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커피 최초의 기록들
커피의 첫 기록물, 철종 4년 때 나와
조선왕조실록에도 가배 2번 표기
“1884년 경복궁서 외교관에 대접”
최초의 의료 선교사 호러스 알렌 증언
19세기 천주교 선교 도구로도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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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화예술을 세계에 떨쳐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고 겨레의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하는 K컬처에서 커피를 빼놓을 순 없다. 세계인이 교류하고 화합하는 자리에서 한국만의 가치를 담은 K커피가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상상만 해도 커피애호가로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스페셜티 커피로 상징되는 고급 커피문화가 형성된 것은 그리 오래된 게 아니다. 에스프레소가 세계적 음료로 등장한 것이 1960년대이고, 와인처럼 커피의 향미를 감상하자는 ‘제3의 커피 물결’이 가시화한 것은 2000년대를 넘어서였다.
우리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모진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커피 문화를 접한 탓에 앞에 나서 세계 커피의 흐름을 이끌지 못했지만, 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영역이 아니다. 커피류 제품만 세계 시장 규모가 올해 1800억 달러(약 23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뿐 아니라 문화예술, 스포츠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거부감 없이 어우러지는 커피는 한류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 한류에 날개를 달기 위해 K커피 콘텐츠의 개발이 시급하다. 시작점은 마땅히 한국 커피의 기원에 관한 스토리텔링이다.
최초의 커피 표기
커피를 가장 먼저 표기한 국내 기록물은 1848년(헌종14)에 윤종의가 쓴 『벽위신편』이다.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영국에 무릎을 꿇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서양 세력의 조선 침투를 우려해 벽사위정(闢邪衛正)의 방편을 제시한 책이다. 벽사위정은 ‘사교(邪敎)를 물리치고 정도(正道)를 지킨다’는 뜻이다. ‘사교’는 천주교를, ‘정도’는 성리학을 의미한다.
당시 서부도사를 지내던 윤종의는 서양 세력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벽위신편』을 7권 5책으로 증보해 나갔는데, 커피가 기록되는 시점은 1852년 철종 4년 때이다. 따라서 커피를 적은 첫 기록물은 철종 때 나왔다고 봐야 한다. 윤종의는 신구대륙을 인문지리학적으로 서술한 제5권 ‘정리전도(程里?度)’에 스페인이 필리핀을 침략해 가비(加非)를 심은 사실을 소개하면서, “가비(加非)는 넓적한 청흑색 콩으로서 볶고 삶아 먹는다. 맛은 쓰고 향은 차와 유사하여 서양인이 차 대용으로 마신다”고 적었다.
‘가비’는 커피를 음차한 것인데, 고종 35년(1898년) 조선왕조실록에는 표기가 가배(??)로 바뀐다. 임금이 드신 음료였기에 ‘귀하다’는 의미에서 ‘구슬옥 변’을 붙이는 바람에, 가비보다 원래 발음에서 다소 멀어졌다. 조선 말기 커피가 점점 대중에 퍼지면서 일반 기록물에는 ‘구슬옥 변’ 대신 ‘입구 변’을 붙여 가배(??)로 표기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가배가 2번 표기됐는데, 다른 하나는 일제강점기로 순종 8년(1915년) 때 나왔다. 순종이 “백작(伯爵) 이완용(李完用)에게 가배기구(??器具) 1조(組)를 하사하였다”는 대목이다.
커피를 처음 마신 한국인
항간에는 고종이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뒤 커피를 접했고, 이것이 한국 커피의 효시라는 말이 파다하다. 하지만 이는 몇 가지 기록만 봐도 사실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아관파천보다 12년 앞선 1884년 이미 시중에 커피가 음료로 제공됐다는 기록이 있다.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1885년 펴낸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1884년 1월 한강변에서 커피를 대접받았다고 적었다. 그는 1883년 민영익, 홍영식 등 조미수호통상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다녀온 공로로 왕실의 초청을 받아 서울에 왔던 차였다. 그는 저서에 “조선 고위 관리의 초대를 받아 한강변 언덕에 있는 ‘슬리핑 웨이브’라는 별장에 가서 당시 조선에서 유행하던 커피를 식후에 마셨다”고 썼다. 해당 고위 관리는 경기관찰사이던 김홍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전하는 기록만 따지면, 그가 커피를 마신 최초의 조선인일 가능성도 있다.
