욱 기자
김동호(소장) 육군교육사령부 교리발전부장이 ‘종이 없는 교리 문헌’ 정책의 도입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양동욱 기자


“사단장 때 예하 대대에 가 보면 교범창고라는 장소에 교리 문헌이 쌓여 있었습니다. 대부분 몇 번 본 흔적도 없이 방치돼 있었죠. ‘이대로는 안 된다’ 싶었습니다. 지난해 교리발전부장 보직을 맡으면서 당시 생각했던 걸 추진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김동호(소장) 육군교육사령부 교리발전부장은 야전부대 지휘관으로 재직할 때의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교리 문헌이 일선 부대에서도 외면받는 현실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또 당시 책임지역 내 유명 도서업체를 방문했다가 스마트 플랫폼 기반 도서의 현주소를 확인한 경험도 뇌리에 박혔다.

그는 “다양한 콘텐츠를 보고 자란 세대에게 계속 종이로 된 자료를 주면 효과가 있겠냐”며 “최신 트렌드를 추구하는 사회와 군의 속도 차이도 줄여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체감했다”고 회상했다.

교육사는 총 3단계에 걸쳐 ‘종이 없는 교리 문헌’ 정책을 정착시킬 방침이다. 현재는 모바일 앱 기반 체계에 PDF 파일 형태로 모든 교리 문헌 내용을 수록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2단계는 오는 2026년까지 ‘육군(Army) 스마트북’ 사업을 완료하는 것이다. 기존의 평면 1차원 자료를 입체적인 3차원 콘텐츠로 만들어 교육효과를 높이는 게 핵심이다.

마지막 3단계는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챗GPT처럼 ‘생성 인공지능(AI)’ 모델로 나아간다는 구상이다. 특정 상황에 맞는 장비 또는 전술이 무엇인지 질문하면 저장된 교리 문헌과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의 선택사항을 추천받을 수 있다.

김 부장은 이번 정책이 전투력 강화에도 분명히 도움 된다고 역설했다. 스마트폰이든 태블릿이든 습관적으로 디지털 플랫폼으로 교리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올 겁니다. 언제·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내 손 안에 교리 문헌을 두고 ‘파이트 투나이트(Fight Tonight·당장 오늘 밤에도 싸울 수 있다는 준비태세)’의 정신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정책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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