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전쟁의 문턱에서(2022) 감독: 크리스찬 슈뵈초브
출연: 조지 매카이, 제레미 아이언스,
야니스 니에브외너
로버트 해리스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
뮌헨 협정 막전막후 생생하게 포착
‘강한 군사력 뒷받침된 평화’ 교훈 전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년 전인 1938년 뮌헨 회담을 배경으로 영국과 독일의 조약 체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젊은 외교관의 모습을 그렸다. 사진=넷플릭스
1938년 뮌헨 회담에서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체코의 수데텐을 분리해 독일에 합병하기로 합의했다. 회담을 마치고 공항에서 협정서를 높이 들어 보이는 체임벌린 총리. 영화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일어났어야 하는 바를 말하는 것은 결코 역사가의 의무라 할 수 없다. 역사가의 유일한 의무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밝히는 것이다. 일어난 모든 일을 히틀러의 책임으로 돌리는 한 밝혀지는 것은 거의 없다.”('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A.J.P 테일러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영국 외교사의 ‘흑역사’ 뮌헨 협정
“누구나 얼굴을 크게 한 대 강타당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계획이란 걸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마이크 타이슨)
1938년,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이 그랬다. 그도 역시 계획이란 걸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이었다.
체임벌린은 어떻게든 전쟁을 막기 위해 히틀러의 계획된 도발을 달래기로 일관했다. 히틀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큰 전쟁’이 또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1938년 9월 29일부터 이틀간 뮌헨에서 독일,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정상이 만났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체임벌린과 달라디에가 돌파구를 찾기로 한 것이다. 체코의 영토지만 독일어권 지역인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양보함으로써 영국·프랑스와 독일 간 전쟁을 피하자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사실상 히틀러의 요구 사항을 모두 수용했다. 전쟁의 공포로 들끓던 영국과 프랑스 여론은 한숨 돌리는 분위기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체코의 안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영국·프랑스와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던 체코는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영토를 하루아침에 독일에 내주는 치욕을 당해야만 했다.
체코야 어찌 됐든 전쟁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한 체임벌린은 뮌헨 회담 협정서를 높이 들어 보이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체임벌린은 구제 불능의 낙관주의자였다. 귀국한 뒤에 다우닝가 10번가 발코니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라고 믿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평안히 주무십시오.”
히틀러의 약속은 불과 1년 뒤인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깨졌다. 체임벌린을 두고두고 웃음거리로 만든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체임벌린의 실패 이후 유화정책은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될 외교적 실패의 대명사가 됐다.
뮌헨 회담의 내밀한 이야기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2022)는 2017년 로버트 해리스의 베스트셀러 소설 '뮌헨'이 원작이다. 영화는 제목처럼 2차 대전의 문턱에 있었던 1938년 독일과 영국의 외교관 친구를 중심으로 뮌헨 협정의 막전 막후를 생생히 포착한다.
193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함께 어울렸던 영국인 레거트(조지 매카이)와 독일인 하르트만(야니스 니에브외너). 시간은 흘러 1938년, 영국의 런던과 독일의 베를린은 분위기가 험악하다.
독일이 주데텐란트를 노리는 와중에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영국 총리 체임벌린(제레미 아이언스)은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각국을 중재하게 한다. 총리 보좌관 레거트는 바쁘게 움직인다. 총리를 따라 독일로 건너간 레거트는 하르트만과 재회한다.
하르트만은 1937년 11월 5일 총통 관저에서의 회의록을 전하며 레가트를 설득한다. 후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공개되며 세상에 알려진 ‘호스바흐 메모’다. 두 친구는 의기투합해 뮌헨 회담에서 체임벌린이 서명하지 못하게 막으려 한다. 히틀러가 조만간 반드시 전쟁을 일으킬 걸 알고, 뮌헨 협정이 시간을 끌 뿐 히틀러의 야욕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이미 콩밭에 가 있는 체임벌린은 하르트만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낙담한 하르트만은 마지막 수단으로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는데….
실행의 성공과 실패가, 그래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는지 어쨌는지는 이 영화의 주안점이 아니다. 다만 영화는 뮌헨 회담이라는 정해진 역사의 큰 틀에서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미를 부여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당시 유럽의 정세는 현재적 의미가 있다. 평화를 위해 노력하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강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게 뮌헨 회담의 교훈이다.
히틀러 게르만 제국 건설 이념적 밑거름 된 ‘레벤스라움’<삶터>
환경 결정론자 레첼 제시 신조어
동유럽 식민지화 계획으로 발전
1945년 11월 20일,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군사재판.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서 온 4명의 판사로 구성된 국제군사재판에 기소된 피고는 헤르만 빌헬름 괴링을 비롯해 모두 24명이었다. 독일 정부, 친위대, 돌격대, 게슈타포도 범죄적 단체로 기소됐다.
