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알바하다 우연히 도슨트 시작
프랑스로 건너가 공부·자격증 딴 뒤
루브르·오르세 등 10년간 활동
“미술, 자신의 취향 찾는 것이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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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창용 지음/더블북 펴냄
최근 몇 년 사이 미술관을 찾거나 미술품을 소장하는 등 미술을 향유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도슨트’라는 용어도 익숙해졌다. 한때는 미술관의 작품을 관리·연구하거나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와 구분 없이 쓰이기도 했지만 이제 미술관을 찾는 관객 대부분은 ‘도슨트(전시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것인지, 시간은 몇 시인지 먼저 확인한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의 저자 이창용은 포털 프로필 직업란에 ‘도슨트’를 내걸고 이런 문화를 만드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시작은 정말 우연이었어요. 결국 운명이었던 거 같지만요.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이벤트 대행사에서 일했는데 신차 고객을 대상으로 미술관에 오면 설명을 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전문 도슨트가 있었고, 저는 안내만 맡았죠. 그런데 갑자기 도슨트가 일을 못 하게 됐고 겁도 없이 제가 한번 해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반응도 좋았고 무엇보다 너무 재밌었어요. 저는 로마사를 전공하던 학생이었는데 유학 갔다가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에서 바티칸서 도슨트로 일하는 형들을 만나게 됐죠. 그 후 본격적으로 그 일을 하게 됐어요.”
마치 언더스터디였던 배우의 성공 스토리처럼 짜릿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예술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에서조차 도슨트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곳은 없다 보니 지금까지 그는 늘 새로운 도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바티칸에서 2년 정도 있다가 한국에 돌아와 군 복무를 마치고 일반회사에 취업해 안정적인 직장인으로 생활하고 있었는데 ‘도슨트’ 할 때의 희열을 잊을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프랑스로 건너가 공부하고 자격증을 딴 뒤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에서 10년간 도슨트로 활동했습니다.”
이 책은 제목처럼 그가 10년간 현장에서 설명했던 내용을 현지에 가지 않고도 편안히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미술 기행서다. 그 안에 담긴 전문적인 지식과 풍성한 정보는 지금 당장 책 한 권만 들고 프랑스로 떠나도 손색없을 정도. ‘모나리자’가 왜 유명한지에 대해 구도, 기법, 다빈치의 해부학적 지식을 근거로 든다. 마네의 대표작 ‘풀밭 위의 점심’이 왜 프랑스 부르주아 남성들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인지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불리는 ‘칼레의 시민’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지를 두고 로댕이 왜 그토록 고민했는지 이유를 듣고 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밀레의 ‘만종’을 둘러싼 근거 없는 소문에 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이 미술 분야지만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는 낭설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아직 해외여행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루브르박물관은 최소 6시간은 할애해 보시길 바랍니다. 책에 쓰인 동선을 참고하시고요. 오르세미술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4시간 정도는 필요해요. 고전주의부터 후기인상주의 작품까지 빠짐없이 만나 보셔야 합니다. 지베르니정원과 오랑주리미술관에서는 모네가 마지막 인생 12년과 맞바꿔 선물한 삶의 여유와 위로를 느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리즈로 기획된(‘스페인·네덜란드 편’은 내년 봄 출간 예정) 책의 첫 여정을 프랑스로 정한 이유는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고 미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나라이기 때문이라면서 그들이 소유한 방대한 작품은 신선한 재료가 훌륭한 요리로 탄생하듯 멋진 전시공간(큐레이팅)을 가능하게 해 준다고 부러움을 내비쳤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미술관, 좋은 작품, 좋은 기획자들이 많지만 프랑스와 비교하면 빈약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건희 컬렉션은 하나의 큰 획을 긋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전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으니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도슨트란 직업 말고도 이창용의 포털 프로필에서 눈에 띄는 한 줄은 해군장교 출신이라는 것이다. 장기복무한 직업군인 출신도 아닌데 특이하다 싶었다.
“저한테는 무척 자랑스러운 경력이니까요. 원래 시력이 많이 안 좋아 부적격 판정을 받았는데, 당시 유행한 CF에 나오는 ‘꼭 가고 싶습니다’란 대사에 감명받아 라식수술을 받고 군에 갈 수 있게 됐어요. 이왕이면 장교로 복무하고 싶었고요. 해군을 선택한 이유는 창설자가 독립운동가여서고요.”
20~30명의 부대원을 통솔·관리한 경험이 도슨트라는 직업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그는 부대에서 불러 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어디든 찾아가 강의한다며 병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전했다.
“처음부터 미술이 좋아 미술관을 찾는 남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내 강의를 듣고 전역 후 여자친구와 전시를 찾았을 때 사진을 찍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림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다면 연애사, 인생사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음악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듯 미술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모든 음악이 내게 위로와 행복을 주진 않죠. 미술도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박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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