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미술 기행
신화를 떠올린 화가와 신화가 떠오르는 화가 -리처드 윌슨과 로렌스 알마 타데마
먼 항해 떠났다 죽은 남편과 이를 알고 절벽서 몸 던진 아내
윌슨은 직접 소재로…타데마 그림선 상상으로 엿볼 수 있어
작가 의도 파악보다 자신만의 방법·감정으로 즐기는 게 미술
유럽인들에게 그리스 신화란 그들의 뿌리이자 지금의 문화를 형성한 중요한 기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생활 전반에 자연스레 신화가 퍼져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은 수없이 넘쳐나기 마련이죠. 특히나 고전주의 미술의 경우 신화의 내용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감상조차 하지 못하는 작품들이 허다하니 미술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라면 신화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단순히 내용 전달을 목적으로 그려진 작품들도 있지만 때론 어떠한 상황 속에서 신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 담아내기도 합니다. 또는 신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신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흥미로운 작품들도 존재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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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윌슨의 ‘케익스의 시신을 발견한 알키오네’라는 작품을 살펴볼까요? 가파른 절벽 아래 해안가에는 거친 풍랑이 일고 있습니다. 원경에는 거친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처참하게 배가 침몰하는 모습이 보이네요. 앞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해안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데요. 한 남성의 시신이 뭍으로 꺼내지고 이를 지켜보던 왕관을 쓴 한 여성은 절규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지금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걸까요?
신화 속에 등장하는 테살리아의 왕 케익스는 선정을 베풀며 모든 백성에게 사랑받는 현명한 군주였습니다. 그는 부인 알키오네와 사랑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왔지만 언젠가부터 테살리아에는 여러 재앙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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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케익스는 신들의 저주가 아닐까하는 의심에 아폴론의 신탁을 받기 위해 배를 타고 먼 길을 떠나려 하죠. 불길함을 느낀 알키오네가 제발 떠나지 말라고 간청했음에도 두 달 안에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만을 남기고 떠나게 되죠.
출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익스는 큰 풍랑을 만나 사망합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걱정된 알키오네는 매일매일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신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국 이들의 사랑을 안타깝게 여긴 신들은 남편의 시신을 그녀에게 보내 줬고, 남편의 죽음을 깨달은 알키오네는 목숨을 끊으려 절벽에서 뛰어내리게 됩니다. 이후 그들을 물총새가 돼 사랑을 이어 나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죠.
리처드 윌슨의 작품은 바로 이 신화 속 케익스와 알키오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데요. 그런데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신화의 내용보다는 풍경이 더 눈에 들어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생 풍경화가로 살아왔던 윌슨은 아마도 이 거친 바다 풍경을 보고 신화 속 이야기가 떠올라 풍경 속에 신화 이야기를 삽입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듯 때때로 화가들은 실제 전혀 관련이 없는 장소에서도 신화를 떠올리며 작품을 남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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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신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이 아닌 경우에도 우리는 작품 속에서 신화 속 한 장면을 떠올려 볼 수도 있습니다. 19세기 영국 라파엘로 전파(르네상스 미술의 절정이었던 라파엘로 이전의 화풍으로 돌아가려고 한 영국 근대 미술의 한 사조)를 대표하는 화가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기대’라는 작품입니다.
아름다운 햇살과 풍경이 금방이라도 우리를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데요. 타데마는 프랑스에서 이미 인상주의와 아방가르드 현대미술이 태동하고 있던 19세기 말에 전성기를 누렸던 화가죠. 과거 르네상스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며 꿋꿋하게 고전주의를 고집했습니다. 미술사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아카데미즘 양식만을 추구했던 화가로 평가절하되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과연 그보다 이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화가가 얼마나 될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는 1873년과 1883년 두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로마와 폼페이 등의 고대 유적들을 답사하며 자기 작품에 신빙성을 높여줄 고대 로마인의 삶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이후 작품들은 마치 고대 로마제국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한 장면들을 연출하는데요. 특히나 고대 로마시대 대리석 건물들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던 그는 누구보다 화려하게 빛나는 대리석을 작품 속에 담아내 ‘대리석의 화가’라는 별명까지 얻기도 합니다.
작품을 살펴보면 고대시대에 대한 동경은 그의 작품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있음을 느껴 볼 수 있네요. 고대 로마 시대를 연상시키는 새하얀 대리석 테라스와 아름다운 복식을 착용한 한 여인은 멀리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작품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까요?
저는 처음 ‘기대’라는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신화 속 케익스와 알키오네가 떠올랐습니다. 작품 제목처럼 그녀는 지중해 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죠. 마치 사랑하는 남편 케익스가 하루빨리 무사히 돌아와 주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것만 같은 모습처럼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타데마는 이 작품을 그리며 제목 이외에는 별다른 해석을 남겨 두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는 제가 느낀 감정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냈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작품을 바라보며 여행의 설렘에 대한 ‘기대’가 떠오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그저 작품 속 아름다운 꽃에 집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서 누누이 이야기 나눴듯이 미술이라는 것은 언제나 정답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화가가 답을 명확히 정해두지 않는 한 누구나 자유로이 느낄 수 있으며, 작품이 화가의 손을 떠난 직후부터 작품의 해석은 오롯이 관람객에게 주어는 것이죠. 미술이라는 것은 때로 이렇게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지만, 누구든지 자유롭게 자신만의 방법과 감정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즐겨도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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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창용은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로마 바티칸 박물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했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시리즈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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