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조카가 쓴 ‘행록’에 자세한 특징
1795년 발행 귀선도설 내부 구조 기록
갑판 위 중앙부에 부분적 상갑판 추정
총 길이 24.3m 중량 107톤 규모 제작
현자 총통 발사 가능한 형태 용두 설치
1980년 첫 건조 후 축적된 연구 반영
거북선(龜船·귀선)은 조선 태종 때 처음 등장했으나 실전 배치되지는 못했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에 의해 비로소 실전에 쓰이도록 건조됐다. 임진왜란 시기 운용된 거북선의 특징은 임진년(1592년) 이순신의 장계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에 간략한 내용이 있고,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芬, 1566~1619년)이 쓴 이순신 ‘행록(行錄)’에 약간 더 상세한 내용이 있다. 이분은 여러 차례 통제영(한산도)에 가서 거북선을 관찰할 수 있었으므로 장계 못지않게 신뢰성이 높은 자료다.
임진왜란기 거북선의 부족한 내용을 보완해주는 것이 1795년 발행된 『이충무공전서』 권수(卷首) 도설(圖說·이하 귀선도설)이다. 귀선도설에는 당시 통영에 있었던 통제영 귀선과 여수에 있었던 전라좌수영 귀선의 그림을 수록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기록했다.
다만 귀선도설은 임진왜란 200년 이후 자료로, 조선 수군의 군선에 조총이 보편화된 시기 거북선이므로 임진왜란기 거북선과는 형태상 차이가 있다. 저판 길이, 곧 선체 크기가 50자에서 68.4자로 증대됐다. 선수 용머리의 함포 발사 구조가 연기 분출 구조로 바뀌며, 개판의 쇠못이 사라지고, 선미 거북꼬리와 그 아래 포혈이 없어졌다. 특히 조총 도입에 따라 포혈 개수가 증가했다.
내부 구조는 2층설과 3층설 논쟁이 지속돼 왔다. 거북선을 처음 연구한 언더우드는 귀선도설의 통제영 귀선을 임진왜란 때 사용하던 것으로 판단하고, 통제영 귀선의 형태·제원을 고찰해 2층 구조의 거북선 중앙 단면도를 1934년 발표했다. 이후 김재근이 언더우드와 대동소이한 2층 구조의 거북선을 1974년 발표했다. 이처럼 언더우드와 김재근은 귀선도설의 그림을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과 같은 것으로 판단했고, 내부를 2층 구조로 해석했다.
그러나 귀선도설의 통제영 귀선과 전라좌수영 귀선 개판에 그려진 포혈은 2층의 갑판(포판)에서는 절대로 화기·활 등을 운용할 수 없는 높이에 있다. 따라서 거북선 내부에 2층 갑판과 구분된 별도 구조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임진왜란기 거북선은 이충무공 장계 ‘당포파왜병장’에 “…용머리에서 현자 철환을 치쏘았습니다”라고 명확하게 기록돼 있고, 용머리의 위치는 개판의 높이(2층 이상 높이)와 같으므로 내부에서 현자 총통을 운용하기 위한 별도의 구조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
|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