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호
광복 후 국내 기술진의 힘으로 최초 완성한 첫 번째 군함이 1947년 2월 2일 완공과 함께 닷새 후인 2월 7일 선체번호 ‘313’과 함께 ‘충무공’정으로 명명되었다. 명명식은 이날 해군사관학교 1기 졸업식과 병행 개최된 것으로 초대 정장에는 박홍철 중위가 임명됐다.
대한민국 해군 조함(造艦)의 효시(嚆矢)로 평가 받는 충무공정은 광복 후 미국·일본으로부터 인수한 함정과 달리 처음부터 태극기를 게양한 최초의 함정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뜻깊은 함정이다.
충무공정은 길이 46.6m, 폭 6.7m, 배수량 287톤 규모에 800마력의 추진력, 최고속도 13노트의 경비정(PG:Patrol Gunboat)이다. 40mm 기관포 1문, 20mm 기관포 2문, 그리고 후에 12.7mm 기관총 2정을 장착하고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충무공정은 공식적으로는 ‘정’급이었지만 해군의 전신인 ‘조선해양경비대’는 국내에서 건조한 첫 번째 함정이자 기함(旗艦)인 만큼 지휘관 호칭을 ‘정장’이 아닌 ‘함장’으로 격상해 불렀다. 이 같은 호칭은 충무공정이 퇴역할 때까지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충무공정은 본래 1944년 9월 14일 일본이 운영하던 진해 공창에서 착공됐다. 어뢰발사기 4문과 5톤짜리 기중기를 갖춘 비행기 구조 겸 어뢰발사 함정으로 설계된 함정이었다.
당시 진해 공창은 건선대는 3개소밖에 없었으나 40동에 이르는 대소 건물에 각종 기계와 시설을 완비하고, 3,000여 명의 직공이 일을 한 큰 공장이었다. 공장의 일본인들은 태평양전쟁의 전황이 불리하게 전개되면서 유사시 이 함정을 일본으로 도망칠 때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의도를 간파한 배화상·윤태운 등 한국인 기술자들이 함정의 건조를 지연시켰다. 특히 일본 항복 1개월 전에는 전면 파업으로 건조 작업을 중단시키도 했다.
그러나 연합군에게 항복하면서 어느틈에 일본 해군측은 기계를 반출하고 파괴까지 서슴지 않았다. 공창은 관리 주체가 없는 빈 공장이 되고 대낮에도 도둑이 횡행했지만, 다행히도 공창에서 일하던 한인 직공들이 공장을 지켰다. 1945년 10월 미군은 이 공장을 접수하고 한인 공원 200명 중 간부급 20명만 제외하고는 별도로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는 조건 아래 일단 해산하게 되었다.
그후 대한민국 해군의 모체로서, 1945년 11월 11일 창단한 해방병단이 진해로 내려와 이 공장을 미군에게서 접수하고 1946년 2월 27일 공장의 문을 다시 열었다. 충무공정에 대한 건조는 1946년 7월 15일에야 재개되었다. 당시 이 배는 골격만 있었을 뿐이어서 새로운 함정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조함창 기술진은 밤낮을 잊은 채 7개월 만에 건조를 완료했다. 이로써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군함이 탄생했다.
■ 참고자료
국방일보 기획연재 '대한민국 군함이야기' 2018년 4월 12일자
국방일보 기획연재 ‘그때그이야기' 함명수 제독편 '바다로 세계로!' 2006년 7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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