이날 법정에는 ‘호스바흐 메모’라는 문서가 제출됐다. 히틀러의 부관이었던 프리드리히 호스바흐가 1937년 11월 5일에 열린 히틀러와 독일의 군부, 외교 지도자들 간의 회의를 정리한 것이었다. 히틀러의 침략 마스터플랜이었다.
주요 내용은 오스트리아와 체코의 독일인을 독일 정부의 관할 아래 두고, ‘동방 배후지’에 독일인의 ‘레벤스라움(Lebensraum)’을 만든다는 것. 레벤스라움은 1901년 독일 지리학자이자 환경 결정론자인 프리드리히 레첼이 제시한 신조어로 ‘주민들의 생활권’ 즉, 삶터를 의미했다. 그는 ‘영토를 넓혀 독일 민족이 살 공간을 마련해야만 아리아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방에 게르만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꿈이었던 히틀러에겐 레벤스라움은 이념적 밑거름이 됐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동쪽 땅을 구체적인 생활권으로 제시했다. ‘혈통이 깨끗하고 우수한 독일인은 중부 유럽에서 우랄산맥까지 지배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생각은 책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후 독일이 2차 대전 승전 시 동유럽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세운 계획인 ‘게네랄플란 오스트’로 발전했다. 여기에는 유럽에서 어떤 민족을 얼마나 제거하거나 추방할지, 그리고 남은 영토의 얼마를 독일화 할지 구체적인 수치를 담고 있다.
그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다. 참모들의 반대에도 히틀러가 소련과 전쟁을 벌인 것도 레벤스라움에 대한 광신 때문이었다. 일본이 부르짖은 ‘대동아공영권’도 레벤스라움과 용어만 다를 뿐 내용은 비슷하다.
푸틴이 2014년 크름(크림) 반도를 점령하고 2022년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내세운 논리는 히틀러가 2차 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 체코를 점령할 때 레벤스라움 논리와 복사한 듯 닮았다. 게다가 1차 대전 이후의 베르사유 체제나, 냉전 이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유사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2023년이 섬뜩해지는 이유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2022) 감독: 크리스찬 슈뵈초브
출연: 조지 매카이, 제레미 아이언스,
야니스 니에브외너
로버트 해리스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
뮌헨 협정 막전막후 생생하게 포착
‘강한 군사력 뒷받침된 평화’ 교훈 전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년 전인 1938년 뮌헨 회담을 배경으로 영국과 독일의 조약 체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젊은 외교관의 모습을 그렸다. 사진=넷플릭스
1938년 뮌헨 회담에서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체코의 수데텐을 분리해 독일에 합병하기로 합의했다. 회담을 마치고 공항에서 협정서를 높이 들어 보이는 체임벌린 총리. 영화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일어났어야 하는 바를 말하는 것은 결코 역사가의 의무라 할 수 없다. 역사가의 유일한 의무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밝히는 것이다. 일어난 모든 일을 히틀러의 책임으로 돌리는 한 밝혀지는 것은 거의 없다.”('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A.J.P 테일러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영국 외교사의 ‘흑역사’ 뮌헨 협정
“누구나 얼굴을 크게 한 대 강타당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계획이란 걸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마이크 타이슨)
1938년,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이 그랬다. 그도 역시 계획이란 걸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이었다.
체임벌린은 어떻게든 전쟁을 막기 위해 히틀러의 계획된 도발을 달래기로 일관했다. 히틀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큰 전쟁’이 또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1938년 9월 29일부터 이틀간 뮌헨에서 독일,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정상이 만났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체임벌린과 달라디에가 돌파구를 찾기로 한 것이다. 체코의 영토지만 독일어권 지역인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양보함으로써 영국·프랑스와 독일 간 전쟁을 피하자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사실상 히틀러의 요구 사항을 모두 수용했다. 전쟁의 공포로 들끓던 영국과 프랑스 여론은 한숨 돌리는 분위기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체코의 안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영국·프랑스와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던 체코는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영토를 하루아침에 독일에 내주는 치욕을 당해야만 했다.
체코야 어찌 됐든 전쟁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한 체임벌린은 뮌헨 회담 협정서를 높이 들어 보이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체임벌린은 구제 불능의 낙관주의자였다. 귀국한 뒤에 다우닝가 10번가 발코니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라고 믿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평안히 주무십시오.”
