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전쟁과 영화

조선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네덜란드엔 로이테르 제독이 있었다

입력 2022. 11. 09   16:59
업데이트 2022. 11. 09   17:16
0 댓글

전쟁과 영화 - 제독: 미힐 드 로이테르(2015)
감독: 로엘 르네
출연: 찰스 댄스, 룻거 하우어, 다니엘 브로클린뱅크

 
민첩한 포 장착·풍향 맞는 전술 운용
잉글랜드와 해상 무역로 전쟁서 승리
인기에 위협 느낀 왕자 음모로 전사

 

 영화 ‘제독: 미힐 드 로이테르’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갈등, 위기를 타개하는 능력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 ‘명량’과 닮아 있다.  필자 제공
영화 ‘제독: 미힐 드 로이테르’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갈등, 위기를 타개하는 능력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 ‘명량’과 닮아 있다. 필자 제공

“네덜란드와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정치·군사적 힘을 곧바로 잉여 수취에 쓰기보다는 새로운 교환 체제를 구축하는 데 사용했다. 낯선 세계를 뚫고 들어갈 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사용했다. 그것은 곧 국가 권력과 자본이 적절하게 결합했음을 의미한다.”(『바다 인류』, 주경철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작은 향신료 알갱이가 바꾼 세계사

대서양 무역을 제패한 스페인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신대륙에서 유입된 대량의 금과 은이 인플레이션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약해진 틈을 타 독립한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에 진출했다. 16세기 중반 북유럽에는 소빙하기가 닥쳐 발트해가 얼어붙었다. 이 때문에 발트해 청어가 대거 북해로 이동하면서 네덜란드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기후 변화의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의 보유 선박 수는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독일의 배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였다. 네덜란드가 해상 무역을 제패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강자 포르투갈과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강력한 조선업, 우수한 경제 제도, 발전한 금융산업 덕분에 네덜란드는 포르투갈을 제칠 수 있었다.

당시 향료 무역은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줬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네덜란드는 1602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벤처캐피털의 원조다.

시기는 영국의 동인도회사보다 2년 늦었지만, 자본금은 5배나 컸다. 경쟁국에 맞서기 위해 군사, 행정 같은 특권도 부여했다.

네덜란드의 패권 또한 지속하지는 못했다. 높은 대외무역 의존도, 단일한 산업구조, 튤립 파동은 네덜란드가 외부 변화에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주었다.

마침내 최후의 날은 왔다. 청교도 혁명을 성공시키고 호국경이 된 잉글랜드 올리버 크롬웰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1651년 영국은 항해 조례(Navigation Act)를 공포했다.

‘잉글랜드 최우선’을 표방한 조례는 잉글랜드와 그 식민지로 수출품을 싣고 오는 건 오직 잉글랜드 배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네덜란드 선박이 영국 해협을 건너지 못하게 해, 해상을 장악하려는 의도였다. 조례 이후 잉글랜드와 네덜란드는 세 차례의 전쟁을 치렀다. ‘영란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치열한 투쟁은 세계 역사상 첫 무역 전쟁으로 기록된다.


네덜란드판 이순신 장군, 미힐 드 로이테르

강직한 군인인 동시에 셈 빠른 상인. 너무나도 극적이고 격정적인 인물. 비극의 주인공. 네덜란드의 천재 해군 제독.

대략 이런 말들이 미힐 드 로이테르를 표현할 때 동원할 수 있는 표제어다. 그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네덜란드 국민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의 위대함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시기했던 몇몇 정치인들만 빼고. 로이테르의 죽음은 유럽 전쟁사 중에서 그 어떤 영웅의 최후보다도 끊임없이 후대를 매료시킨다.

전쟁과 군인으로 사는 삶이 이보다 더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예도 드물다.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해상 무역로를 두고 벌어진 전쟁을 그린 영화 ‘제독: 미힐 드 로이테르’(2015)는 그의 일대기를 복원한다. 전쟁이 터지자 미힐 드 로이테르(다니엘 브로클린뱅크)는 참전 요청을 받는다. 은퇴했던 그는 전투선 증선과 선원들의 임금 인상을 조건으로 복귀한다. 그는 효과적인 신호체계를 만들어 전투 중 혼란을 최소화하고, 함선 이동과 포 장착을 민첩하게 만드는 훈련에 집중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향에 맞는 전술 운용은 그가 얼마나 탁월한 지휘관이었는지 보여준다.

