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취업 스타트업 창업 가이드

‘겉평속직’<겉으론 수평, 속으론 수직>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입력 2023. 03. 20   15:47
업데이트 2023. 03. 27   09:59
0 댓글

스타트업 창업 가이드 - 스타트업의 수평문화(상)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수평’ 바람
MZ세대 인재 확보 위한 필수적 요건
동기 부여·참여 유도·빠른 결정 장점
호칭만 바꾸고 수직적 문화 답습하기도
일반 직원과 경영진 동상이몽도 문제
제도보다 실질적 근무 만족도 향상 중요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최근 몇 년 전부터 수평 조직·수평 문화를 추구하는 회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과거의 수직적 구조, 상명하복식 조직문화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돼 가고 있다. 단순히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권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업의 조직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임원 등과 같은 직급 체계를 없애고, 영어 이름을 부른다거나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부르는 등 호칭 제도를 바꾸고 있다.

사실 이런 시도는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2000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직급 호칭을 버린 CJ그룹의 파격적인 시도 역시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필자가 2002년도에 다음(Daum)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직급 없이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는 호칭 제도가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타 기업으로 확산되며 조직문화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금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들까지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고 채용공고에 수평 문화라는 표현이 없으면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카카오를 비롯한 수많은 기업이 영어 이름이나 OO님으로 부르면서 수평 문화를 표방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이나 소신이 강하고 상명하복의 조직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MZ세대가 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다. 기업들 역시 우수한 MZ세대의 인재 확보를 위해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도입하는 것이 인사·채용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됐다.

개인적으로 수평 문화를 가장 성공적으로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곳은 바로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사실 ‘아는 형님’은 프로그램 초반에 애매한 콘셉트와 저조한 시청률로 폐지 얘기까지 나오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아는 형님’은 현재 10% 전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JTBC의 간판 예능이 됐다. 8명의 고정멤버들의 경력·나이·출신(개그맨, 가수, 운동선수 등)이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웃음을 만들어 내고, 아주 가끔 감동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멋진 조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근본 없는 예능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포맷을 만들고 이런 꿀 조합을 만들어낸 제작진도 존경해마지 않는다.

프로그램 ‘아는 형님’의 성공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마도 서로가 이름을 부르면서 반말하고 편하게 소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8명의 멤버들을 일반 회사의 직급으로 매칭 해보면 아마도 강호동 대표이사, 서장훈과 이상민이 이사급, 이수근 부장, 김영철 과장, 김희철과 민경훈이 대리 정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매주 바뀌는 출연자들이 신입사원 정도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서로 이름을 부르고 반말하며 유기적인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고정 멤버들뿐만 아니라 이제 막 데뷔한 아이돌 가수가 연예계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30년 경력의 강호동에게 반말하며 들었다 놨다 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뭔지 모를 희열감이나 대리만족감을 준다. 과거 S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 피해자들이 웃으면서 강호동에게 당했던 얘기를 하는 것은 단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연예계의 잘못된 관행이나 선배들의 갑질에 대한 경종이 되기도 한다. 가수 겸 제작자로 유명했던 이상민이 이혼과 빚이라는 슬픈 키워드로 김희철에게 당할 때는 뭔가 안타깝고 짠하면서도 재미있다.

한번 상상해보자. ‘아는 형님’이 호칭만 부르고 서로 존댓말을 하는 포맷이었다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출연진들이 강호동에게 주눅들거나 긴장하고 있는 모습, 생각만 해도 뭔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오해하지 말자. 여기가 미국도 아니고 회사에서 서로 반말을 하자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포맷이나 문화를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어정쩡한 문화로 의사결정도 오래 걸리고 서로 스트레스만 받는 문화를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겉멋에 수평 문화를 추구하고 실제로 일은 수직적으로 하지 말자는 뜻이다.




만약 경영진에서 수평 문화를 선택했다면 몇 년이 걸리든, 얼마가 들든, 몇 명을 투입하든 최대한 대표이사부터 신입사원까지 모두가 지키고 협조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과감히 수평 문화·수평 조직을 포기하고 일반적인 직급과 직책의 문화를 만들어가면 된다. 수평적인 회사는 딸 같은 며느리, 친구 같은 아빠처럼 달콤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물론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이나 기업들이 있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높지 않은 듯하다.

수평 문화를 지향하는 회사가 뭔가 힙하고 창의적으로 보이며, 수직적인 구조의 회사보다 직원을 위하고 일하기 좋은 것처럼 과대 포장돼 있는데 그것은 ‘케바케(Case By Case)’라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수평 문화는 좋고 수직 문화는 나쁜 것이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다른 것이다.

창업 초기, 성장과 빠른 의사 결정을 위해 수직적으로 운영하다 어느 정도 조직이 커진 후 수평으로 갈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각각의 문화가 주는 가치와 호불호는 산업마다 회사마다 개인 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다. 필자가 다녔던 인터넷 포털 회사들도 겉으로는 매우 수평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상당히 관료적이고 수직적으로 느껴졌는데 직원들마다 생각이 조금씩 달랐다. 직원이 100명이 넘어가면 관료적일 수밖에 없고 정치가 생기기 시작한다는 말도 있다.

어떤 철학이나 강한 의지 없이 수평적인 문화, 수평적인 조직을 추구하고 부족한 결과물에 인사담당자만 다그치는 경영진들에게 묻고 싶다. 인사 담당자를 질책하고 있는 당신은 수평적인 사람인가?

직원 모두가 OO님으로 부르는데 본인만 사장님, 회장님으로 불리길 바라는 분들께 묻고 싶다. 정말로 수평문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와 자세가 돼 있나? 대표이사 방을 따로 만들고 종일 나오지 않으면서 정말로 직원들과 수평적으로 소통할 수 있겠는가? 정말로 호칭이라는 껍데기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권한이나 급여구조까지 수평적으로 할 의지가 있나?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직원이 회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경영진에게 본인의 의사를 강하게 주장한다고 평가에서 불이익을 주지 않을 자신이 있나?

대표님을 대표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과장님을 과장님이라 부르지 못하는 회사가 무조건 좋은 회사는 아니다. 수평이든 수직이든 아니면 제3의 문화이든 경영진과 직원들이 함께 노력해 성과를 올리면서 근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최적화된 문화를 찾고 만드는 것이 정말 의미 있지 않을까?

결국 어떤 문화이든 어떤 제도이든 함께 성과를 만들어내고 기여한 만큼 과실을 나누고 능력보다 아부나 정치로 크는 사람이 없고, 실력과 인성을 갖춘 진정성 있는 직원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회사가 진짜 좋은 문화가 아닐까. ‘아는 형님’은 근본 없는 예능으로 성공했지만 근본 없는 회사도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필자 임성준은 카카오·야후코리아·네이버에서 경력을 쌓은 뒤 주거공간 임대차 플랫폼 '스테이즈'를 창업했다. 저서로 『스타트업 아이템 발굴부터 투자유치까지』가 있다.
필자 임성준은 카카오·야후코리아·네이버에서 경력을 쌓은 뒤 주거공간 임대차 플랫폼 '스테이즈'를 창업했다. 저서로 『스타트업 아이템 발굴부터 투자유치까지』가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