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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아닌 곳 어디 있으랴
문을 걸어 잠그면 옆집도 오지다
화병에 꽂힌
꽃의 이름이 솔깃해서
귀를 열어 그 꽃이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면
꽃의 발아래 흐르는 물소리는 들을 것이다
계절보다 먼저 일어나
어둠의 소리를 쫓고 숙연히 합장하는 숲의 기도
너의 모태는 오지다
길이 외로워서 오지다
떨어져 먼 이름으로
머무르고 싶은
허허로운 세상 외롭지 않는 것은
내가 있고 네가 또 그곳에 있어
서로를 열어볼 수 있음이다
눈이 먼 곳 다가서지 못하고 그렇게
마음이 멀면 오지다
<시 감상>
오지는 외딴섬이나 깊은 산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마음이 다가가지 못하고, 진솔한 소통과 관계의 어울림이 없으면 “오지 아닌 곳”이 없다.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면 옆집도 오지”이고, 말과 말이 부딪쳐서 깨진 조각처럼 부유하는 SNS 공간도 오지다. 현대사회의 두드러진 삶의 행태는 익명성과 인간관계의 소원함이다. 익명의 언행 통로는 요원하고, 마음의 교류가 없는 관계망은 헐겁고 외롭다. 기술문명의 가속페달을 밟으며 달려가는 현대인의 삶의 공간은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길이 외로워서 오지다.” 무심코 지나친 삶의 배경과 일상을 되돌아보는 것은 자기성찰과 사유를 통해 주체적인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일이다. 시인은 “허허로운 세상 외롭지 않는 것은” “서로를 열어볼 수 있음”이라고 말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서야 따뜻한 공동체의 순기능적 삶을 회복할 수 있음을 일러준다.
시는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시상의 소리를 보고 듣는 것이다. 시인은 일상의 언어로 쉽게 읽히는 시를 짓는데, 이런 시를 짓는 일은 쉽지 않다. 평이한 시어의 친밀함이 진부함을 초월하여 참신한 서정으로 솟아날 때 느끼는 감동의 울림은 깊고 오래간다. 시인의 어법은 현학적이거나 사변적이지 않다. 경험적인 아포리즘에 가깝다. 아포리즘은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아포리즘 언술을 기억하고 삶의 지표처럼 꺼내 보는 것은 시대와 이념을 초월한 보편적 삶의 깨달음의 가치 때문일 것이다.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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