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조명탄_오설자 작가] 물

입력 2023. 03. 23   15:40
업데이트 2023. 03. 2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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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설자 작가
오설자 작가

 

“매일 1400명의 아이가 더러운 물을 먹고 죽어 갑니다. 이 아이들에게 이 물이라도 먹일 수밖에 없습니다.” 

TV 광고 영상에서 한 배우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립니다. 카메라는 흙탕물에 가까운 더러운 물을 비추고 그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환경과 수인성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여 줍니다.

케냐 북서부 투르카나주는 연평균 기온이 40도가 넘는 메마른 땅이라고 합니다. 그곳 오지 소펠마을에 경사가 났습니다. 깨끗한 수돗물을 먹게 된 것입니다. 더러운 물을 먹고 온갖 수인성 질병에 시달리며 물 부족에 힘겨워하던 10만 명의 주민은 이제 마실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수도꼭지에서 콸콸 나오는 물을 보고 그들은 신의 선물이라고 기뻐합니다.

이제 아이들은 20㎞를 걸어가 물을 길어 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느라 학교도 빼먹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은 이제 물동이 대신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갈 수 있습니다. 그곳의 급수시설을 위해 우리나라가 72억 원을 지원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물 부족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나라에 생명수를 공급한다니 참 잘한 일입니다.

언젠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시내를 지나는데 스프링클러가 빙글빙글 돌면서 온 도시를 적시고 있었습니다. 사막이었던 그곳에 수도관을 설치하고 풀과 나무가 자라게 해 녹색도시를 만든 것입니다. 그 일을 우리나라 수자원공사가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럽던지요.

어린 시절 내 고향 제주에도 물이 부족했습니다. 용천수가 솟아 나오는 해안가 마을과 달리 바닷가에서 떨어진 우리 동네에는 물이 귀했습니다. 항아리마다 빗물을 받아 뒀다가 써야 했습니다. 여름이면 그 안에 장구벌레가 헤엄쳐 다니는 모기 온상이기도 했지요. 세수한 물에 걸레를 빨고 마당에 뿌렸습니다. 한 번 쓴 물은 두 번, 세 번 다른 용도로 썼습니다. 한 방울 물이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 집 뒤뜰 당유자나무 아래 비가 오면 물을 모아 두는 작은 웅덩이가 있었어요. 동네 사람들이 와서 떠 가기도 했습니다. 그곳의 물이 마르면 물허벅을 지고 마을 끝을 돌아 빗물을 모아 둔 큰 연못에 가서 길어 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큰 허벅을 지고 나는 작은 허벅을 지고 물을 길어 와 부엌 커다란 항아리에 담아 뒀다가 먹을 물로 썼습니다. 친구들과 들로 산으로 쏘다니다 목이 마르면 호겡이(돌에 파인 홈)에 고인 물을 두 손으로 떠서 먹곤 했지요. 금방 고인 빗물도 있었지만 오래돼 파란 이끼가 생겨도 솔잎을 걷어 내고 두 손으로 떠서 목을 축이곤 했습니다. 소펠마을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생활이었지요.

마을에 공동수도가 생기자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소독약 냄새가 하얗게 피어나는 물이어도 시원하고 달았습니다. 퍼렇게 이끼 낀 데 고인 물을 허벅으로 길어 오지 않아도 되니 신천지 같았지요. 달구지에 수돗물이 가득 담긴 드럼통을 실어 와 빙글 돌려 옮기는 아버지가 정말 힘이 세 보였습니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수도가 생겼습니다. 수돗가에 있는 커다란 고무대야에는 물이 콸콸 넘치고 마당에는 날마다 하얀 빨래가 펄럭였지요. 노을 질 무렵, 수도꼭지에 고무호스를 끼워 마당에 물을 뿌려 대빗자루로 쓸면 촉촉해진 마당에 빗자루 자국이 부채 모양으로 남았지요. 물을 세게 틀고 호스 가운데를 눌러 뿌리면 멀리 담장까지 닿은 물살이 부서지면서 남은 저녁 햇살에 둥근 무지개가 생겼습니다.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을 두 손으로 받으며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펠마을 아이들의 얼굴에도 무지개가 어렸습니다. ‘세계 물의 날’(3월 22일)을 보내면서 맑은 물 한 잔 마시는 내 마음도 맑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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