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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in 국방일보]⑫ 1971년 군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제공된 중식은?

입력 2023. 04. 20   15:55
업데이트 2023. 08. 0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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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4월 13일 자 전우신문(국방일보 전신) 
1971년 4월 13일 자 전우신문(국방일보 전신) 


언론에서 종종 언급되는 ‘국군교도소’를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국군교도소는 말 그대로 범죄를 저지른 군인이 수용되는 군 교도소입니다. 1949년 3월 육군형무소로 창설된 이래 수감자를 교정·교화하고 이들의 건전한 사회 복귀를 돕고 있습니다.

긴 세월만큼 역사도 깊습니다. 서울 영등포에서 대구, 부산, 경기 성남으로 이전하면서 육군 제1교도소와 제2교도소로 분리 운영되다 1979년 7월 육군교도소로 통합됐습니다.

이후 1985년 현재 위치인 이천으로 옮겨 왔습니다. 국군교도소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2014년 11월부터입니다. 육군 소속에서 국방부로 이관되고 해·공군과 해병대 인력을 충원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두부를 만들고 있는 수감자 모습
두부를 만들고 있는 수감자 모습


육군 제1·2교도소로 운영되던 시절 국방일보의 전신인 전우신문에는 육군제1교도소의 모습을 상세히 엿볼 수 있는 기사가 보도됐습니다.

1971년 4월 13일과 14일 자에 ‘밝은 내일 약속하는 재기의 요람-육군제1교도소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기사가 각각 상·하로 나뉘어 게재됐습니다.

사실 지금도 군 교화기관을 기사로 보도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기사에는 육군제1교도소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나 쉽게 알 수 없는 수감자들의 생활 등이 세세히 담겨 있었습니다.

기사는 프로그램의 하나로, 재범 방지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설문 조사를 들었는데요.

설문 조사는 매년 연초부터 2월까지 두 달 동안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했습니다. 300여 문항을 통해 범죄의 요인을 분석하고, 이 결과를 각 부대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제공했습니다.

기사에는 분석 결과도 실려 있었습니다. 수감자 중에는 사회적 반항심이 크고 빈번한 탈선행위를 일으켰던 이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전과자라는 낙인, 차별대우, 부대의 소홀한 선도대책 등이 재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맹률이 높았던 시대였던 만큼 한글을 배우지 못한 수감자들을 위한 문해 교육도 있었습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중퇴자로 구성된 초급반과 국민학교 수준 이상자로 편성된 고급반을 운영해 8주간의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교육 과정이 모두 끝나면 학급 인원의 80% 이상이 책을 즐기게 됐습니다.

급식에 관한 내용도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급식은 기간병과 동일하며 영농수확에서 얻은 농산물과 두부·제빵 공장에서 만드는 두부와 빵을 중식으로 하고 있다"고 기사는 설명했습니다. 농산물 수확과 두부, 제빵을 만드는 일에는 수감자들이 모두 직접 참여했습니다.

2014년 11월 국군교도소 창설식 모습
2014년 11월 국군교도소 창설식 모습


이 기사의 첫머리에는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이 한 말이 쓰여있습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얼만큼의 잘못을 저질렀느냐보다는 그 잘못을 얼마나 속히 뉘우치는가에 있다. 또 가장 큰 잘못은 이미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그 잘못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데 있다.’

국군교도소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책임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구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송시연 기자/사진=국방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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