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정전협정 70년, 참전용사에게 듣는다

[정전협정 70년, 참전용사에게 듣는다] (31) 교단에서 전장으로…박기수 옹

김해령

입력 2023. 02. 13   16:36
업데이트 2023. 08. 0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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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 포위된 상황서 정찰 임무 

앞서가던 척후병 모두 전사

정전 소식에 총성 멈추기 기다리며 눈물 쏟았죠

 

정전협정 70년, 참전용사에게 듣는다
31 교단에서 전장으로…박기수 옹

 
대구서 교사 생활 6개월 때쯤 전쟁 발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떨치고 자원입대

 
1951년 5월 중공군에 포위된 3군단 배치
소속 부대 후퇴로 개척 임무
오마치 고개 척후조 전우들 모두 전사

 
적 위치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방향 바꿔 아군 있던 곳 도착하니 
이미 중공군 침투해 물자 탈취

 
북한군 눈 피해 영월 후방 부대 도착
“오마치 고개에 적 많다” 정보 보고
퇴로 개척 기여 공로로 화랑무공훈장
부대원 306명 중 약 60명만 생존

6·25전쟁 참전용사 박기수 옹이 대구광역시 무공수훈자회 대구시지부에서 진행된 국방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쟁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6·25전쟁 참전용사 박기수 옹이 대구광역시 무공수훈자회 대구시지부에서 진행된 국방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쟁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박옹이 참전했을 때 적은 일기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박옹이 참전했을 때 적은 일기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박옹이 간직한 자료 중 자신의 과거 사진.
박옹이 간직한 자료 중 자신의 과거 사진.

 

박옹의 전투 경험담을 경청하는 육군사관학교 생도들 .
박옹의 전투 경험담을 경청하는 육군사관학교 생도들 .


1129일의 6·25전쟁 기간 모든 전투에서 아군이 대승을 거뒀으면 좋았겠지만 고초를 겪은 전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영웅’은 난세에 나는 법. 악전고투 속에서도 다대한 전과를 올린 영웅들 덕분에 위기를 극복했다. ‘정전협정 70년, 참전용사에게 듣는다’ 서른한 번째 주인공 박기수(92) 옹도 열세에 몰린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난전(難戰)으로 평가되는 ‘현리전투’에서 척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박옹에게 당시 전장 상황을 들어봤다. 글=김해령/사진=양동욱 기자

국가 위해 참전한 열아홉 초보 교사

“그때를 떠올리자니 감개무량합니다. 세월이 70년이나 흘렀고, 내 나이 92세가 됐는데도 전쟁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지난 9일 대구광역시 무공수훈자회 대구시지부에서 만난 박옹은 6·25전쟁을 묻는 말에 한동안 유지하던 침묵을 깨고 이같이 말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박옹은 고향인 대구지역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초보’ 교사였다. 전쟁은 박옹이 교사 생활을 시작한 지 약 6개월이 되던 때쯤 일어났다. 19세의 박옹은 학교를 지켰다. 하지만 동료 교사들이 하나둘 입대하면서 박옹도 참전의 기로에 서게 됐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고민하고 망설였죠. 그렇지만 모두가 국가·민족을 위해 입대하는데, 혼자 고향에만 있을 순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자원입대했습니다.”

입대한 박옹은 대구 수성구에 있는 고산초등학교에서 교육훈련을 받았다. 당시 고산초에는 육군공병학교가 주둔하고 있었다. 이후 서울 경동중학교를 기지로 사용하던 1801기술공병단에 전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옹은 부대 이름도 몰랐다고 한다. 어디 소속인지도 모르고, 계급장도 없는 채로 상경한 것이다.

“당시에는 서울이 최전방이었어요. 중공군하고 북한군이 서울까지 내려온 거죠. 공병단 중대본부에서 복무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강원도 전장으로 배치됐어요. 전황이 더욱 악화되면서죠.”

