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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사의 현장을 찾아] 경희궁 방공호

이주형

입력 2022. 12. 06   16:21
업데이트 2022. 12. 0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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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사의 현장을 찾아
5 경희궁 방공호

일제의 야욕을 담은 역사의 아픔을 담은
 
서울 지하 비밀공간 3곳 중 하나
일제강점기 공습 대비한 대규모 공간
조선총독부 지휘본부·통신시설 구비
태평양전쟁 위한 통치시설 목적
일제 패망으로 쓰인 적은 없어
 
전시관으로 시민들에 공개하기도
“일제시대 박물관” “유물보관 수장고”
사용에 대한 의견은 갈려

 

방공호 2층에서 내려다본 1층의 모습. 방공호 내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방공호 2층에서 내려다본 1층의 모습. 방공호 내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왜애애앵’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며 붉은 불빛을 토해 낸다. 천장에는 서치라이트 조명과 폭격기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공습을 알리는 신호다. 긴박하게 대피를 재촉한다. 경희궁 방공호에 들어서서 맞닥뜨린 모습이다. 경희궁 방공호는 그동안 시민들에게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서울의 지하 비밀공간 3곳 중 하나로 2017년 10월 서울시가 공개했다. 일제강점기 말기였던 1944년 비행기 공습에 대비해 만들었다. 서울시는 이곳에 문화적 요소를 가미해 시민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방공호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글=이주형/사진=백승윤 기자

경희궁 방공호 전경. 1, 2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총면적 1378㎡(1층 1120㎡, 2층 258㎡)의 대규모 구조물이다.
경희궁 방공호 전경. 1, 2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총면적 1378㎡(1층 1120㎡, 2층 258㎡)의 대규모 구조물이다.


길이 110여 m 대규모 공간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한편에는 정체 모를 콘크리트 구조물이 자리하고 있다. 경희궁 산책길로 이어지는 계단 옆이다. 방공호는 여기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이곳은 경희궁 내 왕과 왕비의 침전인 융복전과 회상전이 있던 장소라고 한다.

방공호를 막고 있던 육중한 철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주위를 감싼다. 편의상 방공호라고 부르지만 내부 구조나 규모를 생각하면 절대로 일반적인 방공호라고 할 수 없다. 방공호는 원래 공습을 피할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내부에 별다른 편의시설이 없다. 하지만 이곳은 여러모로 달랐다.

샤워실과 화장실, 환기시설과 조명시설이 갖춰져 있다. 대형 모터를 설치할 수 있는 받침대도 있어 오랜 시간 머무르면서 업무 수행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 1층 복도. 길이가 무려 110여 m에 이른다. 한편으로 사무실로 보이는 방들이 줄지어 있다.
지하 1층 복도. 길이가 무려 110여 m에 이른다. 한편으로 사무실로 보이는 방들이 줄지어 있다.


조선군사령부의 통신시설 설치 목적

그러면 왜 여기에 방공호를 만들었을까? 통신선이 끊기더라도 전후방만이 아니라 일본 본토와도 통신이 가능케 해야 한다는 이유로 짐작된다. 실제로 방공호 건설을 주도했던 조선총독부 체신국(현 세종로 KT 본사 자리)에서 가까우면서도 안전하고, 또 통신전파를 쏘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지대가 높은 곳은 이곳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다 추측일 뿐이다. 이러한 방공호와 관련한 공식 기록은 현재로선 없다. 관련자 증언을 통해 대강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 2019년 5월 서울시 주관으로 ‘경희궁지 방공호 역사성 규명 심포지엄’이 열렸다.

박희용 서울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 자리에서 ‘근대기 경희궁의 변동과 일본 방공호 활용사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방공호는 1944년 1월 혹은 2월경 겨울철에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는 체신국이 주도해 갑자기 추진했으며, 그 목적은 전쟁이 심해지면서 조선군사령부의 통신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방공호 구축의 발파작업은 조선군사령부의 공병대가 했으며 방공호 위는 흙으로 덮었지만, 숭정전 쪽 3분의 2는 인왕산 바위를 깨서 채워 넣었다.

방공호가 부분적으로 2층 구조로 된 데는 땅을 파다가 바위가 나와 2단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또한 공사는 체신국 사람들이 주야 24시간 교대로 진행했고, 경성중 학생들이 동원됐다. 일부는 경복고 학생들도 동원됐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학생들은 부평의 조병창에 가서 일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경기·경성·성동·용산의 학생들도 포함됐다. 여학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경희궁 방공호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하고자 식민지에 위치할 최후의 통치시설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경희궁 터에 조선총독부 지휘본부와 핵심 통신시설을 두기 위해 본영을 구축하고자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방공호는 일제 패망으로 사실상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미디어아트 방. 3만 장의 관련 사진을 미디어아트로 구성해 전시해 놨다.
미디어아트 방. 3만 장의 관련 사진을 미디어아트로 구성해 전시해 놨다.

현재 비공개…박물관·수장고로 활용 논의

방공호가 있는 경희궁 터는 광복 후 서울중·고등학교로 쓰이다가 6·25전쟁 당시 군인들이 잠시 사용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1980년 6월 서울고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현대그룹에 매각됐다.

현대그룹은 이를 인력개발원이라는 현대그룹 사원연수원으로 이용하고자 28층의 건물을 세워 그룹 본사 겸 외국 바이어 전용호텔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경희궁이라는 장소의 역사성과 궁궐의 복원·보존이란 측면에서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고, 이를 받아들인 서울시는 1985년 공원 녹지 확보 차원에서 현대로부터 다시 재매입했다. 그리고 방공호 옆에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지어졌다.

경희궁 방공호는 그동안 활용할 방법이 없어 수십 년간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 왔다. 지금도 비공개시설이다. 물론 때에 따라 일제강점기부터 오랫동안 묻혀 있던 시절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전시관으로 간간이 시민들에게 공개되기도 했다. 올해도 서울역사박물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단기간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현재 방공호의 활용방안을 두고 두 가지 의견이 대두하고 있다. 하나는 일제의 수탈과 억압 등을 보여 주는 박물관 등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현대 역사 유물을 보관하는 수장고로 이용하는 방안이다. 이 중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사회 각계의 의견을 종합해 최선의 결정이 내려지길 바란다.


스위스대사관에도 방공호가 있다?


2019년 5월 서울 종로구 송월동에 주한 스위스대사관이 새로 개관하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대사관 측이 개관 전날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사관 투어행사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지하의 방공호가 개방되며 눈길을 끈 것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북한 핵 공격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방공호는 스위스 국내법상 의무시설이다.

스위스대사관은 스위스 땅이기 때문에 스위스 국내법이 적용된다. 따라서 북한의 위협에 상관없이 건축해야만 했다. 당시 대사관 관계자는 “스위스 민방위법은 건축물을 설계할 때 방공호 건축을 의무화하고 있다”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스위스대사관을 가도 방공호가 있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민방위법은 1963년 통과됐다. 당시는 각각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이 치열했던 시대였다. 이러한 환경에 맞춰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는 법령을 만들고 전시에 대비한 것이다. 그 결과 스위스에는 주민 거주지와 병원 등 공공시설에 약 30만 개의 방공호가 구축돼 있다고 한다.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
백승윤 기자 < sose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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