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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심심함을 느껴보셨나요?

입력 2023. 06. 07   17:32
업데이트 2023. 06. 0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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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를 읽고


최정환 소령 육군 특수전사령부
최정환 소령 육군 특수전사령부

 

한병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한병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군사경찰 병과 장교로서 위기협상 전문요원 교육을 수료한 이후 민간경찰들과 위기협상 스터디 모임을 함께 해 온 기간이 벌써 3년째이다. 위기협상 상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우울증 환자나 이상심리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로 스터디 모임에서 한 권의 책을 추천받았다. 『피로사회』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병철 저자는 오늘날의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표현하면서 21세기 이전의 사회를 ‘규율사회’라 규정한다. 규율사회는 국가가, 조직이 저마다의 규칙과 철학으로 우리를 통치하던 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규율사회에서는 이질성과 타자성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에 반응하듯 거부되었는데, 저자는 이런 사회현상을 생물학적으로 접근해 ‘면역학적 사회’라 표현했다.

반면 21세기 현재는 과거에 있던 ‘무엇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성은 대부분 사라졌으며 오히려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이 과잉된 상태의 시대라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은 경쟁에서 뒤처지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명 가진 것은 더 많고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론 갈수록 모든 것이 고갈되고 부족해지는 것이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 자아 주체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며 성과를 향한 압박으로 인해 ‘활동과잉’을 하게 되고 이에 따라 소진증후군 즉, 탈진우울증과 같은 신경성 질환들이 발병하게 된다고 진단하고 있다.

저자는 누군가의 규율이 없어도 스스로를 착취하며 무한한 움직임에 빠져 있는 이런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표현하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머뭇거림, 무위, 깊은 심심함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깊은 심심함…. 참 흥미로운 표현이라 생각된다.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으로 깊은 사색과 같은 의미다. 유명한 예술가나 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자주 긴 시간 동안 깊은 사색에 잠겼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그런 것들이 저자가 말하는 진짜 창조의 원동력, 깊은 심심함이 아니었을까?

잠깐의 쉬는 시간에도 손에 쥔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무수한 정보들을 스스로에게 흘려보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번 돌아보게 된다.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열심히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노력이 자칫 목적 없이 단순하고 분주한 삶으로 이어져 창조적인 과정을 가로막는 두꺼운 껍질이 될 수도 있진 않을까? 열심히 달려 나가면서도 때로는 스스로에게 깊은 심심함을 선물하며 사색적 집중 상태에 이를 때에 가지는 평온을 한 번쯤은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이런 깊은 심심함을 즐기며 스스로 나아가는 방향을 재설정하고 그동안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과 교감하며 진정한 창조와 창의가 있는 삶을 그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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