네덜란드 해군이 안개 낀 새벽 잉글랜드군의 심장부 메드웨이를 기습한 전투는 백미다. 정박해 있던 잉글랜드 선박을 불태워 버리고 템스강 하구를 봉쇄한 것.

이 전투는 오늘날까지 영국 해군에게 최악의 참사로 평가받는다. 여기서 로이테르는 한술 더 뜬다.

잉글랜드 해군 기함이던 로열 찰스호를 포획해 네덜란드로 끌고 와 치욕을 안긴 것. 로열 찰스는 바로 당시 잉글랜드 국왕이었던 찰스 2세를 의미한다.

자신들의 수도 코앞에서 네덜란드 함선이 활개 치는 것을 본 잉글랜드 국민의 충격과 공포는 대단했다. 결국, 잉글랜드는 수치스러운 평화 조약을 체결한다.

이처럼 혁혁한 공을 세우자 로이테르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는다. 위협을 느낀 네덜란드 왕자 빌럼 판 오라녜는 가족을 볼모로 잡고, 그를 사지로 밀어 넣는데….

그런 그에게 주어진 군함도 마침 12척이었다. 로이테르의 죽음과 함께 네덜란드의 황금기도 서서히 막을 내린다. 국고가 바닥난 두 나라는 결국 타협한다.

네덜란드는 풍부한 육두구로 가득한 인도네시아의 반다제도 런섬과 남아메리카 수리남을 확실하게 차지하는 대신 잉글랜드는 멀리 신대륙의 조그마한 섬을 받는 협정에 조인한다.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그 섬은 맨해튼이다.


뉴욕 맨해튼과 바꾼 향신료 육두구


현재 뉴욕 맨해튼인 ‘뉴 암스테르담’의 1660년 지도. 사진=위키피디아
현재 뉴욕 맨해튼인 ‘뉴 암스테르담’의 1660년 지도. 사진=위키피디아


사향 냄새나는 호두…금값보다 비싸
네덜란드, 뉴욕 내주고 반다제도 소유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의 미각을 잃게 한 음식을 기억하는가. 드라마 스토리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설정이지만 바로 육두구(너트메그·Nutmeg)라는 향신료였다.

인도네시아 반다제도가 원산지인 육두구는 ‘사향 냄새 나는 호두’라는 뜻이다.

향신료는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 역사적으로 주목받은 ‘4대 향신료’는 후추, 계피, 정향, 육두구다. 후추와 계피는 지금은 흔하지만, 정향과 육두구는 아직도 낯설다.

정향은 향신료 중 유일하게 꽃봉오리에서 얻는데 꽃봉오리의 생김새가 한자 ‘丁(정)’자를 연상시켜 붙여진 이름이다. 치약 대용으로도 쓰였다.

4대 향신료가 비싼 이유는 원산지가 유럽과 너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당시 육두구는 인도네시아 반다제도의 화산토에서만 자랐다. 베블렌 효과도 작용했다. 유럽인들에게 향신료는 ‘부의 상징’이었다. 명품처럼 자신의 부를 마음껏 과시할 수 있는 값비싼 사치품이었다. 당시 후추·계피를 금값에 비유했지만, 정향과 육두구는 그보다 10배 더 비쌌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는 최악의 협상 실수(?)를 저지른다. 육두구 산지 반다제도와 사탕수수 산지 수리남의 소유권을 인정받는 대신 뉴욕을 영국에 내준 것.

당시엔 두 곳의 경제적 가치가 더 높았겠지만, 승전국 네덜란드가 뉴욕을 포기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네덜란드가 스페인·포르투갈보다 후발주자임에도 향신료 제도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지독한 비즈니스 마인드 때문이었다.

네덜란드는 선교 따위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향신료 가격을 후려치고, 반발하면 잔인하게 탄압했다. ‘더치 골든 에이지’의 이면엔 수탈당한 아시아의 살풍경이 있었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