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화랑탐방기

‘부산 =형상회화’ 공식을 깨다

입력 2022. 11. 29   16:48
업데이트 2022. 11. 2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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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갤러리
 
한국 대표 단색화·미니멀 아트 전시
문화시설 몰려있는 해운대에 위치
건물 외부 간판 없어 찾기 쉽지 않아
전시작가 대부분 서울·대구 출신
부산 속 외인촌…외부와의 교류 선봉

 

‘이교준’전이 열리고 있는 데이트갤러리 전시장 모습. 형상회화가 주류를 이루는 부산에서 데이트갤러리는 고집스럽게 미니멀리스틱 아트와 미니멀 아트에 중점을 두고 전시회를 열어왔다.  필자 제공
‘이교준’전이 열리고 있는 데이트갤러리 전시장 모습. 형상회화가 주류를 이루는 부산에서 데이트갤러리는 고집스럽게 미니멀리스틱 아트와 미니멀 아트에 중점을 두고 전시회를 열어왔다. 필자 제공
부산 해운대해변로에 있는 데이트갤러리. 건물 바깥에 갤러리 간판이 없어 찾기가 쉽지 않다.  필자 제공
부산 해운대해변로에 있는 데이트갤러리. 건물 바깥에 갤러리 간판이 없어 찾기가 쉽지 않다. 필자 제공

한국 현대미술에서 서양화는 흔히 ‘물성회화’와 ‘형상회화’로 나뉜다. 형상과 물성은 함께 가는 일이 거의 없다. 물성회화는 단색화처럼 화면에 형태가 보이지 않는 대신, 반복적인 붓질 혹은 중첩적인 행위의 레이어(layer)가 보일 뿐이다. 이에 반해 형상회화는 구상적인 형태를 띤다. 현대미술을 잘 모르는 관람객도 이해하기가 쉽다.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은 감상과 이해가 쉬운 형상회화가 아니라 이해하기 힘든 물성회화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미술계에서는 1958년 현대미술가협회가 발족했던 시점을 한국 현대미술의 시점으로 잡고 있다. 이 전시에 참여한 박서보 등을 중심으로 해 이 땅에 앵포르멜(Informel·기하학적 추상을 거부하고 미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추상미술)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들은 나중에 단색화가로 변신해 지금까지도 현대미술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최근까지의 경향을 보면 서울은 물성회화, 부산은 형상회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단색화가 탄생할 무렵인 1970년 전후에 세계를 주도하던 미술은 미국의 미니멀 아트, 프랑스의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 Surfaces), 일본의 모노하(物派) 등이 있었다. 이때 단색화 화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미니멀 아트로 부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단색화, 모노하 등은 미니멀 아트가 아닌 미니멀리스틱 아트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형태적으로는 미니멀 아트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미학이 전혀 다른 미술이다. 미니멀 아트가 인식의 공간을 지향하는 미술이라면 모노하와 단색화는 지각의 장소를 영위하는 미술이다.

한국에서 미니멀리스틱 아트와 미니멀 아트의 작품이 전시되는 곳은 지역에서는 대구의 갤러리신라와 부산의 데이트갤러리 정도다. 대구는 서울과 함께 물성회화 중심으로 현대미술이 전개된 곳이다. 미니멀리스틱 아트인 물성회화는 미니멀 아트에 어느 정도 근접한 데가 있다. 이에 반해 부산은 일방적으로 형상회화가 중심이었던 곳이다.

미니멀 아트는 형상회화와 너무나 먼 지점에 있는 미술이다. 그런데 부산의 데이트갤러리는 고집스럽게도 미니멀리스틱 아트와 미니멀 아트에 중점을 두고 전시회를 열어왔다.

