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교수실에서

‘전투형 강군’과 지휘관의 윤리의식

입력 2023. 05. 01   16:48
업데이트 2023. 05. 01   16:50
0 댓글
이승철 해군사관학교 윤리학교수 소령
이승철 해군사관학교 윤리학교수 소령


매 학기 첫 강의 시간에 생도들에게 물어보는 공통 질문이 있다. “군대는 무엇을 위한 집단인가?” 생도들은 일반적으로 ‘평화를 지키기 위한 집단’ 혹은 ‘무력을 관리하기 위한 집단’과 같은 세련된 대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무엇을 통해 평화를 지키는가?” “관리된 무력은 어떤 경우에 사용되는가?”와 같은 질문을 한두 번 덧붙이면 그 대답은 결국 ‘전쟁’이라는 단어로 귀결되곤 한다. 즉, 군인 혹은 군대라는 집단의 역할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사회의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군만의 고유한 기능은 ‘전쟁의 수행’인 것이다.

여기서 ‘군대윤리’라는 학문에 의문이 생긴다. 전쟁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필연적으로 누군가 죽거나 다치고, 무언가 파괴될 수밖에 없는 전쟁의 특성이 ‘무리를 다스리는 바람직한 이치’를 뜻하는 윤리의 개념과는 직관적으로 상충돼 보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 봐야 하는 전쟁에서 군대윤리는 한낱 신세 좋은 타령’이라거나 더 나아가 ‘지휘관의 윤리의식은 전투형 강군으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과연 지휘관의 윤리의식은 전쟁 상황에서 승리를 위해 잠시 접어두거나 배제돼야만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군대윤리’는 우리 군이 목표로 하는 ‘전투형 강군’을 만들고 전쟁의 승리를 위해 필수적으로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학문이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군인은 ‘헌법(제6조)’과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제34조)’에 근거해 ‘국제인도법’을 국내법과 동등하게 지킬 의무가 있는데, 전쟁 상황에서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구별하고 작전적 목표 달성에 부합하는 적절한 수준의 무력을 사용할 것 등을 규정하는 국제인도법의 핵심이 군대윤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을 수행하는 주체로서 인간은 자신이 옳다고 인식하는 도덕적 신념(혹은 양심)에 부합하는 행위를 수행할 때 그 일에 더욱 몰두할 수 있는 심리학적 특성이 있는 존재이기에 법과 규정, 윤리의식에 부합한 명령을 내리고 수행하는 것은 군의 전투력 향상에 필수적이다. 슈퍼컴퓨터가 ‘결코 질 수 없는 전쟁’이라 예측했던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한 뒤, 그 핵심적 요인으로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윤리의식 붕괴’를 꼽았다는 점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

앞서 논의한 대로 이제는 군인 또는 지휘관의 윤리의식이 부대의 전투력을 약화시키거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가로막는 요인이 아니라 해당 부대의 경쟁력이자 전투형 강군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게일러 제독(Noel Gayler·전 미해군 태평양지구 총사령관)은 “전쟁 중 ‘다른 대안이 없어 비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부대의 무책임함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는 군이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에 걸맞은 힘과 능력을 보유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군대는 지휘관과 그 구성원들의 윤리의식 수준에 기반한 힘을 보유하는 동시에 부대가 가진 능력에 비례해 구성원들의 윤리의식 또한 높아지는 셈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집단 구조의 힘이 클수록 그 집단의 특유한 도덕적 규칙의 수는 더 많아진다”고 했다. 이는 “힘을 가지려는 자, 도덕 규칙의 무게를 견뎌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질문을 던질 때다. 우리가 그리는 전투형 강군은 어떤 모습이며,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가질 만큼의 윤리의식을 갖추었는가? 전투형 강군에 대한 열망만큼 지휘관과 구성원들의 윤리의식에 대해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