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전쟁과 인간

삶으로 소설을 쓰고, 소설 같은 삶을 살다

입력 2023. 04. 19   16:17
업데이트 2023. 04. 1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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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인간
삶을 걸고 자신을 연기한 작가 - 앙드레 말로의 삶과 문학 

인도차이나서 프랑스 식민 정부에 저항
중국 국공내전 목격…잔혹성 고발 집필
1933년 ‘인간의 조건’으로 세계적 명성

스페인 내전 땐 공화국 정부 지원 활동
2차 대전 참전 독일군 포로 됐다가 탈출
종전 후 문화부 장관도…파란만장 일생

앙드레 말로.
앙드레 말로.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1901~1976)의 삶을 쉽게 정의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는 20대부터 두각을 나타낸 천재적인 작가였고, 조국 프랑스의 제국주의를 비판했던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 국공내전 시기에는 중국에 머무르면서 혁명과 쿠데타의 혼돈을 직접 경험했다. 스페인 내전 때는 의용군을 모집해 참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불혹의 나이에 자원입대해 전차병으로 싸웠다. 독일군의 포로가 됐으나 이송 중 탈출해 레지스탕스 조직에 합류했다. 프랑스가 해방된 후에는 샤를 드골(1890~1970) 정부에 협력했고,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문학연구자 윌리엄 라이터의 표현처럼 앙드레 말로는 단순한 “작가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었다.

1901년 파리에서 출생한 앙드레 말로는 네 살 때 부모가 결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잡화점을 운영하는 이탈리아계 어머니와 이모, 외할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가난과 부성의 결핍은 역설적으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열세 살 때 발발한 1차 대전은 앙드레 말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는 전쟁으로 국토의 7분의 1이 폐허가 됐고, 140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1차 대전은 역사의 진보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뿌리째 흔들었다. 앙드레 말로는 고교 졸업 후 대학 입시 시험(바칼로레아)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공부하며 문학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피카소와 샤갈 등 당대 예술을 선도하는 예술가들과 교류했고, 전위적인 글들을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21세에 클라라 골드슈미트라는 유대계 독일 여성과 결혼한 뒤에는 그녀와 함께 동양 예술에 심취했다.

1923년에 앙드레 말로는 아내, 친구 루이 슈바송과 함께 프랑스 고고학 탐사반을 따라 인도차이나로 향했다. 캄보디아의 시엠레아프를 탐사한 말로는 인근 반테아이스레이 사원의 여신상을 떼어 반출하다 프랑스 식민당국에 적발됐다. 그는 사당 입구에 조각된 여신 데바타 부조가 잘 떼어지지 않자 불까지 질렀다. 프놈펜으로 압송된 말로는 도굴 혐의로 수감됐다.

그러나 아내 클라라 골드슈미트와 말로의 재주를 아끼던 작가들의 구명 활동으로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났다. 이 사건은 말로의 생애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말로는 프놈펜의 감옥에서 목격한 프랑스 식민정부의 처우에 분노해 철저한 반식민주의자로 돌아섰다. 말로는 프랑스의 지배에 저항하는 ‘베트민(베트남 독립동맹)’의 전신인 ‘안남청년동맹’을 결성하고, 1925년에는 저항 신문까지 창간했다.

한 저널리스트는 도굴 행위와 식민지 해방운동 참여라는 말로의 이중적인 행위를 두고 ‘변신술과 거짓말의 대가’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확실한 것은 이 시기의 경험이 말로를 작가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말로는 고고학 답사 경험을 토대로 『왕도로 가는 길』(1930)을 출간했고, 프랑스 식민정부의 추적을 피해 중국에 머무르면서 목격한 ‘상하이 쿠데타’를 배경으로 『정복자』(1928)와 『인간의 조건』(1932)을 발표했다.

앙드레 말로의 대표작 『인간의 조건』 표지.
앙드레 말로의 대표작 『인간의 조건』 표지.



1933년 말로는 『인간의 조건』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장제스 암살 모의에 가담한 테러리스트들이 주인공인 이 소설에서 말로는 존엄을 스스로 지키지 않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역설했다. 상하이 쿠데타에서 목격한 국민당의 잔혹성이 담긴 이 소설은 소비에트에서 큰 환영을 받았고, 말로는 기꺼이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나치즘에 대항하는 활동을 펼쳤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말로는 국제 비행대 ‘에스파냐’를 조직해 공화국 정부를 도왔다. 소련은 공화국 정부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고, 말로의 비행대는 독일 공군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군에 의해 전멸했다. 7개월에 걸친 스페인 내전 참전 이후에 말로는 공산주의에 등을 돌리게 됐다. 부상으로 퇴역한 말로는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다룬 소설 『희망』(1937)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말로 자신의 페르소나인 마누엘을 비롯해 이념과 목표가 서로 다른 수십 명의 인물들이 파시즘에 저항하면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연대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자원입대한 말로는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해 점령되지 않은 남프랑스 지역으로 도주했고, 그곳에서 집필활동을 계속하다가 1944년에 항독 운동에 합류했다. 말로는 알자스·로렌 연대를 조직해 스트라스부르 지구 해방 전투에 참여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지금도 스트라스부르에는 말로의 공적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딴 도로와 구역이 존재한다.

종전 후 말로는 드골 정부에서 10년간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말로는 파리의 예술 작품을 지방에 전파하기 위한 ‘문화의 집’을 설립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프랑스 문화 보호와 전파에 앞장섰다. 그러나 알제리 전쟁으로 드골 정권이 위기에 몰리자 말로의 과거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진보적인 프랑스 지식인들은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를 비판했던 말로가 알제리를 탄압하는 드골 정부에서 관료로 일하는 것을 비판하고 나섰다. 드골의 실각과 함께 말로의 명예도 바닥에 떨어졌다.

앙드레 말로의 친필이 새겨진 우표.
앙드레 말로의 친필이 새겨진 우표.



1967년 말로는 자전적 이야기와 픽션(실제로는 없는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창조해 냄)을 결합한 ‘팩션’ 작품 『반회고록』을 발표해 자신의 회한을 드러냈다. 말로의 생애 내내 그의 ‘경험’은 곧바로 ‘소설’이 됐고, ‘소설’은 다시 ‘삶’이 됐다.

그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소설로 적었고, 그 소설을 닮으려고 노력했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자기가 혐오했던 자를 닮아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끝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덧없이 죽는다. 모든 인생은 미완성의 기록이다. 말로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이 쓴 글처럼 살아가고자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소설의 제목처럼, 말로에게는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지 않았을까.

“막연하지만 끝없는 희망으로 가득한 이 밤, 인간 각자에게 지상에서 수행할 임무가 부여된 이 밤만이 있을 뿐이다.”

소설 『희망』의 주인공 마누엘의 이 대사는, 마치 말로의 삶을 대변한 것만 같다. 1996년 프랑스 정부는 앙드레 말로 20주기를 기념해 그의 유해를 판테온 국립묘지로 이장했다. 여전히 논쟁의 대상인 앙드레 말로의 삶에는 모순과 영광, 상처와 긍지가 교차하는 프랑스의 20세기가 담겨 있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이정현은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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