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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430주년, 그때 그 거북선을 만난다] 해군사관학교 임진왜란기 거북선, 어떻게 만들어지나

입력 2022. 08. 17   16:22
업데이트 2022. 08. 1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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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갑 아닌 소나무 개판·복층 내부…고증 충실히 재현

임진왜란 430주년, 그때 그 거북선을 만난다
해군사관학교 ‘임진왜란기 거북선 건조’ <하·끝> 
해군사관학교 임진왜란기 거북선, 어떻게 만들어지나


이순신 조카가 쓴 ‘행록’에 자세한 특징
1795년 발행 귀선도설 내부 구조 기록
갑판 위 중앙부에 부분적 상갑판 추정
총 길이 24.3m 중량 107톤 규모 제작
현자 총통 발사 가능한 형태 용두 설치
1980년 첫 건조 후 축적된 연구 반영


거북선(龜船·귀선)은 조선 태종 때 처음 등장했으나 실전 배치되지는 못했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에 의해 비로소 실전에 쓰이도록 건조됐다. 임진왜란 시기 운용된 거북선의 특징은 임진년(1592년) 이순신의 장계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에 간략한 내용이 있고,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芬, 1566~1619년)이 쓴 이순신 ‘행록(行錄)’에 약간 더 상세한 내용이 있다. 이분은 여러 차례 통제영(한산도)에 가서 거북선을 관찰할 수 있었으므로 장계 못지않게 신뢰성이 높은 자료다.

임진왜란기 거북선의 부족한 내용을 보완해주는 것이 1795년 발행된 『이충무공전서』 권수(卷首) 도설(圖說·이하 귀선도설)이다. 귀선도설에는 당시 통영에 있었던 통제영 귀선과 여수에 있었던 전라좌수영 귀선의 그림을 수록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기록했다.

다만 귀선도설은 임진왜란 200년 이후 자료로, 조선 수군의 군선에 조총이 보편화된 시기 거북선이므로 임진왜란기 거북선과는 형태상 차이가 있다. 저판 길이, 곧 선체 크기가 50자에서 68.4자로 증대됐다. 선수 용머리의 함포 발사 구조가 연기 분출 구조로 바뀌며, 개판의 쇠못이 사라지고, 선미 거북꼬리와 그 아래 포혈이 없어졌다. 특히 조총 도입에 따라 포혈 개수가 증가했다.

내부 구조는 2층설과 3층설 논쟁이 지속돼 왔다. 거북선을 처음 연구한 언더우드는 귀선도설의 통제영 귀선을 임진왜란 때 사용하던 것으로 판단하고, 통제영 귀선의 형태·제원을 고찰해 2층 구조의 거북선 중앙 단면도를 1934년 발표했다. 이후 김재근이 언더우드와 대동소이한 2층 구조의 거북선을 1974년 발표했다. 이처럼 언더우드와 김재근은 귀선도설의 그림을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과 같은 것으로 판단했고, 내부를 2층 구조로 해석했다.

그러나 귀선도설의 통제영 귀선과 전라좌수영 귀선 개판에 그려진 포혈은 2층의 갑판(포판)에서는 절대로 화기·활 등을 운용할 수 없는 높이에 있다. 따라서 거북선 내부에 2층 갑판과 구분된 별도 구조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임진왜란기 거북선은 이충무공 장계 ‘당포파왜병장’에 “…용머리에서 현자 철환을 치쏘았습니다”라고 명확하게 기록돼 있고, 용머리의 위치는 개판의 높이(2층 이상 높이)와 같으므로 내부에서 현자 총통을 운용하기 위한 별도의 구조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통제영 귀선.
통제영 귀선.


임진왜란기 거북선 내부 구조에 대한 실마리는 1633년 경기수군절도사 최진립의 ‘해유서(解由書)’(1633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유서의 군선 주요 제원에는 전선(戰船)·귀선(龜船)의 하장판·상장판 판재 개수가 기록돼 있다. 하장판은 포판(갑판)을, 상장판은 상포판(상갑판)을 가리킨다. 여기에 따르면 거북선은 하장판 230립(立), 상장판 101립(立)으로 명시됐다. 이를 통해 거북선 내부에는 포판(갑판) 위에 상포판(상갑판)이 별도로 있었다는 점, 그리고 상포판 개수를 고려하면 전체가 아닌 중앙부 일부에 판재를 깔아 용두에서 총통을 발사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즉, 거북선 내부 구조는 2층·3층 개념이 아니라 포판(갑판) 위 중앙부에 부분적으로 상포판(상갑판)이 존재하는 복층 형태인 것이다.

임진왜란기 거북선은 철갑선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니다. 임진왜란기 거북선과 관련된 사료에는 거북선 개판(귀배판)에 칼·송곳을 꽂았다는 기록만 있을 뿐 철갑을 덮었다는 어떠한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내용은 일본 기록에 등장하는데 다음과 같다.

『고려선전기(高麗船戰記)』(1592년)에는 “…대선 중의 3척은 맹선(장님배·盲船·거북선)이며, 철(鐵)로 요해(要害)하여…”라고 돼 있다. 『정한위략(征韓偉略)』(1831년)에는 “적선 중에 모두 철로 장비한 배가 있었는데 우리의 포로 손을 입힐 수 없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고려선전기』는 왜군 함대에 종군한 69세의 도노오카가 1592년 7월 28일 부산포에서 작성한 전황 기록문서다. 『정한위략』은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일본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 기록이다.

이처럼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기록은 일본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러한 주장이 일본에서 굳어지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 임진왜란의 패인을 당시 조선 수군이 보유한 신무기(총통)와 철갑병선(거북선)에서 찾는 과정에서 일부 과장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북선 관련 주요 기록인 ‘행록’ ‘임진장초’ 『이충무공전서』 등에는 “개판에 쇠못, 칼, 송곳을 꽂았다”는 기록이 있을 뿐 철갑선은 아니었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중론이다.

해군사관학교가 새로 건조하는 임진왜란기 거북선 형상.  필자 제공
해군사관학교가 새로 건조하는 임진왜란기 거북선 형상. 필자 제공


이번에 해군이 새로 건조하는 임진왜란기 거북선은 역사·조선·무기 등 관련 분야 전문 자문위원들이 앞서 살펴본 임진왜란기 거북선 특징과 1980년 최초 건조 이후 40여 년 축적된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수차례 토의·검토를 거쳐 이순신이 활약한 당시 거북선과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고자 한다. 임진왜란기 거북선은 총 길이 24.3m, 중량 107톤 규모다. 목재는 국내산 소나무를 사용한다. 용두는 현자 총통을 발사할 수 있는 형태와 각도를 채택했다. 거북선을 덮고 있는 개판은 철갑이 아닌 소나무 판재에 쇠못 형태를 꽂게 된다. 이처럼 해군은 임진왜란기 조선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활약했던 거북선을 재현함으로써 충무공 이순신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고자 한다.


최권호 전 해사 박물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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