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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곤 교수실에서] 통제와 공감의 딜레마, 그리고 공통분모

입력 2022. 07. 18   16:23
업데이트 2022. 07. 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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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곤 공주대학 안보학 교수
김희곤 공주대학 안보학 교수

리더는 ‘통제와 공감’ 사이에서 선택의 딜레마를 겪는다. 조직을 이끌어 가는데 두 개념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나 의미의 차이가 커서 경계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통제는 타자에 의해 강제되는 의미가 있는 반면에 공감은 자발적이고, 자율에 기반하고 있다. 통제의 의미를 뜯어보면 자의에 의한 측면도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복잡하거나 난해한 일이 생기면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 그래서 ‘통제’는 연장통에 넣어두고 내가 필요할 때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만능칼’이다. 일명 ‘스위스 아미 맥가이버칼’로 불리는 이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기능이 있는데 그 단면이 예리해서 한 번 베이면 상처가 깊다. 그런데 조직에 새로 부임한 리더는 곧잘 성과주의에 매몰돼 이 ‘만능칼’을 휘두르려는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다. 더욱이 이 칼은 국가나 글로벌 지도자 등 권한과 권위가 클수록 그 작동 범위도 넓고, 단기적인 약효가 빨라서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공감’은 구성원의 공동재산으로 등재돼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연장통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공감’의 소유권이 내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공동 지분으로 쪼개져 그 형태가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하고 지분의 크기도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감’을 꺼내어 쓰려면 먼저 구성원의 사전 동의가 필요한데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설득의 노력과 시간 소요는 필수다. 따라서 ‘통제’를 ‘공감’의 이름으로 포장해 함부로 쓰면 구성원의 재산권을 침해하게 된다. 때론 그 정도에 따라 책임을 면하기가 어렵다. 리더가 ‘통제와 공감’의 경계에서 딜레마를 겪는 이유다.

딜레마의 어원은 그리스어 di(두 번) lemma(제안)의 합성어로, 두 개의 제안이라는 뜻이다. 즉 두 개의 판단 사이에 끼어 어느 쪽도 결정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세상은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들로 얽혀있다. 트릴레마(Trilemma)는 이를 설명하기 위한 확장된 의미다. 즉 세 가지가 서로 충돌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통제와 공감의 경계에서 딜레마를 극복하고 공통분모를 얻는 지혜는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구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구분할 때 필요한 것은 테두리, 즉 경계다. 뭔가를 결정짓고 무엇을 정한다는 말도 ‘경계’라는 말로부터 유래됐다. 둘 또는 그 이상의 같거나 이질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경계의 접점에 공통분모가 있다. 점과 점 사이 양쪽 끝의 경계를 연결하면 선분이 된다. 그런데 점은 부분이 없다. ‘존재가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발상’은 기원전 300년경,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에서 비롯됐다. 추상 미술의 선구자 칸딘스키는 이 점에 착안해 점-선-면의 상호 관계를 바탕으로 세상에 없던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구축한다. 없는 것에서 시작한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는 경계를 다른 시선으로 해석하고, 적용한 덕분이다. 지금까지 탄생한 새로운 문명도 경계의 접점에서 낯설고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고, 이종(異種) 결합하면서 꽃핀 것이다. 둘 사이 경계 접점을 찾는 요령은 낯섦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면 수월하다. ‘통제와 공감’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공통분모를 확장하기 위해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함민복 시인은 ‘경계’는 ‘경계(警戒)’할 지점이 아니라 경이로운 기적이 일어나는 출발점임을 노래한다. 경계 너머의 ‘경지(境地)’를 추구할 때 ‘경계’는 ‘한계’가 아니라 ‘경탄’해 마지않는 경이로운 기적이 일어나는 지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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