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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의 즐거움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은 군마트로 통용되는 ‘PX(Post Exchange)’입니다. 지친 군 생활에 활력을 주는 PX는 사막의 오아시스요, 가뭄 속 단비였습니다.
PX는 1949년 5월 1일 장병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후생감실이 창설되면서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창군 이듬해이니 벌써 70년도 훌쩍 넘는 역사를 우리 군과 함께한 셈입니다.
처음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투부대에 설치된 PX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장병들의 부실한 밥상을 대신할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부대의 폐막사나 창고 등에서 운영됐죠.
이후 1970년 PX를 지원하는 원호관리단이 창설됐고, 1977년 각 부대의 PX를 통합운영하면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됐습니다.
국방일보의 전신인 전우신문 1967년 4월 14일 자 1면에는 그 시절 PX 운영 모습과 장병들을 위한 복지사업을 엿볼 수 있는 기사가 게재돼 있습니다.
당시 각 부대에서는 PX와 당구장, 탁구장, 다방, 음악감상, 오락실, 목욕탕, 이발관 등을 갖춘 복지센터를 운영했습니다.
그중에서도 PX는 ‘작은 백화점을 연상케 할 정도로 흐뭇하다’라고 기사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병들을 위한 갖가지 물품이 최전방은 물론 산간벽지 부대의 PX까지 배달됐습니다. 영외 PX는 군가족들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영외 PX에서는 약주를 비롯해 23종의 물품을 시중가보다 20~30%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는데, 싸다고 해서 품질이 떨어지거나 양이 적은 것은 결코 아니라고 기사는 설명했습니다.
기사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콜라였던 ‘스페시콜라(콜라)’도 등장합니다. 요즘처럼 음료수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 시중에서 30원이었던 콜라를 절반 가격에 판매했다고 하니, 인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가히 짐작이 됩니다.
PX에서 얻은 수익금은 월평균 3000원 정도였는데, PX 운영과 복지센터 시설개선을 위해 사용됐다고 합니다.
이러한 PX는 군마트로 진화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군마트에는 대형마트 뺨칠 정도로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고 감성 가득 담긴 인테리어로 카페를 방불케 하는 곳도 있습니다.
‘황금마차’라 불리며 격오지 부대로 찾아가는 이동마트도 카드결제를 위해 포스기를 설치하고 냉동고 용량을 키우는 등 차량의 크기와 시스템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군마트(PX)는 장병들에게 물건을 구매하는 곳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힘든 군 생활에는 큰 위안과 기쁨이 되고, 전역 후에는 전우들과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마 고된 훈련을 끝내고 영내마트에서 먹던 냉동만두 특유의 쫀득함과 짭짜름한 뽀글이의 국물 맛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글=송시연 기자/사진=국방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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