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화랑탐방기

미술계의 외인촌…낯섦 받아들여 세계를 넓힌다

입력 2022. 12. 13   17:32
업데이트 2022. 12. 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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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컨템포러리
 
다양한 문화 접할 수 있는 이태원 위치
전시·북토크 등 열리는 복합문화공간
디렉터는 작가 발굴에 높은 안목 가져
미술·다른 장르 교류 ‘플랫폼’으로 활용
 

복합문화공간 G 컨템포러리 전경.
복합문화공간 G 컨템포러리 전경.

복합문화공간 G 컨템포러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우아한 식탁’.
복합문화공간 G 컨템포러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우아한 식탁’.

이태원은 외인촌(外人村)이다. 해밀톤호텔 앞 이태원길에는 내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아 보인다. 이태원에서는 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 음식을 현지 감각으로 먹을 수 있다. 온몸으로 낯선 외국의 감각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곳이 이태원이다.

이태원에서 명동으로 가려면 녹사평길로 꺾어서 남산 3호 터널을 지나야 한다. 녹사평길에서 남산터널로 향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꺾어 남산의 하얏트호텔로 올라가는 좁은 언덕길이 있다. 03번 마을버스가 다니는 회나무길이다. 호젓한 길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경리단길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지금은 그 열기가 다소 식어 보인다.

회나무길 입구에는 경리단이 있고, 경리단 맞은편에는 제일시장이 있다. 정육점·떡집이 있는 재래시장이다. 시장의 다른 골목에는 스탠딩바 형태의 마이크로브루어리 ‘맥파이’가 있다. 맥파이는 서울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마이크로브루어리의 하나다. 영어로 맥주를 주문해도 어색하지가 않다.

외인촌과 재래시장은 왠지 서로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모든 게 자연스럽다. 회나무길에는 가정을 이룬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이들과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내국인들의 묘한 공존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경리단과 하얏트호텔을 잇는 회나무길은 몇 발짝을 걸을 때마다 풍경이 일변한다. ‘엉터리 통닭집’ 같은 옛날식 통닭집이 있는가 하면 ‘마오’ 같은 신감각파 차이니즈 레스토랑도 있다. 피지공화국 대사관, 필리핀 대사관, 에티오피아 대사관이 이 길에 있어 풍경의 중량감을 더해준다. 좁은 지역이나 전 세계의 식당이 다 모인 듯하다. 이탈리아식당이 대세이나 필리핀식당도 돋보인다.

녹사평역·이태원역·한강진역 주변과 한남동 일부 지역을 다 묶어서 이태원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이태원은 유흥문화가 주도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태원은 미술관과 화랑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사립미술관인 리움미술관이 한강진역 근처에 있다. 최근 서울에는 ‘리만 머핀’ 등 외국계 유명 화랑들이 많이 진출했는데, 이들은 주로 강남과 이태원에 포진했다.

‘바젤아트페어 홍콩’의 탄생 이후 그동안 미술과 무관해 보이던 홍콩이 아시아 아트마켓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그러다가 최근 홍콩 정세가 급작스레 불안해지면서 포스트 홍콩이 물색됐는데, 동경·싱가포르 등을 제치고 서울이 선택됐다. 그래서 등장한 게 지난 9월에 기존의 ‘키아프’와 함께 개최된 ‘프리즈 서울’이다. 서울은 뉴욕·런던과 마찬가지로 이제 세계 아트마켓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이를 실감하려면 이태원으로 가면 된다. 프리즈가 열리는 동안 이태원 일대의 외국계 화랑에서는 밤마다 해외에서 온 미술계 인사들의 파티가 이어졌다.

이태원에는 국내 갤러리도 많다. 지금은 서촌으로 옮겼지만 ‘윌링 앤 딜링’도 2012년 회나무길에서 출발했다. 회나무길의 ‘휘슬갤러리’ ‘P 투 원’은 여전히 맹활약 중이다. 언덕길을 좀 더 올라가면 차이니즈 레스토랑 ‘마오’가 나타난다. 마오에서 좀 더 올라가면 길 오른편에 가야랑빌딩이 나타난다. 이 빌딩은 A동, B동으로 되어 있다. 두 동 사이로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린다. ‘G 컨템포러리’는 3층에 있다. 주소는 용산구 회나무로 66이다.

‘G 컨템포러리’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얼마 전까지 주된 일이 북토크, 인터뷰, 촬영, 브랜드 론칭 행사 등이었다. 지금은 갤러리 역할에 중점을 두고 아티스트 토크, 연주회, 와인 강의 등을 한다. 예컨대 차기율, 유용상, 윤지용, 황순일 등이 참여한 전시 ‘우아한 식탁’전과 함께 보르도 와인의 역사, 보르도 하위 지역별 와인 스타일과 레이블 읽기의 강의가 진행되고 시음회도 열렸다.

대부분의 갤러리는 화이트 큐브다. 하얀 벽으로 막힌 사각 공간이다. G 컨템포러리는 한쪽 벽이 완전히 트여 있다. 널따란 통유리창 너머 남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저녁놀 붉게 타는 남산을 바라보며 마시는 와인의 맛은 각별하다. 갤러리 바닥은 3단계로 높이가 다르다. 바닥이 전체적으로 편평한 일반적인 갤러리와 전혀 다른 공간감각을 느끼게 한다.

갤러리 문을 나오면 바로 앞에 이탈리아식당 ‘템팅 스팟’이 나타난다. 전시 오프닝의 스탠딩 파티가 끝나면 이 식당에서 2차가 이어진다. 템팅 스팟의 옥상은 루프톱이다. 루프톱에 오르면 갤러리 안에서 보던 남산과는 또 다른 모습의 남산이 나타난다. 봄에서 가을까지, 날씨가 좋은 날 루프톱의 와인 파티는 인기가 높다. 봄에는 봄대로 따뜻한 바람이, 여름에는 여름대로 시원한 바람이 삽상하다.

G 컨템포러리의 아트디렉터는 이은이다. 디렉터를 맡은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은은 홍익대와 동경예대를 나온 미술작가다.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연 중견 작가다. 갤러리의 대표가 되는 조건은 미술 전공 여부와 무관하다. 갤러리 운영 역시 일종의 경영이기 때문에 예술적 감각보다는 경영자의 감각과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미술 전공 출신들이 갤러리를 경영하는 경우도 많다. 미술사의 흐름을 잘 알고, 미술계에 지인들이 많아 전시 기획에 유리한 점이 있다.

이은 디렉터는 뛰어난 작가를 발굴하는 높은 안목을 가졌다. 이은 대표의 주변에는 훌륭한 작가들이 많다. 예컨대 지금 무한구체(無限球體)전을 하고 있는 신한철은 전쟁기념관 앞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조각인 6·25 상징조형물을 제작한, 대단한 역량의 작가다.

이들 작가들은 G 컨템포러리를 플랫폼으로 삼아 미술인들끼리 혹은 미술이 아닌 전혀 다른 장르의 사람들을 만나 교류한다. 과거의 살롱문화를 연상시키는 이 모임은 GAS(G Contemporary Society) 프로젝트라고 불린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겠지만 미술인들은 주로 미술인들끼리 뭉쳐서 산다. 그만큼 좁은 세상을 산다.

외인촌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곳이다. 이태원은 서울에서 낯선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외인촌이다. 낯섦을 받아들이면서 세계를 넓히는 곳이다. G 컨템포러리는 미술계의 외인촌이다. 낯선 사람, 낯선 장르를 만나는 곳이다. 그리고 세계를 넓히는 곳이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황인 미술평론가는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인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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