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Ⅱ) - 네팔 ②
매년 1만여 명 영국·인도군 등 지원
경쟁 치열해 용병학원 수십 개 성업
군, 고교 10곳 운영…입시 경쟁률 치열
한국 거주 경험 현지인 한국 식당 많아
|
|
|
|
네팔 국립박물관을 나와 카트만두의 서쪽 동산에 있는 ‘스와얌부나트’ 사원을 찾아 나섰다. 맑은 날씨인데 갑자기 하늘에서 주르륵 빗방울이 얼굴로 떨어진다. ‘쾌청한 날에 무슨 비가…’ 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니, 전깃줄의 원숭이가 배설물을 쏟고 있다. 전봇대에 조랑조랑 매달려 있는 동료들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본다. 원숭이 떼를 피하며 뒷걸음질 치다가 엉겁결에 낮잠을 즐기던 큰 개의 꼬리를 밟았다.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내는 떠돌이 개에게 재빨리 사과하고 골목을 벗어났다. 네팔인들은 사람·동물·신이 함께 살아간다고 믿는다. 카트만두 시내 골목은 원숭이·들개의 천국이다. 여행객들은 어슬렁거리며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들개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
국립박물관과 히말라야산맥의 민족 역사
네팔 국립박물관은 군사박물관과 마주 보고 있다. 무장군인이 지키는 정문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네팔 종족의 역사를 볼 수 있는 3개의 전시관이 있다. 문헌에 의하면 네팔 역사는 기원전(BC) 200년경부터 시작된다.
이 박물관은 1928년 최초 무기전시관으로 건립됐는데, 왕실과 초청 인사들만 관람할 수 있었다. 1938년부터 비로소 일반 국민에게 공개됐다. 총 2300㎡ 크기의 박물관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위한 역사탐험실과 휴식공간까지 있다. 과거 네팔의 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밀반출됐지만, 인터폴(Interpol)과 경찰의 도움으로 되찾는 중이란다.
전통문화관 입구에 의외로 한국 결혼식장의 신랑·신부 디오라마(Diorama·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해 하나의 장면을 만든 것)가 있다. 사모관대를 갖춘 신랑과 고운 한복 차림의 신부가 전시 공간을 환하게 만들었다. 양국 간의 빈번한 인적 교류를 의식한 네팔 정부의 배려인 것 같았다.
힌두교·불교 유적이 혼재된 원숭이 사원
‘원숭이 사원’으로 불리는 스와얌부나트 종교 유적지는 힌두교·불교 상징물이 뒤섞여 있다. 엄청난 인파가 그 주변에서 시내 정경을 내려다본다. 도심 공원이 없는 카트만두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 사원이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비자이(Bijay)는 내년에 졸업한단다. 할아버지·아버지는 인도군에서 30여 년 복무했다. 하지만 자신은 군인보다는 공학도의 길을 선택했으며, 해외 취업을 꿈꾸고 있었다. 네팔에서는 취업이 너무 어려워 대부분 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고향 카푸라(Kapura)는 120㎞ 떨어져 있지만, 버스로 10시간 걸린단다. 비자이는 시내 중심부의 넓은 병영과 대규모의 군 의료센터를 가리키며 네팔군은 일반 직장인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전해줬다.
정상에서 내려오던 중 공원 광장 지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발차기 연습을 하는 여자 합기도 대표선수들을 만났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힘든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는 여학생들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네팔 육군이 운영하는 10개의 고등학교
영국군의 구르카 용병은 네팔 청소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매년 1만여 명의 젊은이들이 영국·싱가포르·인도군 입대를 지원한다. 카트만두·카푸라에는 수십 개의 용병학원이 성업 중이다. 민박집 사장이 네팔인 친구를 통해 확인한 학원 한 곳을 알려줬다. 지도에 표기된 목적지가 골목길을 한참 따라가니 나타났다. 그곳은 용병학원이 아니라 네팔군이 관리하는 여자 고등학교였다.
정문 근무자가 학교 출입은 가능하나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체육복 차림의 병사들이 운동장 평탄작업을 하고 있었고, 교내에는 강의동과 군인 아파트까지 있었다. 체육 수업 중인 교사가 학교에 파견 나온 여군 대위를 만나게 해줬다. 그 연락장교는 네팔군이 운영하는 10개의 고등학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줬다.
훌륭한 교육시설, 우수한 교사진, 저렴한 수업료로 입시 경쟁률이 치열하단다. 군인 가족 자녀에게 입학 우선권이 주어지지만, 일반 학생도 지원할 수 있다.
갑자기 건물 뒤편에서 “태권!” 구호를 외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학교 부설 유치원생들의 태권도 수업이다. 네팔인 사범의 구령에 따라 고사리 같은 주먹을 움켜쥐고, 팔다리를 내뻗는 태극 품세가 아이들에게는 그저 즐겁기만 한 것 같았다.
트리부반 국립대학과 학교 대항 축구경기
여학교를 나와 네팔의 최고 명문 국립 트리부반(Tribhuvan) 대학을 가려고 택시를 세웠다. 무질서한 정류소에서 시내버스로 대학을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카트만두 택시는 대부분 소형이다. 2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지만, 운전사는 합승 승객을 태우고자 했다. 트리부반 대학까지의 요금을 물으니 기사가 거꾸로 필자에게 “택시요금이 얼마냐?”라고 되묻는다. 순간 뒷좌석의 베트남 학생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운전기사가 손님에게 요금을 묻는 경우를 처음 본단다. 400루피(한화 3900원)로 택시비를 타협하고 중간에 뒷자리 승객을 내려줬다. 대신 조수석의 필자는 기사 도우미가 돼 창밖으로 고개를 쭉 뽑아 “트리부반!”을 외쳐야만 했다. 끝내 다른 승객은 찾지 못했지만, 재래시장 골목골목을 누비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시내 외곽의 트리부반 대학 캠퍼스는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학교 본부는 교내 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교내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누구나 네팔도 한국처럼 잘사는 나라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교문 근처의 넓은 운동장에서는 카트만두 중학교 대항 축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린 선수들이 자주 공을 놓치지만, 여중생들의 응원 열기는 뜨거웠다. 경기 관람을 위해 운동장 바닥에 주저앉으니, 한 학생이 잽싸게 의자를 가져와 건네준다.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네팔 학생의 착한 마음이 돋보였다.
한국 근무 경력 노동자의 창업 열풍
카트만두에는 한국에서 거주했던 네팔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많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왕궁 근처 한국 식당의 주인 인드라센(Indrasen)은 충남 서산에서 5년 동안 일을 했다. 귀국 후에는 고향에 넓은 농토를 사들였고, 남은 돈으로 식당을 차렸다. 내부는 한국을 상징하는 소품이 가득했다.
식당 손님 대부분은 한국 생활을 경험한 네팔인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국에 가고 싶다는 그는 한국어도 유창하다. 서산에서 주변 한국인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고, 특히 일터 사장의 ‘저축 강요’ 덕분으로 사업자금도 두둑이 마련했단다.
카트만두 시내에는 매년 10여 개의 한국 식당이 새로 생겨날 정도로 한식을 즐겨 먹는 현지인이 늘어나고 있다. ‘네팔 용병’에 관심을 표하자 그의 친구 아누프(Anup)가 용병 학원에서 수학 강사로 있단다. 운이 좋게도 다시 아누프를 만나 흥미로운 네팔의 용병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얻었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신종태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2010년 국내 최초로 군사학 박사학위를 충남대에서 취득했다. 세계 60여 개국을 직접 답사해 『세계의 전적지를 찾아서』를 냈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