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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은 사거리를 어떻게 늘려왔을까 (하)

신인호

입력 2022. 07. 12   10:38
업데이트 2022. 07. 1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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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5포병여단의 K9자주포 사격. 국방일보DB.
육군5포병여단의 K9자주포 사격. 국방일보DB.

(상편에서 계속)


포탄의 사거리를 연장하는 세번째 방법으로는 탄이 대기를 뚫고 초고속으로 비행할 때 생겨나는 공기 저항력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탄도학적 계수들을 향상키는 방법이라고 한다. 


K9자주포는 이 방식을 적용한 항력감소탄(Base Bleed Projectile)을 개발해 최대사거리 40km를 달성할 수 있었고, 최근 여기에 보조로켓추진(RAP) 방식과 결합한 복합연장탄(155mm 사거리연장탄)으로 최대사거리를 54km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 탄 밑부분 진공 항력이 50% 


포탄은 날아갈 때 비행을 저해하는 항력(drag)을 받게 된다. ▲ 탄의 표면과 공기의 마찰에 의해 생성되는 탄체(body) 항력 ▲ 탄체 앞부분의 형상에 의해 생성되는 웨이브(wave·물결) 항력 ▲ 탄이 고속으로 비행할 때 탄 밑 부분(彈底部)의 생겨나는 진공 현상으로 인한 탄저부(base) 항력으로 나뉜다. 


대체로 전체 항력에서 탄체 항력은 약 20%, 웨이브항력은 30%, 탄저부 항력은 5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탄의 사거리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항력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탄이 대기 속을 비행하면서 받게 되는 항력. 위키피디아
포탄이 대기 속을 비행하면서 받게 되는 항력. 위키피디아


탄체항력이나 웨이브항력은 포탄의 형상을 유선형으로 만드는 등 공기역학적인 최적화 설계로 해결하고, 탄저부 항력은 그 원인이 되는 ‘진공’을 없애거나 최소화해야 원하는 비행거리(사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탄체항력과 웨이브항력에 의한 공기 저항을 줄여 사거리를 늘리는 위해 1980년대 초, 탄체 형상을 유선형 형태로 설계한 ERSC(Extended Range Sub-Calibre) 및 ERSB(Extended Range sub-Bore) 형태의 포탄 개발이 추진되었으나, 곧 연구가 중단되었다. 탄의 직경이 작아짐에 따라 폭약을 담을 용적량도 작아져 탄 위력이 저하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ERSB의 형태를 최적화한 ERFB탄(Extended Range Full Bore)이 출현하여 M107 일반고폭탄(HE)보다 사거리를 약 50% 연장하는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고, 이것이 탄저부 항력 감소 방법과 결합돼 사거리를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 골프공에 딤플이 없다면


스포츠 가운데 공(球)의 비거리를 가장 중요시 하는 종목을 꼽으라면 골프를 빼놓을 수 없다. 골프공을 보면, 작은 홈(dimple·보조개)이 무수히 파여 있다. 무려 350~500개나 된다. 


왜 만들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이 날아갈 때 뒷부분(후미)에 생기는 진공으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딤플이 있는 골프공으로 300야드를 날렸다면, 딤플이 없는 매끄러운 공은 그 절반에 해당하는 150야드 정도만 날아간다고 한다.


왜 일까.


진공은 물질이 전혀 없는 상태, 즉 공기가 거의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그 진공 상태는 무엇인가로 채우려는 힘이 작동하게 되고, 결국 진공은 날아가는 공을 뒤로 잡아당기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골프공의 딤플은 공의 표면을 따라 흐르는 공기가 딤플 주변에서 작은 회오리와 같은 난기류(Turbulance)를 일으키면서 공기 저항을 분산시키게 된다. 이 때문에 공 후미에서 생겨나는 진공에 의한 효과, 즉 날아가는 공을 반대 방향으로 당기는 효과가 줄어들어 비행속도는 더 빨라지고 비거리는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포탄 밑 부분에서 발생한 진공 상태에 의한 항력은 비행 포탄이 받는 전체 공기 항력의 절반에 해당할 만큼 매우 크다. 사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골프공의 딤플의 역할을 하는 장치가 포탄에도 필요하고, 이것은 곧 항력감소장치(BBU·Base Bleed Unit)이다.


국내 개발 항력감소탄 K307과 절개 모형 및 내부 구조. 사진 = ㈜풍산
국내 개발 항력감소탄 K307과 절개 모형 및 내부 구조. 사진 = ㈜풍산


항력감소장치는 제트(jet)나 로켓과는 달리 탄을 직접 추진시키지는 않는다. 대신 탄 발사시 탄 내부 아래에 자리한 항력감소제를 점화·연소시켜 가스를 생성하고, 이 가스가 탄저부의 진공 상태를 채움으로써 저항력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 남아공, 최대사거리 40km 첫 달성


이 같은 연구, 즉 항력감소장치를 포 내부에 장착한 항력감소탄(Base Bleed Projectile)에 관한 연구는 1960년대 중반부터 스웨덴과 캐나다에서 이미 시작했고, 스웨덴은 1971년 자국 내 특허를 등록하기도 했다.


