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떡볶이는 맛있다

입력 2023. 05. 31   16:24
업데이트 2023. 05. 3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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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환 정형외과 전문의·작가
이지환 정형외과 전문의·작가


끔찍한 상황에 놓여 죽기 직전, 삶의 끝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단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음식을 고를 것인가?

특별한 음식이 떠오르진 않는다. 인당 40만 원짜리 파인 다이닝이나, 한 그릇에 9만8000원 하는 특급호텔 망고 빙수도 감히 삶의 마지막 식단에 오르기 어렵다.

‘나른한 아침 맑은 볕 넘어 눈 비비며 깰 때, 따뜻한 목소리로 부르던 부모님의 보글보글한 된장국’이나 ‘늦은 점심부터 암스테르담을 속삭이며 함께 마시던 달콤한 와인이 떨어질 즈음, 속 버리지 말라며 사랑하게 된 이가 수줍게 꺼내 온 치킨 스프’같은, 찰나의 기억으로 보정된 음식을 제외하고, 정말 떠오르는 음식은 무엇인가?

나는 떡볶이가 먹고 싶다. 어떤 칼럼니스트는 떡볶이를 ‘억지로 찾게 하는 천박한 맛’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죽기 전에 떡볶이가 먹고 싶다. 떡볶이는 맛있다. 맛있어서 또 먹는다. 죽고 싶어도 떡볶이가 먹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 죽기 전에는 떡볶이 한 입 먹고 가고 싶다.

어릴 적부터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가족과 친척도 마찬가지다. 사촌들 옹기종기 모여 떡볶이를 끓였다. 매운 걸 못 먹는 나는 종종 외로웠다. 소외되기 싫어 울면서 떡볶이를 먹었다. 이를 가엽게 여긴 어머니는 ‘짜장 떡볶이’라는 필살 메뉴를 만들었다. 달큰하면서 적당히 눅진한 것이 제법 흥미를 끌었다. 하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역시 떡볶이는 빨갛고 매워야지. 결국 아들을 소외시키지 않고자 노력한 어머니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울면서 떡볶이를 먹어야 했고 어느덧 매운 맛에 적응했다. 기억 속 매큼한 첫 떡볶이다.

두 번째 떡볶이는 학원이다. 중학교 시절 다니던 종합학원 1층에 분식점이 있었다. 적당한 맵기 떡볶이를 팔았다. 어린 시절 부대끼며 매운 맛에 적응된 나도 즐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옆에 개점한 라면집이다. 조그만 틈새에 개업한 라면집은 장사가 잘됐다. 특히, 매운 국물을 잔뜩 우려낸 붉은빛 ‘빨개떡’은 명물이 된다. 다들 땀 삐질 흘리며 그 매운 국물을 남김없이 해치웠다.

라면집 장사가 잘되자 위기를 느낀 분식집 떡볶이는 날이 갈수록 빨개졌다. 사정 모르던 나는 호기롭게 분식집 떡볶이를 먹다가 온종일 설사했다. 기억 속 새빨간 떡볶이다.

세 번째 떡볶이는 종로 3가 영어 학원 앞 포장마차다. 대학생이면 응당 토익을 봐야 한다며 목표도 없이 다니던 학원 앞, 떡볶이 튀김 순대를 파는 집, 된통 당한 어린 시절 이후 떡볶이에 손이 가지 않았다.

바삭한 김말이만 먹던 내게 ‘너도 한 입 먹어봐’ 하던 꼬치에 이끌려 한 입 먹었는데 맛있었다. 20살은 넘어야 매운 맛도 즐기나 보다. 기억 속 달큰한 떡볶이다.

죽기 전 떡볶이가 먹고 싶다. 왜 굳이 떡볶이를 택하냐 묻는다면, 해변가 아스라질 순간 추억보단 꾸덕하게 삶이 묻어나 세탁도 되지 않을 탁한 붉은 빛이라 대답하겠다. 인생은 멋진 무언가를 보물 찾기 하는 것이라 누군가 말해도, 죽기 전 찾게 되는 것은 짠 내음 묻어난 내 자취인가보다. 먹고 싶은 음식보단 삶이 먼지처럼 쌓인 음식이 좋다.

내 삶도 그렇다. 목표를 향해 살아간 삶이 지루하지 않고 멋져 보여도, 다시 찾을 삶인가 의문이 있다. 그러니 지금 충실하고자 한다. 마지막에 찾은 삶이 남들 눈에 멋지기보단, 내가 다시 찾고 싶은 일기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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