이보다 앞서 유길준이 『서유견문』에서 1883년 7월 미국의 커피를 묘사했지만, 실제 마셨는지는 모호하다. 이어 윤치호가 중국 상하이에서 “가배관(커피집)에 가서 두 잔 마시고 서원으로 돌아왔다”고 일기에 적었는데, 시점이 1886년으로 김홍집보다 늦다.
부산항 통상사무서 서기관을 지낸 민건호가 쓴 일기를 모은 『해은일록』에 1884년 7월에 “갑비차(甲斐茶)를 대접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갑비차는 커피를 음차한 것으로, 이 시기 부산에서도 커피 문화가 퍼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기록은 아직 없지만 구전이나 정황증거로 볼 때, 김대건(1821~1846) 신부가 조선 땅은 아니지만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할 때 커피를 마신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1840년대로 철종보다 앞선 헌종 때이다.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등 조선의 신학생들이 커피와 빵 같은 서양음식을 먹고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평화방송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성 김대건’에 묘사된다.
17~18세기 예수회와 외방선교단은 세계 곳곳에서 커피를 선교에 적극 활용했다. 조선 선교를 위한 본부는 중국의 베이징에 설치됐다. 정조 때의 인물인 이승훈 선생이 커피를 접한 최초의 조선인으로 물망에 오른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 김대건 신부보다 50년 앞선 1780년대에 그는 북경으로 건너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영세를 받고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선생은 40여 일 동안 프랑스 선교사들과 숙식을 하면서 교리를 배웠는데, 이때 커피를 마셨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커피
조선이 1876년 문호를 개방하면서 외국 선교사와 외교관들이 밀려들었다. 커피는 이들이 마시기 위해 유입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조선에 커피가 수입된 최초의 기록은 1886년 일본 외무성이 조선에 파견한 영사들의 보고서를 묶은 『통상휘편』에 나온다. 1883년 8월 조선국 인천항 수출입일람표의 수입외국산물품품목에 커피가 적혀 있다. 이 시점은 아관파천보다 13년을 앞선 것이다. 이보다 20여 년 앞선 철종 때 커피가 우리 땅에 들어와 천주교 선교의 도구로 활용됐을 정황도 파악됐다. 조선 천주교회 4대 교구장을 지낸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시메옹 프랑수아 베르뇌 주교가 1860년 3월 6일 홍콩의 리부아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 “커피 20㎏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베르뇌 주교는 이듬해 9월에도 커피 25㎏을 보내 달라고 편지를 썼고, 1863년 11월에는 요구량이 50㎏으로 늘어났다. 1865년에도 커피를 요청해 받았는데, 그가 한국땅에 들여온 커피는 어림잡아 130㎏에 달한다. 당시 커피 추출에 사용된 커피의 양이 1잔에 4g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자그마치 3만2500잔에 달하는 분량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커피의 희소성 때문에 2번 이상 우려내는 일도 흔했다. 베르뇌 주교가 커피를 처음 받고 순교하기까지 5년 동안 매일 30~40잔을 마실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따라서 주변의 천주교 신자들도 함께 커피를 마셨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이후 커피가 등장한 곳은 경복궁이다. 최초의 의료 선교사로 기록된 호러스 알렌은 1884년 경복궁에서 커피가 제공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갑신정변 때 부상당한 민영익을 치료한 것을 계기로 고종의 어의가 됐고, 정2품 벼슬도 받았다. 알렌은 3년간 경복궁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가 1908년 『한국의 풍물(Things Korean)』이란 책을 썼는데, 어의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궁중에서 대기하는 동안 시중들은 사양하는데도 불구하고 잎담배와 샴페인, 사탕, 과자를 끝까지 후하게 권했다. 후에 그들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그 품목에 홍차와 커피를 추가했다.”
아관파천 이전에 커피는 이미 외교관을 대접하는 경복궁의 공식 음료였던 것이다.
베르뇌 주교의 커피가 왕궁까지 전해졌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고종의 생모 민씨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세례명이 마리아였다. 고종의 유모도 천주교 신자였다. 천주교와 커피, 그리고 경복궁에 깃든 이야기는 18세기 프랑스 루이 14세가 커피 묘목을 손에 쥐게 된 사연 못지않게 드라마틱하다. 우리만의 K커피 콘텐츠로 세계 커피애호가들의 주목을 끌어야 한다. ‘커피 문화 강국’, 그것도 곧 국력이다.
필자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은 충북대 미생물학과, 고려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 영어영문과 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커피인문학』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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