공산권의 야포 사거리에서 열세를 보였던 나토 등 서방국가들은 1970년대 155mm RAP탄을 개발해 최대사거리를 30km대까지 올린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과 스웨덴, 미국 등은 155mm 항력감소탄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RAP탄의 위력과 정확도가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항력감소탄의 발사 후 비행 모습. 사진=국방과학연구소
항력감소탄의 발사 후 비행 모습. 사진=국방과학연구소

1980년대 중반, 최대사거리 40km가 가능한 52구경장 자주포 개발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사거리 40km용 항력감소탄 개발 경쟁도 치열해졌다. 특히 남아공과 독일 등에서는 탄체를 유선형으로 설계한 ERFB 타입에 항력감소장치를 적용하고, 단위장약 6호까지 사용할 수 있는 포탄(ERFB-BB) 개발에 나선 결과, 남아공이 52구경장 포에서 40km를 상회하는 사거리를 최초로 달성했다.


항력감소탄이 RAP탄보다 인정받은 이유는 사거리 연장 효과 만에 있지는 않다. 항력감소 추진제가 탄 내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RAP탄 내에서 로켓추진제가 차지하는 공간의 1/3 수준에 불과한데, 이는 TNT를 더 넣을 수 있다는 것으로 곧 탄 위력이 향상됨을 말해준다. 또 항력감소장치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 BB+RAP 방식의 복합형 포탄 개발 


항력감소탄의 운용으로 52구경장 포를 통해 사거리 40km를 획득했으나, 사거리를 더 늘리려는 요구와 연구는 계속됐다. 하지만 항력감소탄의 경우 탄 설계상 포구속도(velocity)를 더 높일 수가 없어 사거리를 추가적으로 더 연장할 수는 없었다. 또 포탄의 무기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거리 증대 외에 탄 위력과 정확도 향상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으로는 탄 발사 후 목표까지의 비행속도를 높여 비행시간을 짧게 해야 한다. 또 탄두(고폭약의 양 혹은 자탄 수)의 위력을 높이기 위해서 추진장치의 크기를 가급적 줄여야 한다.


이런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마침 항력감소장치(BBU)와 보조로켓추진(RAP) 기술을 복합하는 방식(Hybrid Propulsion)으로 두 장치가 상호작용을 이뤄 더 나은 사거리 연장 효과를 이룬다는 연구 보고가 나왔고, 이내 이러한 복합추진탄 개발을 위한 선진국간 치열한 경쟁이 재개되었다.


복합추진탄의 구조와 절개 모형.
복합추진탄의 구조와 절개 모형.

복합추진탄의 복합추진장치는 크게 로켓추진체, 추력 노즐, 로켓 점화지연장치 및 항력감소 추진제로 구성된다. BBU는 발사 후 바로 작동해야만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다. BBU 추진제는 추진장약의 화염에 의해 포강 내에서 점화되지만 포구에서 압력이 급격히 떨어져 소화될 수 있기 때문에 사거리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탄이 포구 이탈 후 수 미터 내에서 재점화시킨다.


BBU는 탄이 비행하는 20~40초 정도 연소하면서 항력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보조로켓은 BBU와는 반대로 탄의 항력이 감소된 시점에 작동시켜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로켓은 점화지연 장치에 의해 발사 후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후 점화되도록 하는데, 1~2초간 작동하여 추력을 발생시킨다. 로켓 작동은 BBU 연소 중에 일어나며, 이후 두 장치의 상호작용으로 사거리를 증대시킨다.


복합추진탄은 항력감소탄을 먼저 실용화한 남아공이 선제적으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남아공은 2000년대 초반에 복합추진탄 VLAP(Velocityenhanced Long range Artillery Projectile) M9703탄을 개발해 45구경장, 약실체적 23리터 포에서 사거리 54km를 달성하였다. 이 탄은 탄 노즈(Nose) 부위가 긴 ERFB 타입으로서 탄체 바깥쪽에는 강내 회전안정익(Nub)가 달려 있고, 탄체 안쪽에는 고폭약과 로켓추진제가 충전되어있는 것과 탄체 후방에 항력감소장치(BBU)가 조립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국방과학연구소가 1999년 K9을 전력화한 직후인 2005년경 ‘장사정탄용 복합추진 기술’을 핵심기술 과제로 연구를 수행하고, 기존 탄의 중량과 형상을 바꾸지 않고도 39구경장 KH197 견인곡사포의 사거리를 40km 이상으로, K9 사거리를 54km로 현재 사거리에서 약 30%(40 -> 54Km) 늘릴 수 있는 노하우를 쌓았음을 보고한 바 있다.


