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 통신 - 초신성이 알려 주는 행운을 잡는 기술
‘고려사절요’에 1006년 혜성 출현 기록
8000년 전 폭발 SN1006 초신성 추정
지구에 섬광 도달 7000년 걸렸을 수도
더 느린 우주 방사선은 현재 영향 가능
반도체 소재 건드려 ‘소프트 에러’ 유발
관련 문제 해결 기술 발달 긍정적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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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보이는 별 중에 가장 밝은 별은 무엇일까? 가장 좋은 대답은 시리우스라는 별이다. 시리우스보다 금성이 더 밝기는 하다. 그러나 금성은 시리우스와 달리 스스로 빛을 내뿜는 진짜 별이 아니다. 그냥 하늘을 떠다니는 돌덩어리 행성일 뿐인데 지구에 워낙 가까이 있기 때문에 눈에 잘 뜨여서 밝게 보이는 것뿐이다.
그런데 만약 과거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시리우스가 가장 밝다는 답이 틀릴 수도 있다. 별이 거대한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면 그 폭발의 위력 때문에 갑자기 아주 밝아 보이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져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밝았던 별의 후보로 SN1006이라는 초신성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00년 전인 1006년의 밤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초신성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SN1006은 어마어마하게 밝아서 현대의 학자들은 시리우스는 물론 금성보다도 훨씬 더 밝았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어지간한 달빛보다도 밝았을 것이다.
1006년이면 한반도에서는 고려의 천추태후의 위세가 한참 높던 시대다. 천추태후는 고려의 임금이었던 목종의 어머니였다. 1006년 무렵, 천추태후는 자신이 믿던 사람들을 신하로 뽑았고 특히 자신이 총애하던 김치양이라는 인물에게 높은 벼슬을 줬다. 고려 사람들 중에는 천추태후와 김치양에게 반발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그들은 두 사람이 정치를 잘못하기 때문에 하늘에서 나쁜 징조를 보여 줄 거라는 생각을 품기도 했을 것이다.
역사책 『고려사절요』의 1006년 기록을 보면 그해 고려에 혜성이 출현했다고 쓰고 있다. 혜성은 초신성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지만, 신성·초신성·혜성·유성 등을 현대와 같이 명확한 기준으로 잘 구별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SN1006 초신성을 혜성이라고 기록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SN1006은 남쪽으로 치우친 위치에 나타났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주로 남부 지방에서 잘 관찰됐을 것이다. 막연한 상상일 뿐이지만 지방에서 관찰된 이상한 별에 대한 보고가 궁궐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혼동이 생겨 혜성으로 기록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
초신성이건 혜성이건, 옛사람들은 그 별이 천추태후가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에 하늘이 경고의 의미로 보여 준 징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침 3년 후인 1009년에 강조라는 신하가 반란을 일으켜 천추태후를 내쫓고 목종까지 임금 자리에서 끌어 내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틈에 거란족이 고려를 공격해 와서 큰 전쟁이 터지는 난리가 벌어졌다. 조선시대의 책 『천동상위고』에서는 1006년에 이상한 별이 나타난 것이 바로 그 난리가 날 징조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SN1006을 천추태후의 초신성이라고 불러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 가지 기이한 것은 천추태후의 심복인 김치양이 독특한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는 점이다. 『고려사』를 보면, 김치양의 사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가 성수사(星宿寺)라는 건물을 지었다고 돼 있다. 성수사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그 이름을 풀이해 보면 별의 사당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김치양은 별을 숭배하는 일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혹시, 갑작스럽게 나타난 초신성을 보고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놀라서 성수사를 세우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의식을 거행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반대로 밝은 별이 나타나 자신들의 미래를 밝게 비춰 준다고 상상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런 식으로 초신성을 향해 기도해 봐야, 천추태후나 김치양의 운명을 바꾸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SN1006은 지구에서 대략 6경8000조 ㎞라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별이다. 이렇게 먼 곳에 있는 별이 폭발하면 폭발의 밝은 빛이 지구에 닿는 데만 70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다. 즉 지금으로부터 대략 8000년 전에 SN1006이 폭발했고 그 빛이 7000년 동안 우주를 날아 와서 1006년 고려 시대에 세상 사람들 눈에 보였다는 뜻이다. 만약 빛보다 조금 느리게 움직이는 물질이 초신성 폭발 때문에 튀어 나와 지구에 떨어진다면 그보다 좀 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SN1006 때문에 생긴 우주방사선 따위는 1000년이 지난 요즘 지구에 떨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초신성과 21세기 사람들의 생활 사이에는 색다른 관계가 생긴다. 우주방사선이 지구에 떨어지면 공기와 반응하면서 여러 가지 다른 방사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흔하게는 중성자라는 물질이 생길 수도 있다. 중성자가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자제품 속에 들어가면 아주 약하게, 아주 조금이지만 그 전자제품을 이루는 성분을 파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의 주재료인 규소는 초신성의 영향 때문에 그런 식으로 파괴돼, 전기를 띤 수소나 헬륨 같은 물질을 뿜어낸다.
이렇게 생겨나는 수소나 헬륨은 그 양이 아주아주 조금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반도체 산업이 발달하면서 아주 작은 크기에 굉장히 많은 자료를 다루는 부품들이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주 조금씩 생기는 전기를 띤 수소와 헬륨이 반도체 속의 전기를 살짝 혼란시키는 것만으로 반도체의 자료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꽤 발생하게 됐다. 보통 이렇게 발생한 오류는 기계를 껐다가 켜야 원상복구 되며 소프트 에러(soft error)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8000년 전에 폭발해서 1000년 전에 고려 시대 사람들 눈에 보인 초신성의 영향 때문에 문득 21세기에 내가 쓰고 있는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고장 나서 먹통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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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에러는 대개 숫자 0이 1로 바뀌거나 1이 0으로 바뀌는 정도의 아주 작은 차이를 일으킬 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는 컴퓨터의 세계에서는 숫자 하나가 바뀌는 문제가 굉장히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내 전 재산을 임차보증금으로 집주인에게 송금해 주려고 하는데, 그때 마침 초신성이 만들어낸 우주방사선 때문에 계좌번호 숫자 한 자리가 바뀌어서 엉뚱한 사람에게 송금된다고 해 보자. 아찔한 일이다.
실제로 2008년 호주의 어느 항공사 비행기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빠르게 수십 미터를 내려가서 승객 여러 명이 다친 사건이 있었는데, 2022년 10월 BBC 보도에서는 이게 소프트 에러 때문에 비행기 컴퓨터가 오작동해 생긴 사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반도체 회사에서는 우주방사선이 일으키는 소프트 에러를 극복할 수 있는 기능을 열심히 개발해 설치하고 있다. 또한 안전 문제가 중요한 자율주행차 등에 컴퓨터가 많이 사용되면서, 우주방사선을 잘 견딜 수 있는 제품인지 반도체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기술도 더 주목받는 추세다. 2022년에는 이런 시험 기술을 개발하는 국내의 한 반도체 시험 평가 회사가 주식 시장에 진입하면서, 그 회사 대표가 갑자기 900억 대 주식 부자가 됐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치양이 그저 밤하늘 별에 빌기만 하는 일은 아무 보람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힘으로 그 원리를 알고 활용하는 방법을 찾으면 그 속에는 이렇듯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큰 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우주방사선, 반도체 산업과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나는 초신성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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