히틀러의 약속은 불과 1년 뒤인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깨졌다. 체임벌린을 두고두고 웃음거리로 만든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체임벌린의 실패 이후 유화정책은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될 외교적 실패의 대명사가 됐다.
뮌헨 회담의 내밀한 이야기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2022)는 2017년 로버트 해리스의 베스트셀러 소설 '뮌헨'이 원작이다. 영화는 제목처럼 2차 대전의 문턱에 있었던 1938년 독일과 영국의 외교관 친구를 중심으로 뮌헨 협정의 막전 막후를 생생히 포착한다.
193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함께 어울렸던 영국인 레거트(조지 매카이)와 독일인 하르트만(야니스 니에브외너). 시간은 흘러 1938년, 영국의 런던과 독일의 베를린은 분위기가 험악하다.
독일이 주데텐란트를 노리는 와중에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영국 총리 체임벌린(제레미 아이언스)은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각국을 중재하게 한다. 총리 보좌관 레거트는 바쁘게 움직인다. 총리를 따라 독일로 건너간 레거트는 하르트만과 재회한다.
하르트만은 1937년 11월 5일 총통 관저에서의 회의록을 전하며 레가트를 설득한다. 후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공개되며 세상에 알려진 ‘호스바흐 메모’다. 두 친구는 의기투합해 뮌헨 회담에서 체임벌린이 서명하지 못하게 막으려 한다. 히틀러가 조만간 반드시 전쟁을 일으킬 걸 알고, 뮌헨 협정이 시간을 끌 뿐 히틀러의 야욕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이미 콩밭에 가 있는 체임벌린은 하르트만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낙담한 하르트만은 마지막 수단으로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는데….
실행의 성공과 실패가, 그래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는지 어쨌는지는 이 영화의 주안점이 아니다. 다만 영화는 뮌헨 회담이라는 정해진 역사의 큰 틀에서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미를 부여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당시 유럽의 정세는 현재적 의미가 있다. 평화를 위해 노력하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강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게 뮌헨 회담의 교훈이다.
히틀러 게르만 제국 건설 이념적 밑거름 된 ‘레벤스라움’<삶터>
환경 결정론자 레첼 제시 신조어
동유럽 식민지화 계획으로 발전
1945년 11월 20일,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군사재판.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서 온 4명의 판사로 구성된 국제군사재판에 기소된 피고는 헤르만 빌헬름 괴링을 비롯해 모두 24명이었다. 독일 정부, 친위대, 돌격대, 게슈타포도 범죄적 단체로 기소됐다.
이날 법정에는 ‘호스바흐 메모’라는 문서가 제출됐다. 히틀러의 부관이었던 프리드리히 호스바흐가 1937년 11월 5일에 열린 히틀러와 독일의 군부, 외교 지도자들 간의 회의를 정리한 것이었다. 히틀러의 침략 마스터플랜이었다.
주요 내용은 오스트리아와 체코의 독일인을 독일 정부의 관할 아래 두고, ‘동방 배후지’에 독일인의 ‘레벤스라움(Lebensraum)’을 만든다는 것. 레벤스라움은 1901년 독일 지리학자이자 환경 결정론자인 프리드리히 레첼이 제시한 신조어로 ‘주민들의 생활권’ 즉, 삶터를 의미했다. 그는 ‘영토를 넓혀 독일 민족이 살 공간을 마련해야만 아리아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방에 게르만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꿈이었던 히틀러에겐 레벤스라움은 이념적 밑거름이 됐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동쪽 땅을 구체적인 생활권으로 제시했다. ‘혈통이 깨끗하고 우수한 독일인은 중부 유럽에서 우랄산맥까지 지배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생각은 책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후 독일이 2차 대전 승전 시 동유럽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세운 계획인 ‘게네랄플란 오스트’로 발전했다. 여기에는 유럽에서 어떤 민족을 얼마나 제거하거나 추방할지, 그리고 남은 영토의 얼마를 독일화 할지 구체적인 수치를 담고 있다.
그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다. 참모들의 반대에도 히틀러가 소련과 전쟁을 벌인 것도 레벤스라움에 대한 광신 때문이었다. 일본이 부르짖은 ‘대동아공영권’도 레벤스라움과 용어만 다를 뿐 내용은 비슷하다.
푸틴이 2014년 크름(크림) 반도를 점령하고 2022년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내세운 논리는 히틀러가 2차 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 체코를 점령할 때 레벤스라움 논리와 복사한 듯 닮았다. 게다가 1차 대전 이후의 베르사유 체제나, 냉전 이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유사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2023년이 섬뜩해지는 이유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