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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박물관엔 녹슨 무기·장비만 어지럽게 진열

기사입력 2022. 08. 05   16:00 최종수정 2022. 08. 05   16:01

80 캄보디아 ④
 
예산 부족으로 방치되다시피 운영
전쟁사 보여주는 실내전시실도 없어
방문객들 전시물 고철로 내다팔기도
 
중국 자본 들어와 대대적 도시 개발
도로 포장·신축 건물로 새롭게 변신
수년 전 방문 때보다 풍요해진 느낌

 

프놈펜 메콩강 건너편의 신개발지구 전경과 페리선.
시엠레아프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구소련제 전차.
캄보디아 장거리 노선을 운행하는 VIP 소형버스,
학교 수업 후 귀가하는 시골 초등학교 학생의 모습.

캄보디아는 20년 내전에 시달리며 전쟁 참상을 전 국민이 고스란히 뒤집어쓴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70년부터 1991년까지 친미·친공정권 전쟁, 폴 포트 대량학살, 베트남군 침공, 반정부군 토벌, 평화유지군 진주, 정파 간 무력충돌을 거치면서 국토는 초토화됐다. 민초들의 주검은 곳곳에 쌓였고, 1000만 개의 지뢰가 산야를 뒤덮었다. 1978년 베트남군에 쫓긴 폴 포트 군은 서북부 태국 국경으로 밀려갔다. 시엠레아프의 앙코르와트도 격전장으로 변했고, 세계문화유산에도 전쟁의 생채기를 남겼다. 캄보디아 유일의 전쟁 및 지뢰박물관도 격전지와 가까웠던 시엠레아프에 있다. 하지만 이 박물관들은 과거 전쟁에 대한 분석과 반성보다는 그저 전쟁 유기물을 전시해 두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VIP 버스터미널을 찾아 헤맨 촌극

프놈펜의 고문·학살박물관은 ‘킬링필드’ 비극을 잘 존안하고 있지만, 전쟁역사박물관은 시내에서 찾아볼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복잡하게 전개된 캄보디아 전쟁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 나라의 유일한 전쟁박물관이 있는 시엠레아프로 가는 버스표 예약을 위해 일일 계약한 툭툭이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강 건너편 신개발지구에는 50층 이상의 건물들이 솟아오르고 있다. 메콩강 페리선이 선착장에 닿자 수십 대의 오토바이·승용차가 쏟아져 나온다.

강변로를 한참 달린 툭툭이의 기사 롬이 목적지를 찾지 못해 헤맨다. ‘영업용 툭툭이가 터미널을 못 찾다니…’. 지도 표지점 부근을 2~3바퀴 돌던 중 장대비가 퍼붓는다. 급히 우의를 입고 허둥대는 기사가 안타까워 필자도 목을 두루미처럼 쭉 뽑아 주변을 살폈다. 버스가 주차된 시설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알아보니 근처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터미널이란다. 주인은 단지 차표만 판매하고, 정해진 시간에 버스가 이곳으로 온다고 한다. 숙소 종업원에게 이런 촌극을 이야기하니 ‘VIP 터미널’이기 때문이란다. 일반 버스는 시엠레아프까지 종일 걸리지만 VIP 버스는 5시간 소요된단다. “외국인이라 특별히 그곳을 알려 줬다”는 설명을 듣고야 롬이 헤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확연하게 달라진 시엠레아프 거리 풍경

다음 날 아침 그 가게를 다시 찾아갔다. 정류소 옆은 캐나다인 몽이 운영하는 비자 발급 대행 사무실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대대적인 개발 붐은 대부분 중국 자본에 의존하고 있단다. 이윽고 나타난 차량은 쾌적한 리무진버스가 아닌 16인승 소형버스다. 단지 버스 전면에 붙어 있는 ‘VIP’라는 큰 글씨만 유별나다.

태국 국경 방향의 4차로는 시원하게 뻗어 있다. 버스는 3시간 정도 달린 후 왕복 2차선 국도로 접어들었다. 자동차·툭툭이·오토바이가 뒤섞인 도로는 복잡했다.

