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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조차 삼키는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입력 2023. 01. 03   16:25
업데이트 2023. 02. 1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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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통신 - 사건의 지평선

 

매주 수요일 곽재식 교수가 우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 드립니다. 팍팍한 일상에서 잠깐 숨을 돌려 광대한 우주의 신비를 생각하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편으로는 현실과는 관계가 없고 멀기 만한 느낌을 주는 우주 이야기가 사실은 얼마나 우리의 삶과 가깝게 연결돼 있는지 돌이킬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강한 중력에 의해 만들어져 
빨려들면 탈출할 수 없는 경계
우리 은하계 중심에 위치한
궁수자리A 블랙홀 아니었더라면
태양과 지구 탄생 못했을 수도

 

요즘은 노래 제목으로도 친숙한 ‘사건의 지평선’은 원래 블랙홀의 크기를 가늠하는 수치를 말하는 용어였다. 사건의 지평선이 큰 블랙홀은 그만큼 크고 넓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블랙홀이고, 사건의 지평선이 작은 블랙홀은 그만큼 작고 좁은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즉,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영향력이 특히 강하게 미치는 곳까지의 선을 말한다고 보면 된다. 

블랙홀에 한 번 빨려 들면 결코 바깥으로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는 한번 쯤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블랙홀의 영향력이 특히 강하게 미치는 사건의 지평선이란 바로 그 한번 빨려 들면 그 무엇도 결코 바깥으로 나올 수 없는 정도로 블랙홀에 가까이 온 선을 말한다. 사건의 지평선이 300㎞인 블랙홀이 있다고 해 보자. 그러면 그 블랙홀 근처 300㎞이내로 들어 가면,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좋은 자동차를 타고 아무리 가속 페달을 밟는다고 해도 블랙홀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 300㎞ 안 쪽에서는 아무리 강력한 로켓을 가동한다고 해도 결국은 블랙홀 중심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

심지어 우주에서 가장 속력이 빠르고 가장 가벼운 물체인 빛 조차도 한번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서면 바깥으로 나올 수가 없다. 전파도 사실은 빛의 일종이므로, 이 말은 사건의 지평선 보다 가까이 가면 그 바깥을 향해서는 전파로 통신을 할 수도 없고 신호를 보낼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건의 지평선 안쪽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사건의 지평선 바깥쪽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래서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노래 제목에 나온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말도 한 때 가까웠던 사이가 멀어진 뒤에 이제는 서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연락도 닿지 않는 상태가 됐다는 아련한 느낌을 준다.

이런 블랙홀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 블랙홀이 갖고 있는 힘의 근원은 우주 어디에나 있으며 가장 흔하게 느낄 수 있는 힘인 중력이다.

중력은 무게가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서로 끌어 당기는 힘을 말한다. 그래서 만유인력이라고도 한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 때문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와 글을 쓰고 있는 나 사이에도 서로 잡아 당기는 힘이 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모든 물건들 조차도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어느 정도는 서로 잡아 당기는 힘을 받는다. 그저 그 힘의 크기가 너무 약해서 느끼지 못할 뿐이다.

