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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남자친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평범한 일상에 끼어든 오류

입력 2022. 10. 11   16:34
업데이트 2022. 10. 1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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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부산국제영화제(부국제)’서 만난 ‘글리치’와 전여빈
부국제의 가장 큰 변화는 OTT 약진
글리치 넷플릭스 공개 전 1~4회 상영
외계인이 보이는 전여빈과
외계인 추적해온 나나의 버디물
어드벤처·SF 등 여러 장르 버무려져
전여빈 연기 보는 것만으로 가치 충분

 
‘글리치’의 한 장면.
‘글리치’의 한 장면.

부산에 다녀왔다. 지난 5일 개막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부국제·BIFF)’를 핑계로 국내외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들과 마주하고, 잔뜩 쌓아 둔 수다를 풀어내기 위해서다. 부산 해운대 바닷바람을 맞으며 술집과 술집을 부지런히 옮겨 다닌 덕에 오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코로나19로 무려 3년 만에 ‘완전히’ 정상 개최된 ‘부국제’는 예전의 활기를 조금은 되찾은 분위기가 역력했다. 숙소에 돌아갈 때마다 두껍게 얹히는 알록달록한 명함의 산이 그것을 증명했다.

부활한 ‘부국제’의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역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약진이 아닐까 싶다. 당초 극장 개봉작 외 작품들은 입성하지 못했던 ‘부국제’에 지난해 3편, 그리고 올해는 9편의 OTT 신작을 선보이며 그 변화를 피부로 실감케 했다. 부산에서 만난 배우나 업계 관계자 모두 “OTT 입지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가 아닌 BIOF(Busan International OTT Festival)라는 이야기도 들려올 정도다. 현장 공식 일정이나 참여형 프로모션 공간도 OTT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지난 7일 비공개로 개최된 ‘티빙의 밤’은 수많은 관계자가 방문하며 성황을 이뤘다. 이는 코로나19로 제작 및 개봉 영화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그 반대급부로 관객과 자본이 구독형 OTT로 옮겨 가 양질의 콘텐츠가 생성됐기 때문이다.

‘부국제’를 통해 공개된 OTT 신작 중 하나가 바로 넷플릭스 10부작 시리즈 ‘글리치’다. ‘글리치’는 외계인이 보이는 지효(전여빈)와 외계인을 추적해 온 보라(나나)가 흔적 없이 사라진 지효의 남자친구 행방을 쫓으며 ‘미확인’ 미스터리의 실체에 다가서는 4차원 그 이상의 추적극이다. 특히 ‘글리치’의 주연배우 전여빈이 이번 영화제의 개막식 사회자로 나선 덕분에 그 관심도와 주목도가 더 높았다. 넷플릭스 공개 하루 앞서 1~4회 상영과 GV 개최 등이 진행됐고 배우 전여빈·류경수, 노덕 감독, 진한새 작가가 참석해 관객의 궁금증에 답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전여빈은 “1부보다 2부, 2부보다 3부가 더 재미있다.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시청을 당부했다. 전여빈의 애정이 묻어나는 영업에 ‘부국제’가 한창 진행 중인 시기, 숙소에서 ‘글리치’ 정주행에 성공한 이도 적잖게 존재했다.

‘글리치’는 나름의 집중을 요하는 작품이다. 한 줄의 소개 문구만 듣고 내용을 지레짐작하면 시청하는 도중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 “여러 장르를 오간다”는 노덕 감독의 설명을 단단히 곱씹을 필요도 있다. 전여빈과 나나가 차지게 호흡하는 ‘버디물’, 의문의 상황들이 야기하는 ‘미스터리’, 주어진 미션을 해결해 가는 ‘어드벤처’, 그리고 작품 전반을 감싸는 ‘공상과학(SF)’이 적절하게 버무려진다. ‘글리치’라는 단어는 ‘불필요한 부분에 발생하는 노이즈 펄스로 인해 일어나는 컴퓨터의 일시적인 오작동’을 의미하는데, 작품 속에서 지효가 겪는 컴퓨터 화면 오류나 이상한 영상들의 랜덤 송출 등이 이러한 현상을 대표한다. ‘글리치’를 집필한 진한새 작가는 이와 관련해 “지효 인생도 어떻게 보면 잘 돌아가다가 한순간 오류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로 ‘글리치’의 중의성을 언급했다.

타인에게는 아주 정상적으로 보이는 한 개인의 삶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또렷하게 기억되거나 반대로 완전히 잊힌 과거의 불완전한 기억의 숲을 헤집고 헤매는 지효를 뒤따르게 한다. 어쩌면 그저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도 어떤 계기나 각성으로 지효와 같은 일을 겪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탈의 욕구가 자극되기도 한다. 언젠가 뉴스 기사에서 봤음 직한 여러 의문의 사건 속에 숨겨진 뒷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음을 상상하기도 한다. ‘글리치’는 기존에 흔히 보지 못한 형태로 전개된다. 영화 ‘연애의 온도’ 노덕 감독, 시리즈 ‘인간수업’ 진한새 작가의 호흡이 전여빈·나나와 어우러지며 한국에서 쉬이 경험하지 못한 작품을 탄생시킨 것은 확실하다. 다만 작품의 재미나 완성도가 탁월하냐고 묻는다면, 머뭇거리게 된다. 익숙지 않고, 친절하지 않아 대중적 호응을 얻기에는 난도가 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무한한 신뢰를 자아낸 전여빈의 연기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여빈이라는 배우의 연기를 집중해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글리치’의 가치는 충분하다. 전여빈 배우의 연기를 처음으로 봤던 것도 과거 ‘부국제’ 현장이다. 2017년 개최된 ‘제22회 부국제’에서 ‘뉴 커런츠상’을 받으며 신인 감독 김의석과 신인 배우 전여빈을 모두에게 알린 영화 ‘죄 많은 소녀’는, 그해 부산에서 감상한 작품 중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작품이다. 대중에게 익숙지 않던 전여빈은 이후 5년 만에 개막식 사회자로 나설 만큼 높은 인지도를 거머쥔 배우로 성장했다. 5년이라는 시간, 전여빈의 연기는 영역이 확장됐고, 자유로워졌으며, 생명력이 훨씬 더 짙어졌다. 다시 5년 뒤, 그러니깐 오는 2027년 ‘제32회 부국제’ 때 부산에 내려간다면 그곳에서 전여빈 배우의 또 다른 성장을 마주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조금 느릿하더라도 밀도가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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