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여름날의 옥수수를 좋아한다. 사실, 일년내내 옥수수를 갈구하는데 여름에만 그것을 아껴 먹는다. 제철의 재료와 가까운 재료에 천착하는 그녀의 취향이다. 유통의 편의야 있겠지만, 초여름 햇살의 옹호를 받고 자란 볼통볼통한 옥수수자루를 말리고 얼리는 것은 애석한 일이긴 하다.
오늘 저녁에는 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 밭에서 수확한 햇옥수수를 구해 옥수수 솥밥을 지었다. 뜸이 잘 든 밥 사이로 통통한 강냉이가 무수히 박혀있다. 샛노란 여름의 햇빛이 달큼하게 입속에 물든다.
얼마 전 여름의 문턱에서는 햇완두콩으로 솥밥을 지어 먹었었다. 완두콩 철이 끝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그녀를 보며 ‘완두콩이여 안녕’이란 제목으로 글을 쓴다고 말했다가 괜스레 핀잔을 들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슬픔이여 안녕』의 원제는 『bonjour tristesse』야. ‘굿바이 슬픔’이 아니라, ‘헬로 슬픔’이라구!”
“그래, 그럼 좀 기다렸다가 옥수수를 처음 먹는 날 ‘옥수수여 안녕’을 쓸게.”
따사한 햇볕에 충분하게 무르익은 제철의 옥수수를 만났으니 솥밥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마침 이 집에는 얻어먹기만 하는 미쉐린 셰프가 한 명 있다. 이번에는 그가 파스타를 만들기로 한다. 옥수수 삶은 물로 링귀니 면을 삶고, 옥수수 알갱이와 참나물을 믹서기에 갈아 페스토 파스타를 만든다. 몇 알의 옥수수로 마지막 장식을 하니 모양도 맛도 제법 그럴싸하다. 여름밤의 옥수수 만찬이 끝난 뒤, 아내는 삶은 옥수수 한 자루를 입에 물고 아즈텍 문명 신화 속의 옥수수 인간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야인들은 옥수수 신이 노랗고 하얀 옥수수 반죽으로 인간을 빚었다고 믿었다.
2023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곡물은 옥수수다. 연간 국내 옥수수 소비량은 1500만 톤이 넘는다. 최근 쌀 소비량이 500만 톤을 밑도니, 옥수수를 쌀보다 세 배나 더 먹는 셈이다. 이러한 의외의 통계는 옥수수의 신출귀몰한 둔갑술 탓이다. 닭과 돼지, 소는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다. 라면을 튀길 때도 옥수수가 사용되고 고추장, 오렌지주스, 케첩, 마요네즈에도 옥수수시럽이 필수로 들어간다. 감자나 당근도 옥수수 유박비료로 키우니 그 안에 옥수수 성분이 들었다. 현대인 몸의 30%가 옥수수에서 온 성분이다. 마야인들의 옥수수 인간 전설은 고대의 예언처럼 정확하게 맞아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먹을 의도 없이 먹게 된 옥수수의 99.9%는 수입이다. 옥수수가 들어있는지조차 모르는데, 어디서 어떻게 재배되었는지 알 수는 더욱이 없다. 동물 복지를 생각하며 난각번호까지 확인하고 선택한 달걀이 유전자 조작 옥수수 사료로 기른 닭에서 나온 사실은 인정하기 싫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품 유해성 이슈가 우리 식탁을 불안하게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이 문장의 행간은 ‘너희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는 뜻을 상보적으로 내포한다. 우리에게는 어떤 옥수수를 먹을 것인지에 대하여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개인적 취향의 선택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 또한 있다. 언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또, 무엇을 먹어서는 안되는지 결정하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직업인 셰프로서, 사랑하는 사람의 무해하고 귀여운 취향을 굳이 지켜주고 오래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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