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아마존 열매는 사막 물고기를 마신다

입력 2023. 06. 29   16:35
업데이트 2023. 06. 2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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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환 정형외과 전문의·작가
이지환 정형외과 전문의·작가


아프리카 복판에 ‘차드’라는 나라가 있다. 차드에는 대한민국 3개가 통째로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큰 호수가 있었다. 촉촉한 호수 덕에 차드는 꽤나 풍족히 발전했다. 때문에 외세 침입도 잦았다. 11세기 중앙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넘어온 이슬람 침략을 받았고, 이후 프랑스 식민지가 됐다. 이러한 영향으로 현재 차드 인구 절반은 이슬람, 나머지는 기독교다.

지금, 호수는 영광을 버리고 완전히 메말라 나체처럼 바닥을 드러냈다. 풍요를 상징했던 규조류는 먼지가 됐고, 물고기는 화석이 됐다. 흔적 뿐인 호수 북동쪽에는 티베스티 산맥과 엔데니디 산맥이 무심히 섰다. 두 산맥은 협곡을 만들어 난폭한 바람으로 메마른 호수 바닥을 긁어 올린다. 호수 바닥 먼지는 역사를 품고 멀리 대서양으로 여행한다. 날아가는 호수 바닥 먼지가 너무 많다. 얼마나 많은지 지구에서 700㎞ 떨어진 칼립소 위성에서도 보인다. 매해 대서양으로 날아가는 먼지 무게는 대략 코끼리 5000만 마리, 전세계 인구 무게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아프리카 코끼리 대군이 해마다 바람을 타고 미국을 향해 날아가는 셈이다.

봄마다 미세 먼지로 고통받는 우리는 이 말을 듣고 기겁한다. 하지만, 이 아프리카 태생 먼지는 이로운 일을 제법 한다. 미국을 침공하는 허리케인은 아프리카 서쪽에서 똬리를 튼다. 아프리카발 먼지는 쏟아지는 총탄처럼 허리케인에 구멍을 내고 이내 항복을 받아낸다. 먼지가 없었다면 뉴욕은 해마다 허리케인 피해복구에 수천만 달러를 썼을 것이고, 나아가 보스턴 중심으로 성장한 미국의 역사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먼지는 바다도 살린다. 대서양에 떨어진 먼지들은 논개처럼 해수면 이산화탄소를 단단히 끌어안고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지구 온난화를 막는다. 먼지는 대서양 생태계도 살린다. 네덜란드 국립과학연구원은 사막에서 날아오는 먼지를 분석하기 위해 대서양 중앙에 수집용 부표를 띄워 1년 마다 점검한다. 연구 결과 먼지에서 엄청난 양의 규조류 화석이 발견됐다. 규조류는 식물성 플랑크톤 사체로 영양분이 풍부하다. 이들은 바다 플랑크톤의 훌륭한 먹이가 된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아프리카 먼지가 대서양의 훌륭한 영양소인 것이다.

아프리카 먼지는 아마존도 먹인다. 일부 먼지는 긴 항해를 거쳐 남아메리카 열대 우림까지 도달한다. 일부라 해도 매해 2000톤이 넘는다. 먼지는 잊힌 호수의 물고기 사체에서 기인한 ‘인’을 포함하고 있다. 이 인들은 아마존 나무 생장에 밑거름이 되고, 덕분에 아마존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먼지만 남기고 건조해진 호수는 과거 유복했던 나라, 차드의 흔적이다. 볼품없이 바닥을 보인 호수는 목구멍 텁텁한 감성을 남긴다. 서럽게 욕된 모양새지만 쓰임새는 그렇지 않다. 호수가 메마른 덕에 뉴욕은 안전하고 대서양은 풍족하며 온난화는 늦춰진다.

이 칼럼은 내게 허락된 마지막 지면이다. 1년간 많은 이야기를 술처럼 빚어 내었다. 그 동안 얘기를 맛 봐준 독자분들께 감사함을 올리고, 바쁜 병원 일정으로 종종 마감 시간을 지키지 못한 필자를 인내해준 편집자분들께 죄송함을 전한다. 바닥만 남은 작별이지만 괜찮은 이별이다. 그동안 활자를 통해 전해온 우리의 이야기가 낡은 호수 먼지처럼 어느 곳에서 만나 당신 삶 속 적절한 영양분 모습으로 충족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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