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창업 가이드 - 스타트업의 피아식별
산업 간 경계 사라지고 혁신적 변화…경쟁자 개념도 바뀌어
애플·아마존 등 국내외 선도기업 전방위 사업 확장 가속화
과거 문어발 확장과 차이…최고의 고객 경험 제공 수단으로
피아식별이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행위나 수단을 지칭한다. 흔히 쓰이는 것으로는 훈련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피아식별띠가 있으며, 암구호도 피아식별을 위한 암호이다.
그렇다면 피아식별이 왜 중요할까? 피아식별을 제대로 못 하면, 다시 말해 적과 아군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본인이 아군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이 아군에게 피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총성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적과 아군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렵다고 가정해 보자. 생각만 해도 공포스러운 일이다. 요즘 영화 ‘007’이나 ‘미션임파서블’과 같은 대표적인 스파이 영화를 봐도 과거 냉전시대에는 적이 누구인지 명확했으나 지금은 적이 누구인지 모르고,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종종 등장한다. 그만큼 적의 개념이 모호해진 시대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기업 경쟁 환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업종 간 경계가 비교적 명확했고 경쟁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유통회사들은 유통업만 했고 제조회사들은 제조업을 전문으로 했으며 IT회사들은 정보기술 분야의 사업에만 집중했다. 당연히 경쟁자는 다른 유통회사, 제조회사, IT회사들이었다. 경쟁자가 누구인지 명확했기 때문에 언제나 경쟁자들이 어떤 전략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는지 관찰하고 벤치마킹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해 왔다.
전통적으로 기업 경영에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진출은 금기(禁忌)시 돼왔다. 맥킨지나 베인앤드컴퍼니 등 많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도 핵심 역량이 있는 사업 분야가 아니면 진출하지 말라고 해왔다. 경영의 구루이자 제너럴일렉트릭(GE)의 CEO였던 잭 웰치도 1등이 아닌 사업 분야에서는 모두 철수하라고 조언했다. 사업 기반과 경험이 전혀 없는 분야는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시행착오와 실패 가능성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전 산업 영역에 걸친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이런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산업 영역 간의 융합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경쟁자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기술 혁신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는 자와 파는 자, 소기업과 대기업, 온라인과 오프라인, 제품과 서비스 간의 경계가 점점 더 흐릿해지고 그 흐릿한 경계에서 혁신의 새로운 흐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전문용어로 ‘빅 블러(Big Blur)’라고 부르고 있다.
빅 블러 현상은 첨단 기술이 만들어낸 융합의 결과물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뒤섞이는 현상을 말한다. 기존 산업과 정보통신기술 간의 융합으로 이종 산업 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블러(Blur)는 사전적으로 흐릿해진다는 의미인데 미래학자 스탠 데이비스가 1999년에 그의 저서 『블러, 연결 경제에서의 변화 속도』에서 혁신적인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의미로 사용했다. 또한 그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아래 모든 산업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되고, 여러 산업이 한데 섞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책에 등장한 ‘블러’라는 개념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설명하기 위한 경제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빅(Big)을 붙여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핀테크, 드론 등의 혁신적인 기술로 업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빅 블러라는 용어는 2013년에 더이노베이션랩의 조용호 대표가 『당신이 알던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라는 책에서 제시했다.
조용호 대표는 플랫폼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의 전문가로 빅 블러를 4차 산업혁명 시대, 비즈니스 모델의 대충돌을 일으키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빅 블러는 소비자 역할, 기업 관심사, 서비스 역할, 비즈니스 모델, 산업 장벽, 경쟁 범위의 6가지 측면에서 동시다발적인 힘이 작용하는 하나의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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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블러 현상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등장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현재 모든 산업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빅 블러에 대해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한번 생각해 보자. 기존에 전화만 가능하던 휴대전화에 카메라와 음악 재생 기능을 넣게 되면서 디지털카메라나 MP3 플레이어와의 경계가 무너졌고 이후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면서 PC와의 경계 또한 무너졌다.
극장의 경쟁자는 다른 극장이 아니라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다. 은행의 경쟁자는 다른 은행이 아니라 토스 같은 핀테크 업체들이다. 또한 이마트와 같은 대형 마트의 경쟁자가 가까운 지역에 있는 홈플러스와 같은 다른 대형마트가 아니라 쿠팡이나 11번가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로 바뀌어 가고 있다. 빅 블러 현상을 주도하는 기업들의 사업 확장 전략은 과거 재벌들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이제 빅 블러는 돈을 좀 더 벌기 위한 선택적인 전략이 아니라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 되고 있다.
빅 블러 현상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에는 애플과 아마존이 있다. 애플은 퍼스널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현재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이다. 지난 5일 기준으로 애플의 시가총액은 약 2.75조 달러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3700조 원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시가 총액이 약 388조 원인데 대략 10배 규모인 셈이다. 이런 애플이 최근에는 반도체 분야에도 진출하면서 인텔, 삼성, 엔비디아와 같이 경쟁하게 됐고, PC용 CPU(중앙처리장치)에도 자체 개발한 반도체(M1칩)를 쓰기 시작했다. 또한 애플카 사업을 시작으로 모빌리티 시장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1994년 제프 베저스가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한 아마존은 현재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이커머스 플랫폼이 됐다. 아마존은 보유하고 있는 첨단 기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에 뛰어들었는데 그중의 대표적인 사업이 2006년에 시작해 현재 전 세계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마존 웹서비스(AWS)다. 2017년에는 미국 최대 유기농 식품 체인 홀푸드마켓을 137억 달러에 인수해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아마존 고’라는 무인점포까지 운영하고 있다. 2020년에는 우리나라의 쿠팡 와우가 벤치마킹한 아마존 프라임 회원수가 2억 명을 넘어섰는데 아마존이 고속 성장한 이유에는 이와 같은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있었다.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아마존의 지향점은 언제나 최고의 고객 경험이었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아마존의 가장 중요한 철학은 ‘경쟁자만 바라본다면, 경쟁자가 무엇인가를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고객에게 집중하면 보다 선구자가 될 것이다’라는 제프 베이조스의 말에도 잘 녹아져 있다.
아마존은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핀테크 기술을 접목시켜 금융업에도 진출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아마존이 보유한 2억 명의 고객에게 지급결제, 은행계좌, 대출 보험 등의 경계를 넘어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언제든지 금융사로 변신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 7월에는 제프 베이조스가 본인이 설립한 ‘블루 오리진’을 통해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에 이어 두 번째 민간 우주여행에 성공했다. 상업용 우주관광 시대를 여는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애플과 아마존뿐만 아니라 국내외 선도 기업들의 전방위 사업 확장과 빅 블러 현상은 점점 더 가속화 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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