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가 있는 풍경] 주방 후드

입력 2022. 11. 24   16:11
업데이트 2022. 11. 2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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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화 시인
이연화 시인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에

무허가 입주민이 산다

주소 이전도 하지 않고

새끼 낳고 살고 있다



잘 자라서 떠난 새끼

엄마 대신 와

허락도 없이 또 새끼를 낳았다



이듬해 그 이듬해 또 그 이듬해

어김없이 들려오는 밥 달라 보채는 소리

아기들 놀랄세라

집주인은 숨죽여 산다



저걸 막아야지

저걸 떼버려야지 하면서

오 년이 흘렀다



올해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귀한 생명의 소리



아무래도 저건 참새네로

나눔 해 줘야겠다





<시 감상>

좋은 시는 사물의 본질에 있으므로 독특한 사건이나 풍경, 기발한 착상이나 표현만으로 그것을 온전히 끌어낼 수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치는 일상사를 관심과 애정으로 깊이 들여다보고 성찰하면, 그곳에서 삶의 진실과 좋은 시를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이연화 시인이 심상(尋常)한 일상사에서 찾아 가다듬어 전하는 심상(心象·이미지)의 고요함과 따사로움처럼.

시인은 경계를 그어 구별 짓기와 편견으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시류의 내면을 깊이 들여보며 삶의 본질을 발견하고 노래한다. 엄마, 그 엄마의 엄마로부터 오랫동안 공존하며 살아왔고, 또 ‘이듬해 그 이듬해 또 그 이듬해’를 함께 살아갈 공존의 영속성에 대한 소망의 소리다. 오랫동안 한 자리를 내어주고 가진 것을 나눔하며 살아가는 것은 생명 사랑과 맞닿아 있어서, 공존을 위한 나눔은 곧 생명 사랑을 실천하는 전언의 울림으로 전해진다.

공존의 세상에서 생명을 지키고 유전하는 세상은 평화롭다. 참새가 ‘보채는 소리’에 ‘아무래도 저건 참새네로/나눔 해 줘야겠다’고 말하는 일상의 대화가 잠언처럼 들려오고, 그것을 전하는 일상의 언어가 빛난다.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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