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전쟁과 영화

‘139명 사망·92명 부상·다수 행방불명’ 생존의 기쁨도 사치였던 그곳, 장사리

입력 2023. 06. 21   16:38
업데이트 2023. 06. 2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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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영화 -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2019) 
감독: 곽경택, 김태훈
출연진: 김명민, 최민호, 김성철, 메간 폭스

인천상륙작전 교란 목적 투입
772명의 문산호 영웅들 조명

대부분이17~18세의 학도병
낡은 장총·부족한 탄약과 식량…
난생 처음 마주한 전쟁의 공포
치열했던 임무 완수, 사실적 전달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전세를 단숨에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이자 9·28 서울 수복의 기점이 된 장사상륙작전을 현장감 있게 담아냈다. 사진은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전세를 단숨에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이자 9·28 서울 수복의 기점이 된 장사상륙작전을 현장감 있게 담아냈다. 사진은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전쟁 중 한반도에서 많은 비극이 발생했지만,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격퇴했다는 것이 자유세계를 위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지금 알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인들을 잠에서 깨우는 일종의 국제적 자명종 시계의 역할을 한 것이다.” 

(『한국에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 중, 마르그리트 히긴스 지음, 코러스 펴냄)


‘성동격서’ 교본 장사상륙작전

맥아더 장군은 트루먼 대통령의 미 지상군 파병 결정을 인지하자 상륙작전을 감행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적의 후방을 공격해 보급로를 차단하는 우회 기동작전이 수적으로 우세한 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그의 예상대로 이 작전의 성공은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놨다.

그러나 6·25전쟁의 전환점이 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는 772명의 숨은 영웅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9월 14일. 육군본부 직할 제1유격대대 대원들을 태우고 9월 13일 부산에서 출발한 문산호는 다음 날 새벽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해안에 도착했다. 인민군을 교란하기 위한 ‘성동격서’였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배는 마침 불어닥친 태풍의 영향으로 뭍을 수십m 앞두고 좌초됐다. 인민군은 고지에서 문산호를 향해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대원들은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도 상륙을 시도했고, 정오쯤 고지를 장악했다.

애초 작전 계획은 사흘이었다. 대원들은 엿새간이나 식량 보급도 없이 적군의 보급로 및 퇴각로를 차단하는 등 혈전을 치렀다. 장사상륙작전은 사실상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작전이었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다른 곳에서 교란작전을 펴 인민군의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 때문에 한국군으로선 작전을 강행해야만 했다.

게다가 훈련 2주 남짓 만에 투입된 772명 중 대부분이 17~18세의 고등학생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이 인민군과 수일간 혈전을 치르면서 임무를 완수했다는 점은 놀랍기만 하다.

뒤늦게 도착한 조치원호의 철수 작전이 끝난 뒤 미군과 한국군은 배에 탄 학도병들의 머릿수를 셌다. ‘139명 사망, 92명 부상, 다수 행방불명.’ 이들에겐 살았다는 기쁨도 사치였다. 너무 빨리 끝난 철수 작전 탓에 눈앞에서 전우들이 배에 타지 못한 채 적의 총탄에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타고 왔던 문산호는 좌초된 상태로 적의 포격을 받아 점차 바다로 사라지고 있었다.


잊어서는 안 될 이름 모를 영웅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2019)이 바로 이들의 이야기다. 인천상륙작전 D-1, 이명준 대위(김명민)가 이끄는 유격대와 학도병들을 태운 문산호는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인 장사상륙작전을 위해 장사리로 향한다. 낡은 장총과 부족한 탄약, 최소한의 식량만을 보급받은 이들은 장사 해변에 상륙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서사는 단순하다. 우여곡절 끝에 고지를 점령하고, 인민군들의 식량과 군 물자 보급로를 봉쇄하고 철수를 기다리는 과정이다. 이야기를 덧대거나 스케일을 키우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그래서 더 사실적이며 극적으로 느껴진다.

영화는 구구절절하지도 않다. 그저 저마다의 사연으로 모여들었을 학도병 772명이 난생처음 실전에 나서기 전의 두려움과 긴장, 흥분감을 포착할 뿐이다. 거두절미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시작되는 첫 장면과 상륙 과정에서 군더더기 없는 연출 솜씨를 보여준다. 고지 점령 과정은 탁월하다. 근거리에 밀착한 채 아비규환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은 전쟁의 공포를 사실적이며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전쟁영화답게 치열했던 전투에 담긴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 마음을 흔든다. 멋과 화려함을 배제하고, 실화를 실화답게 풀어낸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특히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섹시 여전사의 모습을 보여줬던 메간 폭스가 종군기자 매기로 출연해 볼거리를 더했다.


“한국을 도와야 한다” 세계적 관심 불러일으킨 종군기자
6·25전쟁 한복판에 선 여성 기자, 마르그리트 히긴스…‘귀신 잡는 해병’ 유래 기사 작성도



1950년 9월 15일, 긴박했던 인천상륙작전의 현장. 다섯 번째 상륙정에서 한 금발의 여기자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포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은 마흔다섯 해를 불꽃같이 살다 간 ‘마르그리트 히긴스’(1920~1966)였다.

‘혈관 속에 얼음물이 흐르는 여자’로도 불렸던 그는 당시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도쿄 특파원이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이 38선을 밀고 내려왔다는 소식을 접한 히긴스는 27일 한국으로 날아와 서울의 미8군 군사고문단을 찾아갔다. 하지만 사태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인 28일 2시 30분 한강 인도교가 폭파됐다. 그도 급히 한국 피난민 틈에 섞여 나룻배로 한강을 건너 서울을 탈출했다.

도쿄로 돌아간 그는 곧바로 한강 인도교 폭파와 “미국이 곧 한국에 지상군을 파견할 것”이라는 기사를 송고하고 맥아더 장군과 함께 한국에 돌아왔다. 이후 그는 미국 본사의 복귀 명령도 무시한 채 낙동강전투, 장진호전투 등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누비며 기사를 썼다.

히긴스는 취재 전선에서 수많은 부조리와 차별을 겪었다. 하지만 히긴스는 당당히 말했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내 신문사의 전쟁 취재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업무에 있어서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공평한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때문에 전선에 가는 데 실패한다는 것은 나의 주장을 훼손시키는 일이었다.”

1950년 8월 17일 대한민국 해병대 최초의 단독작전인 통영상륙작전 때 해병대 1개 중대가 북한군 대대 병력을 섬멸하고 경남 통영을 탈환하자, 히긴스는 승전보를 올리며 “이들은 귀신마저 잡을 것(Unbelievable: They might even capture the devil)”이라고 썼다. 그 유명한 해병대의 애칭 ‘귀신 잡는 해병’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처럼 히긴스의 기사는 살아있는 듯한 문체, 특히 화약 냄새가 묻어나는 듯한 현장감으로 유명했다. 히긴스는 6·25전쟁 발발 이틀 후부터 6개월간 전선을 취재하며 『워 인 코리아(War in Korea)』를 집필했다. 이 책으로 히긴스는 1951년 여성 언론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는 책을 들고 미 전역을 돌면서 “우리는 한국을 도와 꼭 이겨내야 하고,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다”라며 6·25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히긴스는 6·25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에서 우리는 준비하지 않은 전쟁을 치름으로써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또한 승리는 큰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할 때 치러야 할 비용보다는 훨씬 저렴할 것이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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