김경애 대표가 데이트갤러리의 문을 연 건 2009년이다. 단색화 최초의 전시인 일본 동경화랑의 ‘한국·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에 출품해 인기를 끌었던 이동엽(1946~2013)이 개관전 초대작가였다. 이동엽의 잔소리 하나 없는 말쑥한 화면은 데이트갤러리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듯했다. 구자현·권영우·김구림·김창열·김춘수·김택상·남춘모·박기원· 박서보·박영하·신사빈·신성희·윤형근·이건용·이수종·장승택·정상화·천광엽·최만린·최병소·최인수·허황·박종규·이교준·윤상렬·김근태·스테판보르다리에(STEPHANE BORDARIER)·팀 바빙턴(TIM BAVINGTON)·티모테 탈라드(TIMOTHEE TALARD) 그리고 박명래 등의 전시가 열렸다.

이들의 대부분은 한국을 대표하는 단색화, 미니멀 아트의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부산이라 하면 형상회화’라는 공식은 데이트갤러리에서 깨져버린다.

해운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선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해운대에는 문화시설들도 많다. 해운대의 초입이라 할 수도 있는 벡스코역에는 부산시립미술관과 이우환공간이 있다. 동백역의 고은사진미술관 옆에는 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가 있다. 고은사진미술관과 고은컨템포러리사진미술관, 토요타 포토 스페이스 등 사진미술관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곳은 해운대뿐이다. 동백역에서 해운대를 향하다 보면 동백섬 못 미처 부산 미술의 산 증인인 공간화랑이 나타난다. 여기서 해안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하얏트호텔에서 이름이 여러 번 바뀐 그랜드조선호텔이 나온다. 여기에는 ‘가나아트센터 부산’이 있다. 바로 이웃이 파라다이스호텔이다. 호텔 내부의 미술품 컬렉션이 웬만한 미술관보다 더 나을 정도로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이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해운대의 중심지역이다. 데이트갤러리는 해운대해변로 298번 길에 있다. 파라다이스호텔 맞은편 건물의 2층이다. 건물 바깥에 갤러리 간판이 없다. 안내하는 작은 글씨가 2층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주변에는 대형화랑인 조현갤러리가 있다. 여기서 달맞이 고개로 넘어가면 크고 작은 화랑들이 산재해 있다.

데이트갤러리는 바닷가 바로 앞의 팔레드시즈 빌딩 속에 있다가 몇 년 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팔레드시즈의 1층은 관광객을 위한 상가가 많다. 여름이면 서울의 연예인들이 해운대로 내려와 수영복 차림으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이 상가의 바에서는 흔하게 볼 수가 있다. 해운대는 서울의 강남 못지않게 화려하고 세련된 곳이다.

데이트갤러리의 전시작품들도 매우 세련됐다. 뉴욕쯤 가야 볼 수 있는 감각의 작품들이다. 부산은 해양도시답게 소통이 활발한 개방적인 도시이지만, 미술만큼은 형상미술로 닫혀 있는 도시였다. 담힘을 열림으로 변모시킨 화랑이 데이트갤러리다. 데이트갤러리의 전시작가 중에는 부산 출신 작가가 거의 없다. 전시의 오프닝 파티에도 부산의 미술인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참석자는 대부분 서울, 대구 작가들이다. 이런 점에서 데이트갤러리는 부산 속의 외인촌이다. 오프닝 파티에 말차가 나오는 것이 특이하다. 참가자 모두에게 정신의 순도를 높이려는 뜻으로 보인다.

문화는 교류를 통해 성장한다. 한국의 단색화가 일본과의 인적교류를 통해 아예 전시부터 일본에서 출발했듯, 부산도 외부와의 더 적극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데이트갤러리가 그 선봉이다. 부산비엔날레를 통해 부산의 미술인들은 국내, 해외와의 소통이 활발해졌다. 그런데도 미니멀 아트, 미니멀리스틱 아트에는 아직까지 소극적이다. 국내의 미술인들은 물론 해외의 작가들이 다 데이트갤러리에서 만나 서로 소통할 때가 됐다.

데이트갤러리는 미포와 가깝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미포에는 횟집이 많다. 전시 오프닝의 2차로 가는 가빈횟집의 잡어회는 서울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박력과 싱싱함이 있다. 밤바다의 짭조름한 해풍이 맛을 증폭시킨다. 데이트갤러리에서 고양된 정신에다 횟집의 미식으로 육신의 즐거움을 더한다. 이게 부산의 매력이다.


필자 황인 미술평론가는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인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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