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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현재의 우주에 에너지 쏟아라

입력 2023. 03. 21   16:58
업데이트 2023. 03. 2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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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중우주’ 스토리 핵심 배경 활용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 등
다양한 드라마·영화서 설정 차용
과학보다 인간 정서·욕구에 밀접
현실 괴로움 잊게 하고 즐거움 주지만
실제 삶 회피 말고 노력하는 게 현명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포스터. 사진=더쿱디스트리뷰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포스터. 사진=더쿱디스트리뷰션

 

배우 양쯔충(楊紫瓊·양자경)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제95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여우조연상은 1958년 제30회 아카데미에서 일본 배우 우메키 미요시가 영화 ‘사요나라’로 처음으로 받았고, 이후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에서 한국 배우 윤여정이 ‘미나리’로 수상했었지만 주연상은 남녀 통틀어 아시아 배우 중 최초의 영예다. 이에 자연스럽게 양자경의 오스카 무대 수상소감을 비롯해 영화에서 다뤄진 미국 이민자로서의 삶과 가족에 대한 의미 등이 거듭 회자되며 화제를 낳았다. 이민자 가정을 지키려는 ‘여성’이라는 공통분모로 ‘미나리’의 윤여정이 종종 함께 소환되기도 했다. 

물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진정한 강점은 장르와 형태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극을 관통하는 것은 ‘멀티버스(Multiverse)’의 구조다. ‘다중우주(多重宇宙)’라고도 불리는 해당 이론은 내가 살아가는 현재의 우주 외에도 나와 다른 삶을 영위하는 또 다른 우주의 내가 실재한다는 설정이 핵심이다.

영화 속 에블린(양자경)은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인물이지만 남편의 이혼 요구부터 딸과의 심적 갈등, 노쇠한 아버지의 부양, 세무 당국의 조사까지 동시에 맞닥뜨리며 괴로워하다 우연한 계기로 다중우주의 세계를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다중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신의 능력을 빌려 와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다. 이 과정에서 주요하게 등장한 무술에 능숙한 다른 우주의 유명 영화배우 에블린의 모습은 실제 배우 양자경의 삶과도 겹치면서 묘한 현실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양자경은 영화 ‘예스 마담’ ‘007 네버다이’ ‘와호장룡’ 등으로 국내에서도 액션 스타로서 큰 관심과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포스터.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포스터.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다중우주’라는 설정은 그다지 대중에게 낯설진 않다. 앞서 선보인 여러 작품 중 이러한 설정을 차용한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벤져스’ 시리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블의 경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4부터 6까지를 ‘멀티버스 사가’라고 공식 지칭하고, 다중우주 개념을 스토리 핵심 배경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21년 말 개봉했던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과 2022년 5월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대표적인 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로키’ 시즌1이나 올해 2월 개봉한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도 이들과 결을 같이한다. 다중우주라는 설정은 전작에서 이미 죽었던 이를 다른 우주에서 자연스럽게 부활시키고, 기존에 펼쳐진 스토리를 별다른 설명 없이 180도 뒤집어도 극 중 핍진성(텍스트에 대해 그럴듯하고 있음 직한 이야기로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을 부여할 수 있어 작중 스토리를 더욱 확장하거나 변형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된다.

MCU 외에도 ‘멀티버스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한 대만 인기 드라마 ‘상견니’가 최근 영화로 재탄생해 극장에서 상영되는 경우도 있었다. 학계의 일부 이견은 있지만 유사한 ‘다중우주’와 ‘평행우주’를 동일시하면, 기존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국내외 여러 작품도 여기에 포함하는 게 가능해 그 절대적 수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다중우주는 양자역학을 비롯한 여러 과학 이론에 겹겹이 보호받으며 그럴싸한 현실성을 부여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장르와 마찬가지로 아직은 그저 허상에 불과한 영역이다. 공상과학(SF·Science Fiction)이라는 명칭 그대로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창작된 허구일 뿐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다중우주는 과학의 영역이라기보다 인간의 정서와 욕구에 더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가 보지 못했던 길,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자책과 후회, 기회비용으로 인해 발생한 반대급부에 대한 지워지지 않은 열망 같은 것이 적절하게 혼재한다. 현실적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은 신기루에 대한 인간 본연의 궁금증과 열의로 가득 찬 영역인 셈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다. ‘다중우주’가 품고 있는 놀라움, 가능성 등이 현실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일정 부분 치유해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나쁘지 않지만 혹 그것으로 인해 지금 당장 직면한 ‘현재의 우주’를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될 노릇이다. 그보다는 지금 당장의 상황과 삶을 바꿀 수 있는 현실적인 노력을 쏟는 것이 더 현명하다.

‘다중우주’는 분명 흥미롭다. 하지만 그 즐거움에 현재의 내 삶을 저당 잡혀서는 안 된다. 즐거움은 만끽하되 실제 ‘나의 우주’에서는 이러한 콘텐츠의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더욱 신중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진짜 삶에 에너지를 쏟을 시간이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조금 느릿하더라도 밀도가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조금 느릿하더라도 밀도가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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