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영령 안식처 국립묘지
해마다 6월이 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의병의 날인 1일, 현충일인 6일, 6·25전쟁이 발발한 25일,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29일 등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날이 모두 이달에 있기 때문이다.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6월은 다른 어느 달보다 국가의 존립과 국난 극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호국영령에 대한 애틋함·감사함이 사무친다. 제68회 현충일을 맞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을 취하는 곳, 국립현충원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국립묘지를 알아봤다. 글=이주형·조아미/사진=조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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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국립묘지 12곳…국립서울현충원, 70년 만에 국방부→국가보훈부 관할로 변경
국립묘지(國立墓地)는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공헌한 분들을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위훈을 기리며 선양하는 곳이다. 지난 5월 말을 기준으로 국내에는 12곳의 국립묘지가 있다. 2개의 현충원과 6개의 호국원, 3개의 민주묘지, 1개의 신암선열공원이 이에 속한다.
이들 국립묘지의 관리는 모두 국가보훈부가 하고 있다. 다만 국립서울현충원은 제외된다. 왜 그럴까? 국립서울현충원의 시작이 국군묘지였기 때문이다.
1953년 9월 29일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로 건국 과정에서 북한군의 도발과 여수·순천사건 및 공비토벌작전으로 전사한 장병, 그리고 6·25전쟁 때 순직한 전몰장병의 안치를 위한 장소로 서울 동작동 국군묘지를 확정하고,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관리소(국방부 일반명령 제218호)를 창설했다.
1965년 3월 30일 군 묘지는 대통령령 제2092호에 의해 국립묘지로 승격됐다. 국립대전현충원은 국립서울현충원의 안장 능력이 부족해지면서 1985년 준공됐다. 1996년에는 두 국립묘지의 관리기관 명칭이 ‘국립묘지관리소’에서 ‘국립현충원’으로 변경됐다.
이어 2006년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시행되면서 관리 주체가 이원화됐다. 서울현충원은 그대로 국방부 소속으로, 대전현충원은 국가보훈부 소속으로 이전됐다. 다만, 오늘(5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가보훈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서울현충원도 국가보훈부 소속으로 변경될 전망이다.
국립호국원은 호국용사들의 위훈과 명예 선양을 위해 1996년부터 광역자치단체별로 추진돼 왔다. 현충원 안장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분들에게도 영면을 취할 장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건립 배경이다.
호국원은 2001년 경북 영천에 개원한 것을 필두로 2002년 전북 임실, 2008년 경기도 이천에 조성됐다. 2015·2019·2021년에는 경남 산청, 충북 괴산, 제주에 각각 세워졌다. 이들 호국원은 호국용사들의 안식처이자 나라사랑의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 2006년부터 국가보훈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재향군인회가 위임·운영했다.
민주묘지인 4·19묘지는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자행한 권력에 맞서다 4·19 혁명 때 희생된 분들을 모시고 있다. 1963년 9월 20일 약 3000평으로 건립됐으며, 그 의의와 정신이 재조명돼 ‘성역화’ 사업이 이뤄졌다. 1995년 국립묘지로 승격됐다.
3·15묘지는 3·15부정선거에 항거하다 희생된 마산 시민들을 위해, 5·18묘지는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분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2년 7·8월 국립묘지로 승격·지정됐다.
대구 신암선열공원은 국내 최대 독립유공자 집단 묘역이다. 건국훈장 독립장·애국장 등을 수여받은 분을 포함해 52분이 안장돼 있다. 1955년 조성된 이후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가 관리해왔다. 2018년 5월 1일 국립묘지로 승격,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다.
국가유공자 고령화 따라 안장 능력 확충 추진…국민 인식 향상으로 호국원 유치 경쟁 치열
국립묘지에는 어떤 분들을 안장하고, 호국원에는 또 어떤 분들을 모실까? 자격은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현충원은 대통령 등 국가 고위직이나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른 인물, 순국선열·애국지사 등이 주요 안장 대상이다.
무공수훈자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전상·공상·전몰·순직 군경도 이곳으로 모신다. 군은 장관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복무 군인도 안장 대상이다. 장관급 장교는 장성을 말한다.
호국원 안장 대상 역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해진다. 전상·공상·전몰·순직 군경과 6·25전쟁·베트남전쟁 참전유공자 등이다. 군인은 10년 이상 20년 미만 장기복무 제대군인이다. 민주묘지나 신암선열공원은 명칭 그대로 4·19, 5·18 등 그 사건에 관련된 분들만 대상이다.
국가보훈부는 현재 국가유공자의 고령화에 대비해 국립묘지 안장 능력을 확충하고, 이용자의 접근성 편의를 위해 권역별로 국립묘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12곳 외에 2곳을 선정·추진하고 있다.
