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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불교의 역사는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에 이른다고 하고, 해방 이후 불교 군종과 함께한 시간도 절대 짧지 않다. 하지만 두루 살펴보면, 현 불교 군종 활동의 모습은 아쉬움이 많다는 것에 우리 중 대다수가 동의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다시 군에 왔는가. 스스로 물어본다.
나는 불교 육군 군종법사로서 군복무를 한 번 마쳤다. 전역했을 때는, 섭섭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후련한 기분이었다. 스님으로서, 그리고 군종장교로서 5년여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고, 그 어느 하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없었고, 후회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군에 올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전역 후에 가장 먼저 한 것은, 배낭여행이었다. 승려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을 묻는다면 ‘자유’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동안 자유가 과제처럼 밀려있었기에 나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동안 누리지 못한 자유인의 자족함을 한껏 누렸다.
만사 인연을 내려놓으며 시작한 여행은 그럭저럭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어느 길 위였다. 문득, 생각이 많아진 나를 발견했다. ‘스님이란 무엇일까? 이 시대에 승려란 어떤 존재일까?’ 한국불교에서 승려는 두 가지 포지션을 지닌다. 첫째는 스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아 수행하는 수행자이고, 둘째는 불교를 대표해 위로는 삼보를 모시고 아래로는 중생에게 법을 전하고 그들을 이고득락하도록 교화하는 ‘법사’다. 이를 일컬어 불교에서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이라고 한다. 승려로서 정체성을 고민한다는 것은, 바로 이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이념에 얼마나 알맞게 살아가고 있는가 번민하는 것이다.
나는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내가 잡초처럼, 시멘트 바닥 위에서 갖은 힘을 다하며 살아가느라 지쳐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잠시 갖은 꾸러미를 내려놓았을 때, 차츰 심신이 충전됐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잡초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잡초는 어디에서든 자란다. 나는 평범한 기적을 늘 동경하는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으뜸이 되지 못한다. 재능이 있지만, 그 재능이 내가 원하는 바로 그곳에 있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법사로서 나는 설법제일 부루나와 같은 최고의 스승은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저 먼 서쪽 땅에서 몽둥이질을 당해도 연민심을 잃지 않을 그 용기가 내게는 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작은 힘을 모아, 작은 기적을 꽃피울 수 있기를 강렬하게 염원하고 있었다.
2023년이 됐다. 글을 쓰는 지금은 해병대1사단 해룡사에서 부처님 오신 날 행사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 평범하지만 또 다른 기적의 하루다. 5년 전 까지만 해도 “내가 군대를 또 오다니!”하며 어느 예능프로에 나올 법한 광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다시 올 생각을 했냐는 여러 사람의 물음이 있었다. 나는 그냥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다시 시작점에 서보겠다고 말하곤 한다. 지금도 나는 묵묵히 법당을 살펴보고 부대 일정에 맞춰 과업을 하고 평범함에서 보이는 기적들이야 말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계기라고 생각하며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군복무를 하며 무엇보다 감사했던 것은, 평범한 잡초인 나에게 햇빛이 되어준 분, 빗물이 되어준 분, 양분이 되어준 분, 따뜻한 시선이 되어준 분들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나의 가치는 그간 인연을 맺은 분들이 있기에 비로소 살아 숨 쉰다. 나는 다시금 내 마른 땅이 그 어느 곳보다 윤택함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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