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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위해 몸바친 이들 영원히 기억했으면”

입력 2023. 06. 07   17:35
업데이트 2023. 06. 0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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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에 만난 사람들 -  ② 정주교 원길회 회장
장소길 장학회 수혜자 모임 '원길회' 역사의 산증인


베트남전 영웅 장소길 대위 추모
현충일 맞아 모교에 기념관 개관
발로 뛰며 전시품목 수집에 심혈
원주고 역사교육 공간으로 활용

1987년 장학금 수혜자들 원길회 결성
장 대위 업적 기리는 추모사업 꾸준히

장소길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수혜자들의 모임인 ‘원길회’ 정주교 회장이 원주고 교내에 있는 장소길 대위의 흉상을 배경으로 그의 희생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장소길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수혜자들의 모임인 ‘원길회’ 정주교 회장이 원주고 교내에 있는 장소길 대위의 흉상을 배경으로 그의 희생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머나먼 이국에서 작전 중 산화한 한 육군 장교가 있다. 반세기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동기와 후배들은 지금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저 한 명의 전사자로 남을 뻔했던 고 장소길 대위의 희생정신을 추모하는 이들 덕분이다. 고인의 이름을 딴 장소길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수혜자들의 모임인 ‘원길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원길회 정주교 회장을 만나 회원들의 남모를 노력과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글=배지열/사진=김병문 기자 


유고집·유품 전시한 기념관 개관

정주교(오른쪽) 원길회 회장과 권영석 원주고 교장이 장소길기념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위 사진).장소길 기념관 내부에 전시된 장소길 대위의 생전 모습 사진들.
정주교(오른쪽) 원길회 회장과 권영석 원주고 교장이 장소길기념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위 사진).장소길 기념관 내부에 전시된 장소길 대위의 생전 모습 사진들.

 
제68회 현충일인 6일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원주고등학교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선배 전우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장소길기념관’ 개관식이 열린 것. 행사는 추도, 장 대위 약력 소개, 기념관 설치 경과 보고, 헌시 낭독, 유족대표 인사 순으로 진행됐다.

뜻깊은 행사가 개최될 수 있었던 건 원길회 정주교 회장의 몫이 컸다. 정 회장이 지난해 10월 원주고 권영석 교장과 나눈 한 통의 전화가 계기가 됐다. 정 회장은 “학교 역사 자료를 전시하는 원주고 전통관이 교육 공간 부족으로 폐관하면서 장 대위 관련 자료도 오갈 곳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 기회에 기념관을 설치하는 건 어떠냐는 말이 나와 본격적으로 추진했다”고 회상했다.

기념관 설립에는 많은 사람이 힘을 보탰다. 학교는 공간을 제공하고 공사를 맡았다. 장학회는 설계·감리, 기념관 설치에 필요한 추가 비용을 내놓았다. 원길회는 전시 품목 수집에 심혈을 기울였다. 정 회장이 백방으로 수소문하면서 발로 뛴 결과 적지 않은 물품이 모였다. 장 대위의 유고집과 군번, 생도 수첩, 계급장 등 유품 21점을 모았으며 육군사관학교(육사) 육군박물관에서 장 대위의 정모를 기증했다. 육사 동기회는 장 대위가 베트남전쟁에서 사용한 개인 장구류를 보냈다.

학교는 장소길기념관을 역사교육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권 교장은 “지금 학생들은 평화가 그냥 유지될 거라 생각하지만, 엄연히 북한과 대치 중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며 “기념관에서 선배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을 느끼는 안보교육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소길장학금을 받고 졸업한 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원길회는 그동안 장 대위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사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고인의 20주기였던 지난 1991년에는 교내에 추모비를 세우고, 정문 바로 옆에 조그마한 추모공원도 만들었다. 2014년에는 장 대위 흉상을 설치해 의미를 더했다.

정 회장은 “젊은 나이에 조국의 부름을 받고 타국에서 전사한 그에게 보답하기 위해 회원들이 물심양면 돕고 있다”며 “이러한 정성이 고인의 희생에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장 대위 정신 널리 퍼뜨리는데 일조

정주교(오른쪽) 원길회 회장과 권영석 원주고 교장이 장소길기념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위 사진).장소길 기념관 내부에 전시된 장소길 대위의 생전 모습 사진들.
정주교(오른쪽) 원길회 회장과 권영석 원주고 교장이 장소길기념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위 사진).장소길 기념관 내부에 전시된 장소길 대위의 생전 모습 사진들.


장 대위는 1945년 원주에서 태어났다. 원주고와 육사를 졸업하고 1970년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현지에서의 활약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했지만, 1971년 4월 작전 중 전사해 대위로 추서됐다.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온 데에는 유가족의 결심이 밑거름 역할을 했다. 가난 때문에 배움을 포기하려는 학생들을 도우려던 장 대위의 뜻을 계승하기로 한 것. 유가족은 고인의 전사 보상금 약 100만 원 중 유고집 출판에 30만 원을 쓰고, 남은 70만 원을 원주고에 장학기금으로 맡긴 것이 첫걸음이었다.

1971년 9월 정식으로 결성식을 치른 장학회는 매년 3명의 장학생을 선발했다. 이후 주변의 도움이 더해졌고, 현재는 학년별 8명씩 총 24명을 대상자로 선발하고 있다. 각 군 사관학교 또는 경찰대 합격자는 추가로 장학금을 주고 있다. 원주고 학생들은 장소길 장학금이 훈장처럼 여겨진다고 말하곤 한다.

장학재단 이사장은 장 대위의 친형인 장춘길 씨가 맡고 있다. 정 회장은 “처음 장학금을 내놓을 때 이사장님과 가족이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이었다”며 “그런데도 선뜻 기금을 내놓으신 데서 장 대위와 가족의 성품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5년에는 장소길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지속 성장하면서 약 7억 원의 기금을 확보했고, 214명의 수혜자를 배출한 재단으로 거듭났다. 장학금을 받은 이들로 구성된 원길회는 1987년 만들어졌다.

2012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는 정주교 회장은 장학재단과 원길회 역사의 산증인이다. 2014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그는 앞으로도 원길회 활동으로 장 대위의 정신을 널리 퍼뜨리는 데 일조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피력했다.

“조국을 위해 몸 바친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다는 게 늘 아쉬웠습니다. 이번 장소길기념관 설립을 계기로 다른 학교와 군에서도 비슷한 사업에 힘써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장병이나 학생들이 그들의 삶과 희생정신을 자주 접한다면 별다른 정신전력교육 없이도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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