이어 2013년 ‘155mm 사거리연장탄 체계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후 개발과정을 거쳐 2020년 시험평가를 통과했다. 


K9자주포의 탄종별 최대사거리. 한화디펜스
K9자주포의 탄종별 최대사거리. 한화디펜스

■ 70~100km의 초사정거리 포탄 등장


정밀한 타격으로 치명적인 효과를 거둘 수 무기체계라 할지라도 그 가격이 비싸다면 손쉽게 대량으로 운용하기는 매우 힘들다. 화력지원체계로서 화포는 비록 미사일의 위력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가격 대 성능 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화력지원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 때문에 남아공은 물론, 미국, 독일, 러시아 중국 등 무기개발 선진국들은 2010년을 전후로 탄의 위력과 정확도를 높이면서 사거리도 증대시키려는 경쟁을 더욱 가속화하여 최근 70km 이상의 사거리를 갖는 ‘초(超) 장사정탄’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최근의 포병 사거리 연장을 위한 기술들은 보조로켓추진, 또는 램제트 추진과 같이 어느 하나의 특정 방법에 역점을 두기도 하지만 대부분 테일핀(Tail Fin 꼬리날개), 카나드(Canard 귀날개), 윙(Wing) 등에 의한 활공기법과 유도제어기법을 병행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결합이 사거리 연장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정확도 향상을 동시에 달성했을 때 무기체계로서 효용가치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PzH2000자주포의 무장으로 V-LAP탄(오른쪽)을 시험사격하고 있다. 사진 = Rheinmetall Denel Munitions 홈페이지
PzH2000자주포의 무장으로 V-LAP탄(오른쪽)을 시험사격하고 있다. 사진 = Rheinmetall Denel Munitions 홈페이지


최근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남아공은 2019년 155mm/52구경장, 약실체적 25리터의 G6 자주포로 VLAP M9703탄을 쏘아 사거리 76km를 기록했다. 또 탄체 외형이 다소 다른 VLAP탄 M2005은 PzH2000자주포로 61km의 사거리를 기록했는데, 독일이 개발 중인 60구경장에 향상된 추진장약을 쓸 경우 사거리는 70km 이상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남아공이 멀지 않은 시기에 100km이상의 사거리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군의 경우, 155mm 엑스칼리버(Excalibur)탄의 사거리 연장에 관심을 두는 가운데 2021년 10월 애리조나주 유마(Yuma)시험장에서 개발 중인 XM1299 58구경장 자주포에서 XM1113 보조로켓탄(RAP)으로써 70km 사거리를 달성하였다.


XM1299자주포에서 70km 사거리를 달성하는 데 쓰인 XM1113탄의 구조와 비행 모습. 위키피디아.
XM1299자주포에서 70km 사거리를 달성하는 데 쓰인 XM1113탄의 구조와 비행 모습. 위키피디아.


XM1299는 ERCA(Extended Range Cannon Artillery, 사거리 연장포)로서 기존 M109A6 자주포의 무장을 58구경장, 약실체적 27.9리터 크기로 대폭 증대시킨 것으로 70km이상 100km까지 타격할 수 있도록 개발 중인 자주포이다.


이밖에 탄체를 유선형으로 설계하는 방식인 ERSC 타입에 테일핀 활공기법을 결합한 HVP(Hyper Velocity Projectile)탄과 이탈리아의 Vulcano탄, 테일핀에 윙(wing)의 양력을 이용한 활공 기법을 적용해 120km 사거리를 달성할 수 있다는 록히드마틴의 5인치 NGP(Navy Guided Projectile)탄이 주목을 받는 초장사정탄이다.


㈜풍산이 주요 방위산업전에서 소개하고 있는 5인치(127mm) 활공유도폭탄의 모형.
㈜풍산이 주요 방위산업전에서 소개하고 있는 5인치(127mm) 활공유도폭탄의 모형.


우리나라 역시 사거리 70km 이상의 초장사정탄을 연구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사거리 100km를 목표로 ‘초장사정 활공유도 곡사포탄’을 응용연구로 진행한 데 이어 2014년 2월 28일 열린 제75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는 사거리 100km급의 ‘155mm 초장사정 활공유도 사거리연장탄’ 개발 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초장사정탄은 개발 중 기술적 위험성이 무척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북한의 장사정포인 170mm M1989 자주포와 240mm M1991 방사포의 사거리가 60km 이상임을 고려할 때 70km 이상 거리의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는 초장사정탄을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신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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