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 통신 - 갈릴레이와 김석문
2세기쯤 별 움직임 계산 방법 책 등장
학자들 실제와 맞지 않는 부분 의심
코페르니쿠스 기존 천동설 뒤집어 설명
숙종 때 김석문 “세상의 중심이란 없다”
해·달·지구 연구 ‘삼대환공부설’로 불려
고대 그리스인들은 배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적 사실을 진작 알아냈다. 거리를 재고, 각도를 따지는 계산 방법도 개발했다. 나중에 신항로 개척 시대가 돼 유럽 뱃사람들이 아시아·아메리카의 먼 나라로 배를 타고 다니는 시대가 되자 망원경으로 먼 곳을 보는 기술까지 발전했다. 그러다 보니 태평양 한가운데, 주변에 바닷물 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밤하늘의 별을 정밀히 관찰해서 배의 위치를 계산하는 수학의 힘은 더욱 커졌다.
이처럼 탐험이란 그 과정에서 예상외로 얻는 수확이 큰 도전이다. 나는 고대인의 항해든, 현대의 우주 탐사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당장 우주 탐사에서 금덩어리나 보물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과학 발전이 이뤄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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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항로 개척 시대 대표 과학자로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바다를 보기 위해 개발된 망원경 기술로 바다 대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결과 갈릴레이는 목성 주변에서 아주 작은 별처럼 보이는 조그마한 물체 몇 개를 발견했다. 그 물체들을 목성의 위성이라고 한다. 갈릴레이는 총 4개의 위성이 목성 주변을 빙빙 도는 것을 확인했다.
갈릴레이보다 훨씬 앞서서,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보다도 훨씬 더 오래된 시대에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까지는 정확히 알아냈으면서도 지구가 돌고 있다든가 움직인다든가 하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유럽인들은 오랜 세월 무심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우주의 모든 별은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고대 로마와 그리스인들의 사상과도 잘 들어맞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올림포스에 제우스, 포세이돈, 아프로디테, 아테나 같은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신들이 모여 산다고 믿었다. 올림포스는 그리스 중부에 있는 높은 산 이름이다. 그곳에 우주를 다스리는 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면 바로 그 산이 있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중요한 장소로 고정돼 있다는 생각은 아주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빙빙 돌고 있다. 심지어 그 태양조차도 완전히 고정돼 있지 않다. 크게 보면 태양도 은하계 가운데의 블랙홀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돌고 있다. 그렇다 보니 사실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별들의 움직임을 계산하려면 계산이 뭔가 잘 들어맞지 않는다. 별의 움직임을 설명하기가 너무 복잡해진다.
그래도 그리스인·로마인들은 그 복잡한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서 대략 지금으로부터 1900년 전 무렵에는 아주 복잡하고 헷갈리게 계산해야 하지만, 그래도 밤하늘의 행성들이 언제·어디에 나타날지 꽤 정확하게 예측해 낼 수 있는 계산 방법을 만들어 책으로 정리했다. 이 책이 나중에 이슬람권에 전해져 『알마게스트』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 책 내용의 몇몇 부분은 몽골 제국으로, 중국과 고려에도 일부 전해졌다. 덕택에 조선시대 초, 세종대왕 시기 학자들이 하늘의 별에 대해 연구할 때 알게 모르게 『알마게스트』의 지식을 활용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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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활동할 무렵 우주의 별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잘 설명한 책인 줄 알았던 『알마게스트』를 의심하는 학자들이 유럽에서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폴란드의 과학자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빙빙 돌며 움직인다고 치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쉽게 별들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계절에 따라 별자리가 바뀌는 것은 별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이 아니라 별자리는 거의 가만히 있을 뿐인데 지구가 움직이면서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이 바뀌는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생각을 지구가 운동하며 움직인다는 학설이라고 해서 지동설이라 부른다. 특히 지동설을 이용하면 화성·토성 같은 행성들이 언제·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그 전보다 훨씬 명쾌하고 쉽게 계산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갈릴레이는 목성의 위성들이 목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망원경을 통해 똑똑히 봤다. 최소한 그 위성들이 움직이는 중심은 지구가 아닌 목성이었다. 지구가 모든 것들의 중심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그동안 믿고 있던 말은 틀렸고, 『알마게스트』도 다 맞는 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동설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 맞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갈릴레오가 재판을 받다가 작은 목소리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는 일화는 사실이라기보다는 나중에 생겨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렇지만 갈릴레이의 노력 덕택에 지동설이 더 많은 관심을 받았고, 결국 세월이 지나면서 중요한 학설로 자리 잡은 것은 틀림없다. 지동설 덕택에 케플러는 밤하늘 행성의 움직임을 더욱 정밀하게 계산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뉴턴은 미분과 적분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만유인력의 원리까지 만들어 과학의 근대를 개척하는 대업적을 이뤄냈다.
뉴턴은 높은 곳에서 사과가 떨어질 때 얼마나 빠르게 떨어지는지 계산하는 방법이나, 돌멩이를 던졌을 때 어느 정도 거리에 떨어지는지를 계산하는 방법을 밤하늘의 행성에 그대로 적용시켰다. 그렇게 해서 행성의 움직임을 어느 학자보다 명확하게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옛사람들은 흔히 밤하늘에 보이는 행성들이 천상계의 신령 같은 것이고,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비로운 혼이라고들 생각했다. 그러나 뉴턴은 그런 것이 아니라 행성이 그냥 돌덩어리와 다를 바 없다 치고 계산하면 훨씬 더 정확하게 그 움직임을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세상을 별자리의 마법이나 주술로 이해하지 말고, 보통 물체를 계산으로 따지는 과학으로 보는 것이 더 옳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들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이야기를 토대로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후기 무렵 중국을 찾아온 유럽인들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전해지면서 곧 적지 않은 조선 학자들 사이에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이 퍼졌다. 일단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조선인들은 지구가 움직인다는 지동설을 수월히 받아들인 편이었던 것 같다.
특히 갈릴레이에서 별로 멀지 않은 시기, 조선 숙종 시대에 활동한 정치인이자 학자인 김석문은 지구가 둥글다는 학설을 연구한 결과 지구가 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김석문이 활동하던 시대는 유럽에서도 지동설이 상식으로 널리 뿌리내리지 못한 때였다. 그때 김석문은 지구, 달, 태양 등은 모두 커다란 공 모양의 둥근 물체이며 우주에서 허공에 떠 있는 채로 이리저리 돌고 있다고 봤다. 조선시대 작가인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이러한 김석문의 학설을 ‘삼대환공부설(三大丸空浮說)’이라 소개했다.
나아가 김석문은 조선 사람들이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긴 하지만, 사실 세상의 중심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지구나 우주에 중심은 없고, 강대국은 시대와 조건에 따라 바뀔 뿐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점은 뉴턴의 학설 때문에 별자리가 신령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진 것과도 비슷해 보인다.
안타깝게도 숙종 시절 조선은 세계 각국과 활발히 교류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만약 숙종 임금이 나서서 조선 학자들을 세계와 활발히 교류할 수 있도록 해줬다면 어땠을까? 김석문 같은 사람이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힘을 합쳐 세계의 과학을 더 빨리 발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덕택에 조선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눈도 더 빨리 바뀔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지금 우리는 학교에서 과학을 배울 때 지동설 대신 삼대환공부설이라는 김석문의 용어를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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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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