귀빈(?)을 모시는 자부심 때문인지 VIP 운전사는 수시로 앞 차량 2~3대를 동시에 추월한다. 손에 땀을 쥐게 했던 곡예운전도 시엠레아프에 도착하면서 끝이 났다.

수년 전 앙코르와트 방문 당시 봤던 이 도시는 도로 포장과 신축 건물로 새롭게 변신했고, 주민의 삶도 다소 풍요해진 느낌이다.


내전 상흔을 간직한 전쟁박물관

시엠레아프 전쟁박물관은 2001년 2월 최초 건립됐지만 예산 부족으로 방치되다시피 했다. 인근 주민이나 방문객이 전시물을 고철로 팔거나 기념품으로 가져가기도 했단다.

2018년 재개장한 박물관은 녹슨 장비와 무기류가 야외에 어지럽게 진열돼 있고, 관람객은 찾아볼 수 없다. 전시물은 중국·러시아·미국산 무기가 혼재돼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전국에 널려 있었던 군 장비를 주민들이 수거하면 박물관에서 비용을 지급하고 수집했다.

캄보디아 전쟁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는 실내 전시실도 없었다. 물론 비참한 내전으로 ‘전쟁’이란 주제를 입에 올리기도 싫은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의 위협은 타조처럼 모래에 머리를 처박는다고 결코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인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는 평범한 진리를 캄보디아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킬링필드’ 생존자의 생생한 증언

한국에서 교직에 몸담았다가 현재 시엠레아프에서 선교사로 활동 중인 지인 P씨를 만났다. 유적지 답사 동행을 부탁하니 흔쾌히 승낙한다.

캄보디아어 통역이 가능한 사무원 스레이 씨까지 합류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가장 먼저 1970년대 폴 포트 치하에서 생활했던 마을 어르신을 찾아 나섰다.

소개받은 구치(82) 씨는 악몽 같았던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30대 중반의 가난한 시골 농부였다. 크메르루주 군이 들이닥치자 세상은 일순간에 변했다. 주민을 크게 ‘구인민’과 ‘신인민’으로 분류했다. 소작농·빈민층은 구인민, 부유층·지식인·도시인은 신인민이었다. 한 번도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고, 서구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구인민은 ‘모범시민’으로 불렸다. 집단수용된 신인민의 생활은 비참했다. 순박한 농부들이 굶주림에 지친 이주민에게 동정을 표했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웠다. 평등의 표상인 ‘동무’는 노인과 어린이를 수평관계로 만들었고, 이웃은 서로 감시토록 했다. 매일 저녁 아이들은 폴 포트 찬양 노래를 배우며 군사훈련을 받았다. 사실 나는 과거 정권의 군 경력을 숨기느라 4년 내내 마음 졸이며 살았다.”


고급인력 손실이 불러온 교육계 후유증

시엠레아프 답사에 동행한 스레이는 대학 졸업생으로 영어와 한국어에 능통하다. 캄보디아 학생들의 교내 생활을 보고 싶다고 하니 인근 시골 학교로 안내했다.

밀림 속의 농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타방 중학교의 전교생은 315명이었다. 교장선생님 안내로 학교 건물 주변을 돌아보다가 강의실에 들렀다. 교장이 갑자기 들어서자 영어 수업 중이던 선생님과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교실 안은 칠판과 낡은 책걸상이 전부였지만,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눈망울엔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교장선생님은 “한국 시민단체가 이 학교에 수십 대의 컴퓨터를 기증하고 교문, 자전거보관소, 국기 게양대까지 만들어 줬다”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교문을 나서니 인접 초등학교 아이들이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언니 등 뒤에 매미처럼 붙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꼬마가 낯선 외국인이 신기한지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캄보디아는 의무교육인 중학교(9년)까지의 진학률이 70%다. 고교는 50%, 대학 입학률은 15%에 불과하다.

1970년대 크메르루주가 고등교육 인력을 대부분 처형한 후 고급인력을 스스로 양성할 수 없는 후유증이 아직 계속되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신종태 전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는 2010년 국내 최초로 군사학 박사학위를 충남대에서 취득했다. 세계 50여 개국을 직접 답사해 『세계의 전쟁유적지를 찾아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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