강원도 횡성에는 2028년 11월 호국원 개원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7번째 호국원이 되는 사업에는 총 433억 원을 투입해 2만기 규모로 조성할 예정이다. 단순히 고인을 기리고 추모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역사를 기억하며 체험하는 공간, 자연과 더불어 휴식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친환경적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호국원 유치 경쟁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호국원을 신설하려면 ‘님비(NIMBY·공공의 이익은 되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에는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반대하는 행동)’ 현상 때문에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 인식 제고로 180도 달라졌다. 이번 강원도 호국원 조성사업에서도 도내 7개소에서 신청, 치열한 경쟁을 벌였을 정도다. 이는 보훈의식에 힘입은 우리의 선진화 방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경기도 연천군에는 서울과 대전에 이어 3번째 국립현충원이 세워진다. 보훈부는 지난 2020년 11월 경기도 연천군과 함께 사업 추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현재 실시설계가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올해 11월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국립묘지는 365일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다. 현충탑 참배 등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순국선열의 충의와 위훈을 기릴 수 있다. 6월 ‘호국보훈의 달’만에라도 찾아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 어떨까?
가슴 적시는 순국 선열의 사연 가득
국립묘지에는 수많은 분이 안장돼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부터 군인·경찰·공무원, 의사상자까지.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희생한 국가유공자들이다. 그리고 한 분 한 분마다 슬픔과 기쁨을, 자부심을,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사연을 찾아봤다.
이름없는 ‘김의 묘’…전우 이름 찾아주고 곁에 묻힌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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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에는 성만 새겨져 있는 묘비가 있다. 6·25전쟁 중 경북 안강지구 도음산전투에서 전사한 김 소위라고만 알려진 어느 소대장이 주인공이다.
황규만 소위(당시 계급)는 전사한 김 소위의 유해를 소나무 밑에 가매장했다. 14년이 지난 1964년 어렵게 유해를 찾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정식 이장했으나, 이름을 알 길이 없어 묘비의 이름을 ‘육군 소위 김의 묘’라고 새겼다.
장군으로 진급·예편한 후에도 황 준장은 계속해서 김 소위의 신원 확인에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0년 그의 이름과 강원도 춘천시에 거주하는 가족을 찾아냈다. 묘비의 주인은 김수영(갑종1기)이었다.
그러나 현충원은역사적 산물로 남기기 위해 이름 없는 묘비는 그대로 두고 묘지석에만 이름을 새겼다. 죽어서도 전우와 함께하고픈 황 준장도 지난 2020년 6월 세상을 떠난 뒤 김수영 소위의 묘를 나눠 쓰는 방식으로 영면에 들어갔다.
‘호국부자의 묘’ 조국 영공 수호 박명렬 소령·박인철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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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명렬 소령은 공군17전투비행단 소속 F-4E 전투기 조종사였다. 1984년 3월 14일 한미연합 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에서 저고도 사격임무 수행 중 추락 사고로 서른두 살에 순직했다.
당시 아들은 겨우 다섯 살. 아들은 어느덧 청년으로 자라 아버지의 뜻을 이어갔다.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2004년 임관한 아들 박인철 대위는 공군20전투비행단 소속으로 조국의 창공을 지켰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했다. 아들 박 대위도 2007년 7월 20일 서해안 상공에서 야간 요격 훈련 중 스물일곱의 나이로 순직했다.
박 소령과 박 대위 부자는 서울현충원에 나란히 안장됐다. 기존 박 소령 묘에 가족 청원에 따라 2007년 7월 23일 박 대위를 안장해 부자가 함께 영면하게 된 것. 현충원은 이들 부자의 묘를 ‘호국부자의 묘’로 명명했다.
국립현충원에 4대가 안장된 유일무이한 가문
국립대전현충원에는 4대가 안장된 사연이 있다. 이남규 선생 가문이다. 1대 이남규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빼앗긴 자주권 회복을 위해 일어난 홍주의병을 이끌었다.
2대인 이충구 선생은 1906년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의 부대에 부친과 함께 지원했다. 1907년 의병이 다시 일어나자 부친과 의병 가담을 논의하다 1907년 9월 26일 일본군에 적발돼 부친과 함께 참살됐다.
3대인 이승복 선생은 일제강점기 신간회 선전부 총무간사, 조선일보 이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다. 대한민국군 자금 모집, 재만동포 구호활동 등 독립운동 기반을 마련한 혐의 등으로 수많은 옥고를 치렀다.
4대인 이장원 중위는 6·25전쟁 당시 해병중위로 참전해 함경남도 영흥만 황토도전투에서 절대적인 병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공격을 저지하는 공을 세우고 산화했다. 이들 4대가 국가를 위해 헌신한 기간은 무려 100년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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