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화랑탐방기

전시 작품 관통하는 키워드 ‘본질’과 ‘참신’

입력 2022. 10. 11   16:33
업데이트 2022. 10. 1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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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다, 품다, 화랑탐방기 - 피비갤러리
미술계 경력 탄탄히 쌓은 김혜경 대표
2017년 문 열고 단기에 실력 인정받아

상이한 작업 하는 두 작가 연결 시도
줄리안 오피展 등 외부 전시 기획도

한국형 팝아트 물꼬 튼 이동기 작가와
제이홉 음원 커버 아트워크 작업 참여도

 

피비갤러리에서 현재 전시가 진행 중인 ‘몸짓하는 표면들(The Gesture of Image)’.  필자 제공
피비갤러리에서 현재 전시가 진행 중인 ‘몸짓하는 표면들(The Gesture of Image)’. 필자 제공
피비갤러리 전경.  필자 제공
피비갤러리 전경. 필자 제공

삼청로는 북향하다 동쪽에서 뻗어온 북촌로를 만나 삼거리가 된다. 다시 북촌로를 따라 동진하다 보면 길 오른쪽 골목 안에 피비갤러리가 나타난다.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125-6. 여기서 더 올라가면 베트남대사관과 삼청동우체국이 나오고, 인사동에서 성균관대 후문까지 가는 종로 02번 마을버스가 정차하는 고갯마루에 이른다.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많지 않은 호젓한 길이다. 삼청기차박물관, 부엉이박물관 등 자그마한 박물관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비갤러리의 건물은 매우 커 보인다. 갤러리 정면은 진회색 전돌과 노출콘크리트의 조합으로 된 단정한 공간이다. 길에서 몇 계단을 내려가면 내부가 드러난다. 군더더기 없이 넓고 시원한 공간이다.

2017년에 문을 연 피비갤러리는 신생 갤러리로 짧은 기간에 실력을 인정받았다. 김혜경 대표는 오랫동안 미술계에서 전문 경력을 쌓은 후에 화랑 문을 열었다. 경북대 미대,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수학했다. 브루클린미술관의 판화·드로잉·사진 분과에서 2년간 프로젝트 어시스턴트로 경험을 쌓았다. 그는 10년 가까이 대구와 서울에 전시장을 둔 리안갤러리의 수석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대구 미술계에는 미술대학의 역사가 깊은 계명대 출신들이 많다. 뒤이어 미술대학을 연 영남대도 경쟁하듯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경북대 미대는 역사가 짧다. 짧은 역사가 무색하리만큼 안미희 경기도미술관장, 김석모 강릉솔올미술관장, 김혜경 피비갤러리 대표 등 쟁쟁한 인물들이 미술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서울에는 대구 출신이 운영하는 화랑들이 많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랑의 하나인 조선화랑을 비롯하여 표갤러리, 갤러리포커스, 리안갤러리, 갤러리피앤씨 등의 대표가 대구 출신이다. 한국화랑협회장도 조선화랑의 권상릉, 대구 맥향화랑의 김태수, 표갤러리의 표미선 등 대구 출신들이 맡았다. 최근에는 대구의 갤러리신라가 삼청동에 분관을 만들었다.

대구를 본향으로 둔 갤러리가 서울에 많은 건 작가, 컬렉터 등의 인프라를 일찍부터 탄탄하게 다졌던 대구의 미술문화 덕분이다. 1970년대에 있었던 대구현대미술제를 통해 대구의 미술계는 미술을 보는 안목과 수준을 높였다. 해외미술에 대한 정보 교류도 다른 지역에 비해서 왕성하다. 미술대학의 숫자도 많지만 1980년대 이후 해외로 미술 유학을 간 유학생의 숫자 또한 서울 다음으로 많다. 미술 컬렉터들의 수준도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높다. 이런 환경들이 겹쳐서 대구는 계속 훌륭한 작가, 갤러리를 배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서울에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도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는 곳이 피비갤러리다.

피비갤러리의 주요작가는 이교준, 이동기, 이명미, 함양아, 안경수, 이정배, 전명은, 김희영, 성낙희, 이은선, 이종건, 정승혜, 국동완 등이다. 이교준, 이명미는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에서 활동했던 작가다. 이동기는 한국형 팝아트의 물꼬를 튼 작가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강동주, 로와정, 윤지영, 이혜인, 전명은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 ‘몸짓하는 표면들(The Gesture of Image)’이다. 피비갤러리는 이명미, 이교준 등 원로부터 신진까지 다 아우르는 다양한 컬러의 전시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피비갤러리에 가면 수많은 전시를 관통하는 일관된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의 근원은 어느 인터뷰에서 김혜경 대표가 밝혔듯 ‘본질’과 ‘참신’이다.

예컨대 이교준 같은 경우는 대중의 이해를 받기 힘든 ‘본질’적인 작가다. 본질을 추구해야 할 미술관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지독한 본질’을 추구한 작가다. 올해 대구미술관에서 올해의 다티스트 작가로 개인전 ‘라티오’전을 열었다. 미술관이 늦게서야 그의 진가를 인정했던 것이다. 피비갤러리의 김혜경 대표는 일찍 그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혜경 대표는 이미 성공한 작가들, 특히 국내의 컬렉터들이 즐겨 찾는 해외작가들을 소개하는 일보다는 당장에 인기가 덜 하더라도 이교준처럼 잠재력을 숨기고 있는 본질적인 작가를 찾아, 이를 프로모션해 꽃 피우는 일을 더 좋아한다.

이명미는 연령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참신’한 화가다. 아토마우스로 한국적 팝아트를 개척한 이동기는 참신함 그 자체다. 국내에서 최초로 만화 이미지를 작품에 본격적으로 등장시킨 작가다.

2018년부터 피비갤러리는 서로 상이한 작업을 하는 두 작가를 연결해 보는 ‘피비_링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2022년에는 장숙경, 전경표의 ‘피비_링크: 에코드 오브젝트’전이 열렸다. 장숙경, 전경표는 대구의 굿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서울과 대구의 화랑끼리의 교류전이기도 한 셈이다.

피비갤러리는 외부 전시의 기획도 많이 한다. 2017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개관 2주년을 기념해 세계적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현대미술작가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국내 국·공립 미술관에서는 처음 소개하는 줄리안 오피의 대규모 개인전이었다. 이 전시에서 피비갤러리는 전시 기여자(exhibition contributor) 역할을 했다. 2018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알렉스 카츠(Alex Katz)전에서는 김혜경 대표가 공동 큐레이터를 맡았다. 이 전시는 상하이 포선아트센터로 이어졌다.

방탄소년단의 제이홉이 2019년 9월 27일 발표한 음원 ‘치킨 누들 스프(Chicken Noodle Soup)’의 커버 아트워크 작업에 이동기 작가와 피비갤러리가 함께 참여하였다. 이 커버 아트워크 작업은 평소 이동기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많았던 제이홉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 대중 뮤지션과 미술작가의 협업을 피비갤러리는 시도하고 또 구현해내고 있다.

삼청동의 조용하고 호젓한 골목 속에서 그 어떤 화랑보다도 더 맹렬하게 바쁜 피비갤러리다.


필자 황인 미술평론가는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인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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