1951년 5월 박옹은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 있는 육군3군단 예하 1103야전공병대로 가게 됐다. 당시 3군단은 중공군에 포위된 상태였다. 3군단이 중공군을 피해 후방으로 탈출하려면 전력 요충지인 ‘오마치(현재 오미재) 고개’를 넘어야 했다. 박옹이 소속된 부대는 3군단의 후퇴로를 개척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위기 순간, 운명 걸린 척후작전 투입

“절체절명의 순간, 군단 전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운명이 우리 부대에 달리게 된 겁니다. 저야 명령받는 병사였지만 부담감이 엄청났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보초 서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명령이 하달됐습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현리 고개로 올라가던 중 정체 모를 헬기에서 내린 누군가가 박옹의 부대를 멈춰 세웠다. 그는 박옹을 비롯한 5명을 지목해 전방 척후 명령을 내렸다. 3군단의 후퇴로인 오마치 고개에 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정찰하고 오라는 명령이었다.

“우리 부대는 사면초가(四面楚歌)였어요. 정찰을 나간다는 건 거의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그러나 전쟁에서 명령을 거부하면 그 자리에서 총살형입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전방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박옹을 포함한 5명의 척후병은 일반 소총을 기관단총으로 바꿔 메고, 복장을 제대로 갖춘 뒤 오마치 고개로 향했다. 척후조는 사방을 주시하며 포복으로 움직였다. 산 밑 물이 흐르는 작은 골짜기를 따라 기어서 100m가량을 들어가니 가까이에 북한군 장교 복장인 사람이 보였다. 그 뒤로는 엄청난 수의 중공군이 있었다. 정찰하지 않고 고개를 넘어 후퇴했다면 부대가 몰살당할 뻔한 상황이었다. 적이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척후조는 신속히 복귀해 이 사실을 알리기로 하고 방향을 돌렸다.

“그때 갑자기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여러 발의 총소리가 났어요. 내 앞에 가던 4명의 척후병이 모두 총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죠.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 엎드려만 있었어요.”

박옹은 이런 상황과 적의 위치를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돌아서서 아군이 있던 곳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적이 쏜 총성은 계속됐다.

“아군이 있던 곳에 도착하니 이미 중공군이 침투해 우리 물자를 탈취하고 있었어요. 우리 군은 이미 건너편 산으로 피한 상태였죠. 그 산에서는 아군과 중공군의 백병전이 벌어졌습니다. 일단 위기를 벗어나고자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넜어요.”

강을 건넌 박옹은 2~3일을 달려 강원도 영월에 있는 후방 부대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도 무장한 북한군을 피하느라 여러 번 생사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후방 부대에 다다른 박옹은 오마치 고개에 적이 많다는 정보와 함께 아군과 중공군의 백병전을 보고했다. 향후 박옹의 척후 활동은 3군단의 퇴로 개척에 기여하고, 아군의 피해를 줄였다는 공로가 인정돼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다. 그러나 현리전투는 6·25전쟁사에서 가장 참담한 패전 중 하나로 꼽힌다. 박옹 부대 역시 306명의 부대원 중 생존 전우는 약 60명에 불과했다.

“6·25전쟁 최대 교훈은 유비무환”

“이후 여러 전투에 참전했어요. 그러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에 전쟁을 중지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전쟁이 멈추는 순간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산꼭대기까지 무작정 올라갔습니다. 저 멀리 전쟁터를 내려다보면서 총성이 멈추기를 기다렸죠. 그때 함께 싸우다 산화한 전우들의 얼굴이 눈앞을 가로막았어요. 나도 모르게 눈물과 콧물이 흘러내리더군요. 만감이 교차하던 그 순간, 희미하게 들리던 총포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어요. 10시가 된 거죠.”

박옹은 인터뷰 중 들고 온 가죽 서류가방에서 낡고 빛바랜 스케치북을 꺼냈다. 그곳에는 군대에서 적은 일기와 전쟁 중 찍은 사진들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한 페이지는 작은 사진들을 ‘友(벗 우)’ 모양으로 배치해 전우애를 나타내기도 했다. 또 전우들에게 받은 사인도 있었다. 박옹이 전역 당시 전우들의 필체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부탁해 받은 거라고 한다.

박옹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위기에 대비해 군사력을 더욱 튼튼하게 하는 방법뿐이라고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100세를 바라보는 노병이 한마디 당부하자면, 우리가 항상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어도 위험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6·25전쟁의 최대 교훈은 유비무환(有備無患)입니다. 전쟁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여건에서 침공당해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졌죠. 우리 스스로 국방력을 키우고, 동시에 우방국과 안보동맹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김해령 기자 < mer0625@dema.mil.kr >
양동욱 기자 < dw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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