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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말했던 커피 속 악마, 그 정체는 '카페인'

입력 2023. 04. 11   17:09
업데이트 2023. 04. 1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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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커피사 - 디카페인 커피

커피 생두와 디카페인 커피 생두(오른쪽). 필자 제공
커피 생두와 디카페인 커피 생두(오른쪽). 필자 제공


디카페인 커피(Decaffeinated Coffee)에 관한 이야기는 1819년 10월 3일 독일 남부의 도시 예나(Jena)에서 시작된다. 어느덧 칠순에 접어든 괴테는 스물다섯 살 젊은 화학자의 실험을 보고 놀랐다. 독을 다룰 줄 알기로 유명했던 함부르크 출신의 프리들리프 룽게가 고양이의 동공에 벨라돈나(Belladonna)라는 식물의 추출물을 떨어뜨렸더니 동공이 확장된 상태로 한동안 유지됐다. 이 물질을 정제해 응용하면 밤길이 어두운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벨라돈나는 가지과에 속하는 다년생 풀로 고대 로마시대부터 마취에 쓰인 독초이다. 그 명칭은 이탈리아말로 ‘아름다운 여자’를 뜻하는데,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팜파탈(femme fatale)’을 은유하기도 한다. 클레오파트라가 벨라돈나의 즙을 눈에 떨어뜨려 동공을 마비시켜 확장하는 기법으로 눈을 커 보이게 만드느라 나중에 시력이 나빠졌다는 구전이 있다. 또 이 식물의 열매를 블루베리로 착각하고 먹었다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크리스 맥캔들리스의 이야기는 1992년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순간 괴테는 몇 해 전부터 자신의 숙면을 빼앗아갔지만 떨칠 수 없던 커피를 떠올렸다. 수많은 젊은이를 습관적으로 카페로 끌어들이는 시커먼 액체에는 반드시 ‘인간을 유혹하는 독이 섞여 있을 것이다’라고 직관하고, 룽게에게 그 물질의 정체를 밝힐 것을 요구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 안겨준 과제를 영광으로 받든 룽게는 만사를 제쳐 두고 연구에 매달려 커피에서 흰색 결정체를 추출했다. 커피에 들어 있는 알칼로이드(alkaloid)라는 의미로 카페인(Caffeine)이라 명명했다. 농축되면 순식간에 생명을 앗아가는 독성을 지녔고, 특히 인간의 정신에 침입하는 물질이다. 괴테의 직관대로 ‘검은 커피 속에 악마’가 들어있던 것이다.

카페인은 메틸크산틴 계열에 속하는 알칼로이드로서, 한 분자에 질소 원자를 4개나 가지고 있는 흰색 결정체이다. 카페인이 검은색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커피의 색상 때문이다.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검은빛을 내는 멜라노이딘이 생성된다. 간장이 커피와 비슷한 색상을 띠는 것 역시 숙성되는 과정에서 이 색소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카페인이 인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선 괴테의 시대에는 알 수 없었다. 인간의 영혼에 작용해 위험해 보이면서도 집중력을 높여주고 활력도 넘치게 하는 장점도 지녔음은 분명해 보였다. 카페인이 발견된 뒤 63년이 지난 1884년에야 카페인의 화학구조는 독일의 헤르만 에밀 피셔에 의해 규명됐다. 카페인이 신경전달물질인 아데노신과 모양이 비슷한 덕분에 뇌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 이때였다. 

이 지점부터 디카페인 생두가 움트기 시작한다. 카페인이라고 하는 명확한 대상과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구조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커피에서 카페인을 제거할 필요성이었는데, 독일 브레멘 태생의 루드비히 로셀리우스에게는 간절한 과제였다. 커피 판매를 업으로 삼던 아버지가 커피를 많이 마셔 숨졌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카페인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대상으로서 일종의 복수심을 들끓게 했다. 상인이었던 그는 대학원에 등록해 카페인 제거 방법을 찾는 데 몰두한 끝에, 1906년 커피 생두를 쪄 유기용매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디카페인 커피를 만들어 특허를 취득했다. 이후 100년간 ‘스위스 워터 프로세스’ ‘초임계 이산화탄소 활용 공정’ ‘마운틴 워터 프로세스’ ‘슈거케인 유기농 방식’ 등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아 건강에 유익한 방식으로 기술의 발전을 거듭했다.

디카페인 커피 생두의 출현은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들을 커피의 공포에서 해방시켰다. 동시에 커피를 마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한 안내자의 역할을 했다. 커피와 섞는 방식으로 카페인의 섭취량을 조절할 수 있고, 디카페인 커피를 섭취하면서 차차 카페인에 적응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에는 카페인 외에도 클로로젠산이나 트리고넬린 등 항산화물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디카페인커피도 건강 관리에 유용하게 쓰인다. 아울러 카페인을 제거한다고 해도 커피의 향미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커피 특유의 쓴맛은 카페인보다는 폴리페놀과 알칼로이드 성분이 더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맛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 덕분에 디카페인 커피도 단지 기능뿐 아니라 관능적으로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점점 품질이 좋은 생두를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디카페인 커피도 산지와 품종, 건조법에 따라 맛이 다양하다. 디카페인 커피의 향미적 특징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단연 몰트(malt)이다.

보리에 습기를 가해 발아시킨 뒤 말린 이것은 우리말로는 ‘엿기름’이다. 여기서 기름은 ‘기르다’는 순우리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름기와는 무관하고, 관능적으로는 구운 탄수화물의 느낌을 준다. 진한 누룽지 맛이 떠오르기도 한다. 스카치위스키의 몰트향, 샴페인에서 감지되는 잔류 효모향, 비스킷의 토스트 뉘앙스가 디카페인 커피의 관능미와 통한다.

디카페인 커피를 선택할 때는 카페인의 함량도 확인해야 한다. 일반 커피에서 카페인을 어느 정도 제거해야 디카페인 커피로 판매될 수 있는지는 국가마다 다르다. 우리나라는 2021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고시에 따라 카페인 함량을 90% 이상 제거하면 ‘디카페인(탈카페인)’으로 표기해 판매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97%를 제거해야 상품으로 유통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상품들도 대체로 이 기준을 맞추고 있다. 유럽연합은 99%를 제거해야 디카페인이라고 명명할 수 있도록 까다롭게 관리하고 있다. ‘카페인 제로(0)’라는 표기는 카페인이 전혀 없다는 게 아니다. 보통 커피 100㎖에 카페인이 1㎎ 이하 들어 있는 경우에 ‘제로’라고 표시할 수 있다.

커피를 건강하게 즐기려면, 입에 담기 전에 반드시 산지와 가공법, 함량 등 여러 정보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불편을 감수할수록 좋은 커피를 만날 기회가 높아진다.


필자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은 충북대 미생물학과, 고려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 영어영문과 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커피인문학』 등을 저술했다.
필자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은 충북대 미생물학과, 고려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 영어영문과 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커피인문학』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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