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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모 무게에 절로 떨어지는 고개, 땀에 젖은 양말로 습한 군화, 군장에 눌리는 어깨,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길이 지금까지 내가 겪은 행군의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행군 날짜가 정해지자 역시 걱정과 불안,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우리의 걱정에도 시간은 흐르고 행군 날은 다가왔다.
이번에 새로 시도한 미션 행군은 일반적인 행군과 달리 처음 접해 보는 데다 언뜻 듣기에도 쉽지 않아 보여 평소보다 더 큰 걱정과 불안감이 동반됐다. 물론 순위권에 드는 팀에는 꽤 큰 포상휴가가 걸려 있어 몇몇은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션 행군은 지정된 지점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성공하면 다음 지점으로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경쟁형 행군이다. 미션 행군은 4개의 코스로 이뤄졌고, 도착점에 어떤 팀이 먼저 도착하는지를 겨뤘다. 간부·용사가 한 팀이 돼 진행한 행군은 코스별로 정신전력·화생방 퀴즈 등의 관문이 있었고, 이를 통과하면 팀당 할당된 군장 개수를 줄일 수 있었다.
우리 팀의 슬로건은 ‘몸만 건강히 복귀하자’였다. 물론 포상휴가가 간절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보다는 전우들과 함께 천천히, 조금은 느리게 달과 별들 아래서 걸어 보는 기회를 택했다.
지금 와서 떠올려 보면 정말 어려웠던 행군이었다. 총과 군장은 어깨를 짓누르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길은 포기를 재촉하는 것 같았다. 해는 진작에 산을 넘어가 칠흑 같은 어둠만 깔려 시야 확보에 애를 먹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옆에서 묵묵히 라이트를 비춰 주며 걷고 있는 팀원들을 보며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었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등장하는 휴식지점 덕에 완주할 수 있었다.
미션을 수행하며 통과했다는 기쁨과 가벼워진 몸은 우리의 사기를 북돋우고, 계속된 산길에 지친 몸과 마음은 휴식지점에서의 달콤한 화채와 샌드위치로 달랬다.
도착과 함께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며 서로가 고생했다고 격려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완주하려고 함께한 과정 자체가 뜻깊었다.
팀원이 아닌 사람과도 함께 ‘할 수 있다’고 격려하며 도와주고 완주하려는 모습은 큰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이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 피로를 풀어준 음식 등은 내 삶에서 간간이 꺼내 볼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행군 시작과 동시에 처음부터 의욕에 불타올라 눈 깜짝할 새 사라진 팀이 있는가 하면, 우리 팀처럼 완주를 목표로 자연을 벗 삼아 느긋하게 진행하는 팀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지 않았던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우리는 비록 느렸지만, 그날 미션 행군에 참여한 모든 인원이 출발점부터 도착점까지 자신의 발자국과 땀방울을 남겼다. 그거면 됐다. 그거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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