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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점심

입력 2023. 04. 26   15:24
업데이트 2023. 04. 2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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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상 남양주시 무공수훈자회 다산분회장·예비역 원사
최은상 남양주시 무공수훈자회 다산분회장·예비역 원사


올해는 유난히도 봄꽃이 빨리 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 동안 마음 놓고 꽃구경을 못한 아쉬움일까. 마스크를 벗고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듯이 소곤소곤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멈춰 있던 남양주시 무공수훈자회원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얼굴을 마주하니 그동안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해 그리워했던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이야기를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자랑(?)처럼 늘어놓는다.

안보 전적지방문, 선양단 행사 계획 등 열띤 논의를 마치고 인근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고 점심식사를 하게 됐다. 못다 한 이야기로 정감을 나누던 중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4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중년 남자와 눈이 여러 차례 마주쳤다.

혹시 노인들의 수다에 기분이 상해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식사를 먼저 마친 그가 우리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어르신들을 뵈니 저희 아버님 생각이 납니다”라고 하면서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셔서 뵙지는 못한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오늘 점심 식사비용은 제가 계산해 올리면 어떠시냐”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일행은 처음 보는 중년 남성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그는 겸연쩍은 듯 다시 한번 머리를 숙여 인사하며 “오늘 여기 계신 어르신들 식사비용을 제가 계산하게 해 주세요”라고 하면서 “저희 아버님께서도 6·25 참전용사였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아버님 생각이 나서 그럽니다”라고 이야기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중년 남성의 말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떡이는 회원들을 보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간혹 방송에서 보았지만 살면서 이런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나마 삶을 돌아보게 됐다. 세상은 아직도 효(孝)의 정신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점심 대접을 받았다.

우리 일행은 처음 보는 중년 남성이 계산대에서 계산하고 나갈 때까지 식당에 있던 모든 사람과 함께 일어나 천장이 주저앉을 정도로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한마음 한뜻으로 그를 떠나보냈다.

6·25전쟁 당시 에티오피아에서 참전한 어느 용사는 “제가 지금 일어나서 걸을 수 있다면 한국 전쟁에 다시 한번 참전하고 싶다”라고 한 말이 새삼 기억났다. 창문 밖으로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바람에 꽃비가 돼 내리니 이제 봄도 우리 곁을 떠날 때가 됐나 보다.

짧은 순간 뜨거운 감정을 느낀 특별한 하루였다. 호국보훈의 달도 얼마 남지 않았다. 회원들은 저마다 군복 입은 장병들을 식당에서 만나면 고생하는 후배 전우의 밥값을 내겠다고들 한다. 특별한 점심에서 인생의 가치를 가르쳐 준 그 중년 남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무수한 별들이 떠 있는 밤이다. 군 생활을 함께하던 동기생들이 보고 싶어 사진첩을 넘기다 먼저 세상을 떠난 전우의 얼굴에 눈물을 떨군다.

오랜만에 국화꽃 한 아름 사들고 서울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전우와 못다 한 이야기 나누다 얼마 전 만난 중년 남성 아버지를 찾아가 “아들 참 잘 키우셨습니다. 편히 영면(永眠)하십시오”라고 인사한 뒤 하늘을 향해 “충성!” 거수 경례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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