보통 중력이라고 하면 별이나 행성이 끌어 당기는 힘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런 물체는 워낙 크기 때문에 중력이 강해서 힘이 쉽게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무게란 것은 지구가 그 거대한 덩치가 갖고 있는 중력으로 지구 주변의 물체를 잡아 당기는 힘이다. 그래서 돌멩이를 허공에 던지면 바닥에 떨어지게 당기는 힘도 중력이고, 서 있을 때 다리에 걸리는 내 몸무게의 힘도 결국 중력이다. 달나라에 가면 몸무게가 훨씬 가볍게 느껴져서 지구에 있을 때의 6분의 1 정도 밖에 무게를 못 느낀다고 하는데, 이것은 달이 지구보다 훨씬 작아서 당기는 중력도 약하기 때문이다. 즉 달나라에서는 무거운 짐을 둘러 메고 차렷 자세로 오래 서 있으라고 해도 지구 보다 훨씬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지구 보다 더 무거운 곳에 가면 더 센 힘으로 잡아 당기는 중력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지구보다 큰 행성인 목성의 표면에 가면 몸무게 때문에 몸에 걸리는 힘이 지구에 있을 때의 세 배 정도가 된다. 옛날 SF 만화나 소설을 보다 보면, 지구보다 더 큰 행성에서 살면서 그 행성의 강한 중력에 적응된 외계인들이 지구에 오면, 지구에서는 몸이 가볍게 느껴져서 힘도 세고 붕붕 날아 다니는 듯이 행동한다는 내용이 나왔다. 이 역시 바로 같은 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지구에서 로켓을 발사하면 우주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지구가 지금 우리가 사는 곳보다 더 큰 행성이었다면 중력이 더 크게 걸려서 로켓으로 우주에 나가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지구가 아주 큰 행성이라면, 지구에 있는 연료 중에 아무리 폭발하는 힘이 센 것을 사용하더라도 결코 지구 바깥으로 로켓이 날아갈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중력이 걸릴 수도 있다. 이런 행성은 로켓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곳이다. 그런 식으로 어떤 별, 행성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또 그 무게가 좁은 크기에 응축된다면 점점 더 그곳에서 무엇인가가 빠져 나오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 정도가 심해져서 빛조차도 빠져 나올 수 없게 되었을 때, 관찰하기 위해 그곳에 불빛을 비춰 본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 빛도 모두 빨려들기만 하기 때문에 아무 빛도 없는 새카만 모양만 보일 것이다. 그래서 그저 검은 구멍처럼 보이기만 한다고 하여 블랙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블랙홀이라고 하면 생활과 아무 상관 없는 우주 저편에 관한 공상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은하계의 중심에는 흔히 거대한 블랙홀이 있기 때문이다. 별들 수천억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은하계라고 하는데, 우리 지구도 한 은하계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밤하늘에 보이는 은하수는 이 은하계의 한 쪽 부분의 모습이다. 그 중심부 방향이 별자리로 보면 궁수자리 방향이고, 그래서 그 자리에 있는 블랙홀을 대개 궁수자리A 블랙홀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블랙홀이 그 강력한 힘으로 은하계를 휘젓고 있기 때문에, 블랙홀의 힘이 은하계의 모양을 잡아 주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그 말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긴긴세월 동안 궁수자리A 블랙홀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지구가 소속된 은하계가 바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이 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만약 궁수자리A 블랙홀이 없었다면 태양을 이룰 재료가 되는 물질이 수십억년 전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래서 우리가 보는 모습대로 태양과 지구가 탄생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지구가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이 된 것도, 매일 우리가 보는 해가 뜨는 것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블랙홀 덕택이다.

독일의 과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는 1916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군대에 입대해 전쟁터에서 싸우게 되었다. 슈바르츠실트는 그 와중에도 틈틈이 시간이 나면 과학 연구를 했는데, 그는 블랙홀이 아주 단순한 형태라고 가정했을 때, 사건의 지평선의 크기를 계산해 내는 간단한 방법을 개발했다. 이렇게 해서 계산해 낸 크기를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라고 한다. 쉽게 생각하면,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 사건의 지평선을 더 단순화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궁수자리A 블랙홀의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무려 1200만㎞나 된다고 한다. 즉 우리 은하계 중심부로부터 대략 1200만㎞ 안쪽에 들어 가면 그 무엇도 나올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은하계는 너무나 넓기 때문에, 지구에서 이 블랙홀까지의 거리는 1000조㎞의 260배 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언제인가 그렇게 먼 곳까지 우주선을 타고 가게 되면 운전조심을 해야할 날도 오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저 이런 좋은 행성을 있게 해준 블랙홀에게 느긋한 태도로 감사하기만 하면 된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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